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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26. 2022

네이놈, 지금 컬처덱을 능멸하는게냐?

어디서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컬처덱... 이름이 꽤나 멋있어. 컬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뭔가 되게 힙하고 긍정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단어가 주는 질감이 꽤나 보들보들해서 사람들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도 하고. 





문화를...안지켰어!! 또!!

근데 실상 컬처덱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은근 어명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만파식적의 피리소리마냥 윗 분의 지엄하신 음성이 만천하에 퍼지는 그런 모습이 그려지죠. 만약 컬처덱을 인쇄해서 양장제본 후 가죽커버를 덧대기라도 한다면 묵주라도 함께 세트로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많은 회사에서 컬처덱을 만들 때 이런 딱딱하고 지엄한 느낌을 없애고 싶어합니다. 예쁘고 힙한 디자인과 부들부들한 요죠체를 쓰죠. 그러나 사실 웃으면서 강요하는게 더 무섭기 때문에 오히려 찐광기 느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ㅎㅎ 이걸 지키지 않으면 나가셔야죠?^^'


하지만 이건 좀 오해가 있습니다. 컬처덱은 문화 자체를 담아내는 것이지, 그 목적이 누굴 찍어누르거나 압박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성원을 보호하고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들어야 하죠. 컬처덱은 투명하고 둥근 유리볼이나 달팽이똥같은 거죠. 뭘 담고 먹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집니다.


회사가 지니고 있던 문화가 탑다운이면 컬처덱도 탑다운 메시지가 나올 거고, 

회사의 문화가 협업과 유연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면 컬처덱도 그것을 강조합니다. 

직무과 직급이 중요하다면 사내 고양이에게도 직무와 직급을 부여할 것이고, 

마인드셋이 더 중요하다면 우리 회사에 미팅온 손님의 마인드셋 조차도 규정할 수 있습니다. 




오해는 두 가지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건 두 가지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선언, 선포, 규정이라는 특성에서 느껴지는 '탑다운'의 강한 냄새, 그리고 한국식으로 해석한 넷플릭스 문화에 대한 편견이랄까요. 실상 자세히 읽어보면 넷플릭스 컬처덱에 '강제적' 요소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사내문화를 지키지 않으면 나가세요라는 메시지가 그리 들리는 것이죠.

에...문화에 맞지 않으니 나가주셔야 겠습니다.


물론 컬처덱을 강제력과 규정집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업은 컬처덱을 외부 문화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요정왕의 방패+9 로 쓰기도 하고, 어떤 기업은 순도높은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필터의 용도로 쓰기도 합니다. 안티컬처 세력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서 내보내는 것이죠.




문화의 순도


이걸 '문화의 순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문화의 순도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전엔 먹고사니즘이 중요하고, 회사에서의 성장과 연봉인상이 훨씬 중요했잖아요. 그러나 요즘에 월급이란 월세+공과금+치맥+치약사고 샴푸사면 끝나는 돈 정도로 여겨집니다. 어지간히 큰 회사에 큰 샐러리를 받지 않는 이상 월급은 나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죠. 조용한 퇴사라는 단어가 나오는 말도 최선의 결과가 결국 '생존'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남는 돈이 없어.




코드셰어가 중요해졌어.

돈과 성장이 아니라면 직장의 선택기준은 결국 '인정욕구'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개빡세지만 명함 꺼내는 순간 큰아버지를 헛기침하게 만들 수 있는 회사이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사람에게 털리는 것이 싫은 분들은 곧 죽어도 사람좋고 문화좋은 곳을 찾길 원하죠. 후자쪽의 경우를 '코드셰어'라고 합니다. 원랜 항공용어였죠. 서로 다른 2개의 항공사가 하나의 비행기를 공유하듯, 회사는 회사의 고유문화가 있고 나는 나만의 정체성이 뚜렷합니다. 그러나 우린 같은 목적과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죠. 그게 나의 일부라고 할 지라도 말입니다. 온전히 몰입하는게 아닌 나와 같은 코드를 찾는 것이 구직자들에겐 중요해졌습니다.




좀 알려주라 니 코드.


문제는 회사들이 이 코드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들 협동, 성실, 믿음, 도전 이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 이 회사 문화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어요. 좋은 얘기만 잔뜩 써져있으니 잡플래닛과 블라인드 아니면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렵죠. (물론 문화를 드러냈다고 해도 실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를 말해줄 필요가 있죠.) 하다못해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만 봐도 딱 문화가 보이잖아요. 다들 '좋은 마법사 육성, 역량강화, 선한 영향력'이라고만 써놓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묘한 특징 중 하나인 기업인에게 요구하는 높은 도덕적 기준탓도 있을 것입니다. 우린 개성있는 문화에 대해 그리 개방적이지 않죠. 조금이라도 상식에 맞지 않거나 의견과 다르면 죽일놈의 회사로 규정하고 공격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느긋함을 추구해!! 라고 말하면 너네만 느긋하고 하청업체 죽일거냐고 비난하겠죠. 


그럼에도, 이제 조금씩 세상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구성원도 구직자도 내 신념과 성격, 가치에 맞는 회사를 원합니다. 만약 그것이 일치한다면 나의 일부를 희생할 각오도 되어있죠. 무조건 MZ세대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회사가 뽑은 사람들이 회사의 문화와 맞지 않는 이유를 다시 확인해봐야 할 것 입니다. 사실 능력과 커리어, 성실함과 말 잘들음이 주요 원칙은 아니었는지 말이죠.



기업의 색깔은 이와 같습니다.


컬처덱은 회사의 '코드'를 내외부에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을 더욱 진하게 만들고 순도를 높입니다. 그럼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 모여야 할까요? 이 또한 회사의 결정입니다. 


단일색을 추구하면 주구장창 인티제들만 뽑을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성애자, 3줄요약 성애자만 모여서 모든 대화가 10초안에 끝나는 것을 지향할 수도 있죠. 


혼합색을 추구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하나의 목적과 가치를 공유해야 하죠. 다양하다고 해서 지 맘대로 아무 목표나 세워서 일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룰과 핵심가치 안에서 '각자의 역량과 색깔을 살려' 결과를 내는 방식입니다.


뭐가 됐든, '알려줘야' 그런 사람들이 모이겠죠. 이젠 우리 회사의 매출과 성과만 드러내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우리 회사가 무슨 코드를 지니고 있는지, 같은 코드를 셰어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컬처덱은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업의 코드를 외부에 알립니다.

구성원에게 방향을 알려줍니다.

문화의 바운더리를 정합니다.

문화의 순도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체계를 만듭니다.


내부구성원에게 안지키면 엎드려뻗쳐가 아닌

자부심을 심어주고, 문화의 수호자로써의 사명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컬처덱을 읽으면 뜨거워져야 하죠. 가슴이, 뜨겁게...

쿠오오오..


그게 파시즘이든, 전제주의든, 수평적문화든, 방임이든, 성과주의든, 모르도르든, 그리핀도르든 뭐든. 컬처덱은 그걸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지킵니다.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컬처덱이 등장했는데 난 이게 견딜 수 없이 부담스럽고 미친짓같다 싶다면, 어서 집에가서 사직서를...








그 와중에 저희 컬처덱 가이드북 펀딩 1,000%넘어버렸고. 우린 미쳤어.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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