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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r 06. 2022

<더 배트맨>-그림자로서 부활하다

다시 리부트를 성공시키고 더 어둡고도 감성적인 배트맨을 그려내다

스포일러가 일부 나옵니다.


배트맨 영화가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시점에서 여러 히어로물의 관객은 마음이 조금씩 나처럼 들썩거렸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반기는 작품이 나오기란 어려운 법이라. 저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기에 이 영화를 본 관객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다. 각기 다른 기대를 일부는 충족했고 일부는 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극장에서 본 바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쿠키 영상 하나라도 더 나오길 바라면서 좌석을 떠나지 못하던 관객이 적지 않게 있었던 반면에 마치 노골적인 항의라도 하는 듯이 극의 중반쯤에 홀연히 좌석을 떠나는 관객도 하나 보였었다.


저마다 "배트맨" 시리즈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렸었던 이유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거의 궁극의 품질이라고 할 수 있었을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런"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압도적인 작품성과 흥행성을 발휘했었다. 더 이상 이만큼 훌륭한 "배트맨"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란 의구심마저 흘렸을 정도였다.


실제로 완전하게 끝난 스토리로 3부작의 결말을 냈지만, "브루스 웨인"과 "캣우먼"이 "알프레도"의 꿈에서 어른거렸던 야외 식당에서 눈으로 마주 보며 잠시 재회하는 장면과 "로빈"이 찾아간 동굴에서 떠오른 새로운 "배트맨 기지"의 영상은 바로 그 시점에서 다시 영화가 시리즈 4편으로 진행되어도 좋을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전달했었다.


그런 "크리스토퍼 놀런"류의 영상과 긴박감을 차츰차츰 잘 쌓아 올리는 플롯 구성의 짜릿함을 기대한 관객에겐 이 영화는 사실 그것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절로 실망감을 전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같이 또 다른 생명력을 시리즈 물이 갖기 위해 "리부트"에 성공하기를 희망하며 어떤 다른 작품으로 "배트맨"같은 이미 화려한 성공작이었던 작품이 변신해서 돌아올까를 기다렸던 관객에게 이 "리부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였으리라.

 


일단 성공적인 "리부트"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매튜 본"이 "X맨"과 자기 자신이 오리지널을 만들었던 "킹스맨"의 리부트에서조차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크리스토퍼 놀런"이 "배트맨"에서 "리부트"에 성공했던 것과도 어느 정도 같은 위상의 수준에서 "맷 리브스"가 역시 장인 중에 하나로서 "혹성탈출" 시리즈물을 리부트 하는데 성공시켰던 전적과도 같이 이 작품의 리부트도 성공시켰다고 느꼈고 그것을 확인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거의 대부분 재미있었다.


"매튜 본"이 그 파격성과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물 리부트에 있어서 재능을 보였다면, "크리스토퍼 놀런"은 성공했던 "마스터피스"급의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사인 워너 브로스로부터 예술성과 독창성, 화면의 질감을 현실에 가깝게 창조해 내는데 필요한 재량권을 충분히 확보해서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증명해 냈다고 생각한다.


"맷 리브스"는 이미 "스필버그" 사단에 속해서 10대의 어린 나이부터 극본과 연출 등에서 "J.J. 에이브럼스"와 친구이자 같은 연배의 감독이 보여준 블록버스터 다운 화려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오류가 최소화된 정밀한 연출과 의외성을 가지고도 진지한 드라마를 펼침으로써 "현실적인 인간성"을 그 주인공이 설사 "유인원"이었다고 하더라도 마치 실제 하는 인간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재능을 "더 배트맨"에서도 보여주었다.

출처: The Play List


제작사로부터 충분히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만들 수 있는 "재량권"을 확보할 수 있을 때만 영화를 만드는 조건으로 임하는 것이 또한 "맷 리브스" 감독의 공식적으로 알려진 입장으로서 그는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해서 만족스럽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 어설프게 제작사가 흥행을 노려서 편집하길 원하는 방향을 여러 가지로 손을 대다 보면 창작에 대한 재능 수준이 돈을 버는 능력에 비해서 월등히 떨어지는 제작사는 "배트맨 포에버"같은 망작을 훌륭한 감독을 데려다 놓고도 만들어 내는 법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성공적인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채로운 경력의 일부로서 그는 "성우"일도 해왔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배트맨" 역할의 "로버트 패틴슨"을 포함한 각 배우들의 발성은 영화를 보고 있는 다른 언어권의 관객에게도 느껴질 만큼의 고품질의 목소리 연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본 정보를 통해 확인한 바, 이전의 "흑성 탈출 3부작"에서 "유인원 지도자 시저"를 맡았던 "앤디 서키스"의 발성과 목소리 연기력 또한 3부작 모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얼굴을 오래간만에 제대로 드러내고 연기한 "알프레도" 집사 연기도 그 목소리를 빼놓고 설명하긴 어렵다.


