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물속에서 세상을 만나다.

혼자인 줄 알았던 40대 아재, 물속에서 세상을 만나다

by 로이도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선 새벽 수영장. 그곳엔 네 개의 섬이 떠 있었다.

마흔 넘어 ‘평생 운동’을 찾아 나선 나.

근육질 몸과 달리 물속에선 한없이 작아지던 20대 청년.

맑은 목소리와 웃음이 매력적인 20대 여성.

이국적인 외모에 말수가 거의 없던 또 다른 여성.

우리는 ‘기초반’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서로 이름도 모르는 섬이었다.


우리들의 조용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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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의 구령에 맞춰 어설픈 발차기를 하고, 숨 한번 제대로 쉬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았다. ‘자유형-배영-평영-접영’ 레인이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의지했다. ‘끝까지 함께 가자’는 조용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2개월 차에 20대 청년이, 3개월 차에 밝게 웃던 여성이, 4개월 차에 마지막 동료마저 물 밖으로 사라졌다. 결국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다섯 명의 스승이 준 혼란, 그리고 선물

설상가상으로 잦은 강사 교체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접영을 배워야 할 시기에 두 달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스승을 만났다. A 강사는 자세를, B 강사는 힘을, C 강사는 리듬을 강조했다. 매일매일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내게 ‘선물’이었다. 매일 다른 시선으로 자세 교정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자배평접의 기초가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4개월이 지났을 무렵, 문득 25m 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어떤 세상일까. 강습이 끝난 뒤, 처음으로 그 긴 레인 위에 섰다.


출발. 10m와는 차원이 다른 거리였다. 중간에 멈추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허우적대며 겨우 벽을 찍었다. 헐떡이는 숨 사이로 든 생각은 단 하나. ‘이게 아닌데. 내 모습은 지금 어떻지?’ 유튜브 영상 속 그럴듯한 자세를 흉내 내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착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두려움 속에서 만난 사람들, 동호회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당근을 검색하다 ‘동네 수영 모임’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피드백을 받으면 나아지겠지. 무작정 가입하고 다음 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두둥.” 내가 알던 수영장이 아니었다. 50m 레인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의 웅장함에 나는 마치 선수촌에 잘못 들어온 동네 아저씨처럼 압도당했다. 저곳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사람들. 내가 과연 갈 수 있을까. 두려움에 쭈뼛거리며 약속 상대를 찾았다.


“혹시… 여기가… 그…” “네! 맞아요! 혹시 로이님이세요?”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는 운영진의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모여 있던 10여 명의 회원들과 통성명을 한 뒤, 나는 “사실 25m도 제대로 못 갑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속으로 ‘민폐 끼치는 거 아냐?’ 조마조마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당연하죠! 가다가 쉬셔도 돼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진짜 성장은 ‘함께’ 일 때 시작된다

pexels-vince-2265875.jpg 필자의 버킷리스트 시드니 본다이 해변의 '아이스버그'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당당히 출발했지만, 50m는 1km처럼 멀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50분이 끝나자 기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운동 후 다 함께 인증샷을 찍고, 몇몇이 “치맥!”을 외쳤다. 술을 못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그 자리가 가고 싶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사는 이야기. 일상에 지쳐있던 내게 그 시간은 온전한 위로였다. 이들에 이끌려 주 3회 수영하던 나는 주 5-6회, 어떤 날은 하루 두 번씩 물에 들어갔다.


수영은 기록경기이자 고독한 싸움이라 생각했다. 완전히 틀렸다.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동료가 생기자, 마흔 넘어 어디서도 듣기 힘든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자세 진짜 좋아지셨어요!” “로이님!”


그 칭찬에 부응하고 싶어 나의 피나는 노력이 시작됐다. 그 기점으로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운동은 혼자보다 함께, 특히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어떤 방법들로 연습했는지, 그 피나는 노력의 비법??을 풀어보려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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