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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같은 얘기하는 거 맞지?

같은 그림을 그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

by 박창선

회사 생활 하다보면 진짜 신기한 것이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소통이 안되는데 회사가 굴러가지" 싶은거죠.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기업의 고민인 소통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핵심을 한 줄 요약해보겠습니다.


같은 그림을 그리는 건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얼라인먼트는 어쩌면
가장 맹목적인 연대감에서 출발한다.





너도 한국말쓰고 나도 한국말쓴다고 말이 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냥 음성과 표기가 같을 뿐 그 의미까지 동일하진 않죠. 우린 항상 '범주'안에서 소통합니다. 단어라는 것 자체가 날카로운 지점이 아닌 수많은 이미지를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사과라고 해도 사람마다 동그란, 찌그러진, 꼭지가 있는, 없는, 빨간, 초록, 덜익은, 또는 아이폰을 떠올립니다. 그럼에도 평소엔 대화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죠. 왜 그럴까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그렇게 디테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록 사과를 사오든 좀 찌그러진 걸 사오든 그냥 '에휴...' 하고 먹으면 그만이거든요. 게다가 우린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네 번 대화를 합니다. 그 과정이 너무 많으면 빡치겠지만, 보통은

"그거 있지? 그 설향인가? 그 딸기. 설향맞지? 그거 한 묶음 사다줘. 설향이어야 돼 알았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사실 설향이든 뭐든 잘 모르겠지만, 여튼 "그게 필요하다는 사실" 정도를 이해하고 마트에 가는거죠.


그러다 없으면 이상한 걸 사와서 등짝을 맞겠죠. 제가 남편이다보니 이런 비유를 들게 되네요. 여튼 일상에선 최악의 케이스가 등짝스매시 정도입니다. 사실상 그렇게 소통에 귀를 기울일 필요성을 잘 느끼기 힘들죠.

여보 바나나와 수박 두 개 사오라고 했잖아.

이처럼 평소에 우린 상상 이상으로 대충 말하고 있고 이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의 언어는 평상시의 언어와는 몹시 다릅니다. 맥락을 설명해야 하고, 근거와 데이터를 요구합니다. 또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는 서사와 논리가 체계적이어야 하죠. 그 뿐인가요. 이모지도 눌러야 하고, 쿠션어도 사용해야 합니다. 조직이 크고 어색할수록 맥락은 점점 고차원적으로 변하고 언어도 복잡해지지만....


사실 우린 대부분 그걸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냥 평상시에 말하듯 말해버리죠. 이를 테면

'그거, 그, 있잖아, 어어, 그 저번에 그것처럼, 그거 거기로 옮겨줘, 그렇게 해줘, 그그.. 일단 알겠고'

이런 대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waterglasstoon



오히려 이런 대화 속에서 일이 의외로 잘된다는 게 감동적인 포인트입니다. 이런 개념들을 잘 맞추기 위해선 어휘와 표현스킬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이것은 '원활한 소통'을 만드는 역할을 하지, 문화를 만들진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적인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의 시발점'입니다.


결국 대화란 세계관을 드러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휘든 표현이든 자신의 세계를 인지해야만 가능한 행위입니다.

내가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불편한지. 왜 피곤한지. 어떤 것이 신경쓰이는지. 무엇이 취약한지.

이러한 나의 세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표현은 불가능합니다. 혹은 내가 지닌 세계를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할 위험도 있죠. 세계가 희미하고, 표현의 재료가 부족한 만큼 우리 조직 또한 허술하고 흐릿한 경계선을 갖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누가 신뢰받는지 대답할 수 없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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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지금은 회사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을 애정하고, 끝까지 읽히는 글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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