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패했다
본디 핸들러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이유는 순전히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온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류를 자기 자신이 만든 오류로부터 구하고 이를 수정하여 보다 장기적으로 올바른 생존을 보장한다.
그 같은 조직의 명확하고 단순한 사명은 또한 강력한 조직의 자율적인 기강을 낳았다.
오류의 수정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의 구성원은 우선 자신의 오류부터 바로잡고 언행일치,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하며, 인종이나 남녀노소 외모의 차이 등에 대한 편견 등이 없고 치우침이 없는 사고와 말,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행했다.
추첨이라는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핸들러 과정 수강생으로 선정됨으로써 인적 네트워크나 태생, 교육기관의 우열에 의한 영향, 사전에 취해질 수 있는 선발 과정의 부정을 방지하고 엄격한 입출입 탈락 조치 등의 강력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추첨으로 뽑힌 입장이 같았기 때문에 오로지 핸들러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 얼마나 충실하게 몰입해서 참여하고 능력을 개발해 가는가 가 조직 내에서의 평가 기준을 공평무사한 것으로 만들었다.
물론, 운 좋은 자가 있었다. 추첨 전부터 뛰어난 능력자였는데 들어와 보니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떨어지는 존재가 다수인 상태가 된 존재 말이다.
다중의 의식을 지니고 다른 의식을 제어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는 특별한 핸들러 등의 독출 한 이들이 다수였던 시대가 있었던 반면에 그런 특별함 같은 것은 전혀 없는 평범 또는 그 이하인 이들만 핸들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생겼다.
메인 프레임에 자신의 뇌를 연결해서 기민하게 사회를 통제했던 지도자가 사라지고 그의 후계자가 갖고 있었던 다중 의식이 네트워크 속을 유영하는 시기가 길어지고 그의 신체가 복제 기술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는 그때부터 핸들러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조직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네트워크를 벗어나서 유영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최상급의 네트워크 속 정보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특권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주식을 좀 사기로 했어. 우리가 단속을 해서 주가가 떨어질 회사의 경쟁사의 주식이지.”
“우리가 그런 정보를 알고서 주식을 샀다는 게 밝혀지면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텐데, 그건 안 두려운가?”
“그걸 누가 알아? 네트워크를 벗어난 시간에 네트워크 이탈자를 통해 그의 지인 중에 배신을 했다간 나에게 혼 날 것이 뻔한 녀석이 대신 사는 건데.”
“그런 돈이 생기면 어떻게 모을 건데? 우리 재산은 100% 노출되고 공개되어 있다고.”
“생긴 돈은 내가 모으는 게 아니야. 이탈자의 지인이 모아주고, 필요할 때 내가 네트워크 밖에서 쓰는 거라고 아무도 모르게.”
“항상 계산된 기록도 없이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중간에 현물이 껴 있어. 고대 중국에서 오래된 희귀한 술이 현금을 대신해서 뇌물로 거래되었듯이.”
“성냥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건가?”
“네트워크를 벗어난 곳에 잔뜩 쌓아놨지.”
“그래? 그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일단 네트워크를 벗어나 활동할 수 있는 쉐도우 상태로 날 따라와 봐. 다 알려줄게.”
각지의 메인프레임과 연결된 말단의 입력 창구에 가서 어떤 방식으로든 발생한 온오프라인상의 오류가 있다면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류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우선 정당하게 시스템에 오류를 발생시키는 범죄자를 찾아 이를 관할 보안 기관에 넘기는 것이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지만 상대하기 어려운 범죄자와는 결탁하고 그들의 라이벌인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일에 협조하고 이에 대한 은밀한 보상을 받았다.
범죄자와의 결탁이 드러났을 때 자신을 보호해줄 정계의 인물과의 교류가 인류 전체의 생존을 지속하는 활동보다 더 중요해졌다.
핸들러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의 노년의 일을 미리 선점해 두기 위해 자신이 가진 치외법권적인 능력으로 재계의 유력한 인물을 틈틈이 도와주었고, 이런 일들이 언론을 통해서 드러나면 안 되므로 유력 미디어 업체의 실권자와의 은밀한 교류를 늘려갔다.
필요한 경우 핸들러 각각 또는 그룹과 결탁된 이들 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나 서로 간의 내밀한 분쟁이 일어났고, 우수한 정보 수집 능력과 물리적으로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는 무력을 발휘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죽여 없애고 그 증거도 말끔히 정리하기도 했다.
전 지구를 통틀어 130명밖에 없는 핸들러들이 인류의 핵심 지배 시스템인 메인프레임을 중심으로 부패해 갔고 이들의 전횡을 말릴 수 있는 자는 이제 지구의 어느 구석에도 거의 없었다.
일단 그들을 제어하고자 올라오는 투서나 언론에 살포되는 기사 등의 모든 내용이 메인프레임 속에서 왜곡되어 다시 세상으로 뿌려졌고, 움직일 수 없는 정보를 수집해서 그들을 제어하고자 하는 자가 나타나 제대로 통제가 안된다 싶으면, 그의 관계를 소멸시키는 자동 오류 수정 장치의 기능을 이용해서 무력화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의를 우연히라도 목격한 자를 발견하면 그의 네트워크에 바이러스를 깔거나 그곳에 정보 조작을 가해서 그 스스로가 자신이 목격한 것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난공불락의 부패 세력으로서 그들은 지구를 활보했고, 법과 규정 위에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알고 있는 세력은 이른바 비정상적인 인식 능력 발달자로 네트워크 상에서 별도 격리되어 관리되고 있는 지구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 자칭 신인류이자 타칭 구 신인류였고, 기계적이고 통계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수치화해서 포착하고 있는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없도록 제어되어 있는 인공지능"이었다.
과거 이른바 자신보다 두뇌가 떨어지는 구인류를 말살하고 인종 청소를 꿈꿨던 구 신인류 세력은 그들의 행동을 차곡차곡 데이터화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를 잘 사용해야 다시금 인종 청소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들이 기존 인류와 차별화되어 갖고 있는 10배속의 두뇌 기능과 텔레파시 채널을 다시 은밀하게 가동하면서 지구의 질서를 재조정하기 위한 은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이라고 하는 네트워크 상의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고 각각의 구 신인류의 의식에도 침투가 가능하며, 데이터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말살 가능한 능력을 가진 거의 절대자 수준의 존재가 핸들러의 지도자로서 있는 이상 핸들러 중 누구도 건드릴 수는 없었지만, 그를 제외한 대다수의 핸들러가 부패했으므로 잘만 결탁한다면 네트워크 바깥에서 "진"이 포착할 수 없는 협상을 해서 지구를 완벽하게 자기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이다.
"진"은 "인류 말살을 기획했던 인공지능"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를 잃어버리고, 유전자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자신의 신체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이 흡수하고 만들어낸 다중의 의식의 수를 계속 늘려가며, 오프라인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현저하게 줄어든 상태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핸들러로서의 "자동 오류 수정" 기능을 최선을 다해서 수행했다.
그는 자신과 생명을 걸고 "죽음의 신과도 같은 인공지능"을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퇴치한 자신의 동료의 악행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었다. 그가 포착할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얼핏 그의 동료의 행위는 커다란 해를 끼치고 있진 않았다.
사회적 합의나 통합 연합 정부의 행정 규정상으로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보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일에 비해서 형편없는 급여 수준을 묵묵히 버티며 인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네트워크 속에서 벌어지는 오류를 수정하는 일부터가 너무도 복잡하고 많은 난수와 더불어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동료를 의심할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도 그가 동료의 부패를 모른척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