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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착서점 Sep 19. 2023

사랑(愛) : 점점 희소해지는 사랑의 가치

2023.09.18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사랑의 가치가 희소해진 세상이 왔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적인걸 추구하게 되면서, 한 가지 깊이 꽂혀 관심을 보이는 '사랑'의 가치는 비싸졌다. 요즘은 회사에서도 한 분야의 '덕후'를 뽑기 위해 안달이다. 웹툰, 영화, 아이돌처럼 한 카테코리(혹은 특정 콘텐츠)에 대한 사랑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다.


희소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다는 뜻이고, 적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희소한 가치를 내껄로 만들어내기엔 애초에 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특질을 타고났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곰곰이 생각해 보다 대답을 못하거나 그때그때 달라진다. 웹툰은 안 본 지 10년은 넘었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 영화, 브랜드에 대한 질문에도 진정성 있는 질문을 꺼내놓지 못한다. 주관이 아직 잡히지 못한 탓일까? 영화는 당시엔 재밌지만 며칠이 지나도 생각날 만큼 '사랑'한 적은 없고, 세상에는 매력적이고 재밌는 브랜드들이 많다. 두루두루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인생 OO'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축구'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축구 선수로 뛰었던 경험이 있어 고등학생 시절까지 애착을 갖고 찾아봤다. 그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를 찾아보는 노력은 '사랑'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그럴 마음도, 체력도 없다.


숏폼이 대세가 되며 함께 짧아진 나의 집중력도 한몫하는 거 같다. 90분의 축구 경기를 집중해서 보기엔 주변에 나를 유혹할 거리가 너무 많다. 예전에는 토요일 밤 11시에 나를 유혹할만한 동시간대 방송이 없었지만, 지금은 시간의 구애 없이 모든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나의 '축구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한다.


결국 나의 숏해진 집중력에 굴복해 요즘엔 길어봐야 20분 안팎으로 끝나는 격투기를 즐겨보게 되었다. 바다 건너 UFC부터 국내의 블랙컴뱃까지. 예전엔 EPL 중하위권 팀들의 주요 선수부터 감독, 전술까지 꿰고 있었다면 지금은 친구들한테 쟤가 왜 1,000억씩 하는지 되묻곤 한다.


무엇이든 한 가지 사랑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사랑하는 것을 최소 한 가지 이상은 찾아야 된다. 그게 마이너 한 것이든, 대중적인 것이든 말이다. 나같이 음식 먹는 것에도 큰 흥미를 보이지 않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를 티 내기를 지양하는 사람이 살아가기엔 꽤나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선 온라인에서는 찾지 못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든, 비행기를 타든. 낯선 세상에 나를 노출시키고 신선한 충격으로 뇌를 리프레쉬해줘야 한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연차가 없는걸.

결국 오늘도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해 집구석에서 격투기 분석 영상이나 찾아보는 신세이다.

베스트는 아니지지만 뭐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치만 무섭다. 

안주하는 삶으로만 이어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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