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화를 촌각을 다투는 일상 속으로 가져오다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안 보신 분에겐 이 글을
권하지 않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의 위대함은
이미 "007 Skyfall"에서 제대로
경험했었다. 시리즈를 고전물로
변형시키면서 첨단의 기술과
정보전이 지배하던 시리즈물을
정말로 고전적인 대결 형식으로
웅장하게 만들어 냈던 그 기억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를 자극했었다.
아마도 그가 만든다면, 장르가
무엇이든 그 영화는 고전물의
변형된 형식을 갖게 될 것이란
예감이 있었고, 이 영화는 단지
내용이 무척 고전적이라는 것에
더해서 영상 촬영의 고전적 형식인
"원샷 롱테이크 씬"이라는, 자칫
잘못 만들었다간 지루함에 관객이
매우 실망할 수도 있었을 형식으로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재현 드라마로 끝날 위험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분명히 이 영화는 지루할
것이다. 단편적이고도 자극적인 장면들을
모아서 편집하는 방식에 익숙한 관객에게
만약 느릿느릿하고 완만한 카메라 워크가
느껴진다면, 시선을 유지할 힘이 사라질 테니.
물론, 여러 게임, 특히나 아케이드
형식의 게임을 떠올리자면 이것은
오히려 더 시대에 맞는 "게임"의
문법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포착된 영상과
주인공 "스코필드"의 여정이
영화가 한참 끝난 다음에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게 되고,
그 와중에 전달되는 메시지 또한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으로 남았다.
영화의 메시지는 "반전"과 "평화"라는
보편성을 깔고 있는데, 그건 교과서적이기
보단, 관객이 직접 이 참화를 체험하게
만들면서 무의식 중에 전달되고 있다.
화면 곳곳에 나타나는 잘린 시체,
얼굴과 팔다리, 몸통, 쥐, 파리 등등은
"권력자의 의지"에 의한 대결 속에서
가치 없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군인".
그 자체보다도 그와 더 동일시되는
"우리"가 처한 비극에 더한 무게를
싣고 있었다. 더구나 "코로나" 앞에서
전시 상황과도 같은 비참을 지금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이 느낌은 더 처절하다.
"스코필드"는 타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덩케르크"는 "우리"도 영웅이란
메시지를 전달코자 했었지만,
"1917"은 "영웅은 무슨, 전쟁 나면
권력자를 제외한 모두는 그냥 총알받이
인 거야"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중간중간의 상황에서 그가 만나는
영국군이 하는 이야기는 이와 같다.
"이 땅을 얻겠다고 자꾸 전쟁을 하면서
죽고 있는데, 이걸 그냥 준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고, 독일 놈도 이 땅을
그냥 우리에게 준다고 해서 뭐가
나쁠 게 있냐"다. 전쟁터에서 죽는
입장에서 정치 및 역사적인 전쟁의
필연은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권력자가 쾌감을 얻기 위한 유희"에
통상 동원되는 것이 말단 군인 또는
우리란 이야기다.
이 영화는 또한 형식을 파괴한
전쟁 영화인 "덩케르크"와도
일면 비교될 정도의 실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편집의 미학을 통해서
3가지의 다른 시공의 스토리를
한 점으로 통합하는 방식이
"덩케르크"였다면, 이 영화는
모든 시공을 하나에 모아서
"전쟁의 참화"를 한 눈과, 하나의
단락과도 같은 기억 단위 속에
통합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U+ TV"에 가입해서 포인트로
영화를 구매한 뒤에 우선 아이폰 11의
화면으로 보려고 했었는데, "화면이
작았기 때문에" 첫 장면에서 두 명의
군인이 "콜린 퍼스"가 연기한 장군의
명령에 따라 "독일군의 계략"에
속아 적진을 향해 쳐들어가기 전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1,600명의 군인의 지휘관에게
작전을 취소하라는 명령을 받고
적진을 향해 이동하는 장면의
임팩트가 살아나지 않았다.
그렇다 "화면이 작았기 때문에"다.
그래서 영화가 줄 수 있었을 영상 속의
엄청난 디테일이 전혀 시선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흥미가 사라져
더 보기를 중단하고 접어 두었다.
그러나 다시 어젯밤 IPTV를 열어서
본 순간, 이 영화가 과연 내가 모바일의
작은 화면으로 보려고 했던 그것이었는지
눈을 의심했다. 화면 속 디테일이 보이면서
매우 섬세하고 꼼꼼한 장점들이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이 세밀한 장면 속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모바일로는
이 메시지를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
최소한 20인치 이상의 모니터로
보기를 추천한다.
4개월 정도의 리허설 기간을 거친 뒤에
세트도 하나의 동선을 통해 전체적인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대부분의 장면 속의 장소를 직접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대로 카메라
워크가 단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형식은 3번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2시간을 넘어가는 상영
시간 내내 유지되었다.
1. 독일군의 참호에 두 명의 병사가
들어갔다가 부비트랩이 터져서
암전에 빠지는 장면이 우선 한번
정도 편집이 이뤄진 포인트 같다.
2. "스코필드"가 부러진 다리를
건너 이동할 때, 독일군 저격수와
동시에 서로를 쏜 뒤에 뒤로 날아가
쓰러져 그의 의식이 끊긴 장면,
그리고 한참 뒤에야 죽은 독일군을
확인한 시선이 2층에서 창문으로
내려가며 "스코필드"의 윗 모습을
잡아 내는 "이글샷"이 나오면서
다시 이동이 시작되는 장면이,
갑작스럽게 어두운 밤으로 시간
변경이 이뤄진 편집 포인트 같았다.
3. 그다음에 독일군을 만나서 도주 중에
건물 속에서 뛰어다니다 강물에 뛰어들어
빠지면서 앵글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폭포를 타고 한번 더 추락해 내려간
장면 중에 어디에선가 한번 더 편집이
있었을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이미 참호 밖으로
돌격 전이 벌어진 전쟁터로
달려가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 상황을 보고하는 장면 이후
그가 성마르게 "스코필드"에게
던지는 말은 전쟁의 참화가 과연
어느 지점에서 더 비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인지를 더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생명을
구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전쟁의 승리와 무공이 중요한
존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권력은 이 영화에서 배우의 인지도와
더불어 상징적으로 엮어서 드러나는데,
통신장비 마비를 이유로 사지를 넘어
작전 취소 명령을 서신 전달시키는
“콜린 퍼스”나 그 명령을 고깝게
받아들이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동급의 인상을 풍기는 동시에 아군의
생명같은 것은 그다지 아끼지 않는
인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작전의 취소를 통해서 무가치하게
죽지 않았을 군인이 다행스럽다기 보단,
"샘 멘데스"의 메시지는 이런 인간의
목숨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전쟁을 왜 아직도 인류가 하려고
하는가란 질문처럼 보였다.
메시지가 공격하고 있는 대상은
누가 죽던 말던 자기 자존심이나
돈벌이에 환장하고, 아집에 빠진
특정 국가의 수뇌부 지도자들로
보인다. "코로나"를 거쳐가면서
우리는 "우리"를 가치 없이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권력에 목숨 건
자들이 누구인지 이제야 제대로
이 영화 속의 메시지와 더불어
실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인류의 생존과
안전을 더 우선시하는 국가들만이
제대로 살아남아 경제적이고도
정치적인 이득을 유지하거나
확대할 수 있을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해보자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매우 무겁고도 정확하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아군을 위해서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작전 부대에
도착하려 최선을 다하는 "스코필드"의
모습은 물론 영웅적이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그같이
필사적인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하고 있다. 그 때문에서라도 이 작품은
"우리"의 영화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