통상 여러 평론에서 "목소리 연기"를 칭찬하는 글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한 작품에 있어서 "배우"와 "감독"의 역량이라고 설명하는데 있어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이 없는 평론가로서는 그 목소리 연기의 우수성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대로 감잡고 느끼기가 어려워서인 것 같다.


물론, 한국 영화에 대한 한국 평론가의 평론에서는 종종 "발성이 후지거나 대사 소화력이 떨어져서"라는 식으로 배우를 비평하는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외국어 작품에서 목소리 평가가 어려운 것은 그 언어를 모르는데서 오는 막막함도 있을 것이다.


극에서 나와야 하는 전달력의 중요한 요소는 이 목소리에도 있는데, "배트맨"의 목소리는 압도적인 그의 파워는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배트맨" 캐릭터에서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던 분노와 슬픔 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또한 제대로 들렸다.



어떤 팬들이 이 영화에 배신감을 느끼고 등을 돌렸을까?


나야 정말로 즐겁게 보았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극의 클라이맥스가 지난 뒤에도 다소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에필로그"가 조금 지루했다는 것과 후에 감방에 갇힌 "리들러"가 "조커"와 대화를 하다 "뜬금없이 같이 웃는 소리"를 하염없이 내는 장면, 별 의미 없지만 "리들러"가 다시 다음 편으로 나타난다는 힌트를 담은 "쿠키 영상"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떡밥"을 제대로 뿌리지 못해서 부족했던 것을 빼놓고는 만족스러웠지만, 일부 관객에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여러 부분 더 있었다.


1. 이 영화는 코믹스와 수많은 영상물과 게임에서 만들어져 왔던 "배트맨"의 이미지와 가정사를 샅샅이 분해해서 이전까지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에서는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새로운 존재로서 다시 창조해내고 있다.


그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렇게 느낀 사람은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할 수 없는 대열에 서게 될 것이다.


2. 참고했을만한 코믹스 원본이 있었다면, 아마도 "탐정"같은 역할로 "배트맨"을 그린 작품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파워풀한 액션과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면서 화려한 영상으로 승부하는 장면은 "펭귄"을 슈퍼카 수준의 "배트카"로 뒤쫓으면서 벌어지는 어찌 보면 '뜬금없이 강력하고도 화려한' 도로 추격씬 정도다.


왜 뜬금이 없었냐면, “펭귄”을 쫓아서 도로를 쫓아가면서 역주행을 하고 트레일러 등 여러 차를 전복시키며 멋지게 공중을 날아 착지한 뒤에 그를 제대로 체포한 것도 아니고, 죽인 것도 아닌 상황이 이 장면 뒤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작사가 이런 장면 하나는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우겨 넣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멧” 감독의 원래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고, “크리스토퍼나 잭”이 훨씬 더 잘 만드는 영역이었다.

출처: dccomics.com

이미, "크리스토퍼 놀런" "배트맨" 시리즈에서도 그려지지만 능력은 "막대한 "으로 만들어진 슈퍼카와 전투기, 오토바이와 첨단 기기 정도일  빌런을 포함한 수많은 악당과 싸울  " 배트맨" "배트맨" 인간적으로 수련을 열심히 해서 만든 한정된 인간으로서의 능력이다. 총알이야 수트가 막아주지만 여기저기 사정없이 두드려 맞으면서 싸운다.


여러 액션 장면에서 일단 액션 연출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크리스토퍼 놀런"의 작품 수준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흥미진진한 액션 씬이 펼쳐졌다. 그 중간중간에 "배트맨"은 평범한 인간 수준에 불과한 악당들에게 수없이 두드려 맞고 위기에 처하면서도 간신히 자신이 가진 무기를 사용해서 이를 벗어나는 "안간힘을 써서 이기는 장면"을 종종 보여주고 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에서 "슈퍼맨"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훨씬 더 초월적인 힘을 갖고 있는 수준까지는 그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것을 바란 관객이 있었다면 그들 또한 불만을 갖고 "뭐 이따위로 만들었는가"라고 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 다만, 탐정 추리물 성격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치밀하게 추리하면서 살인 현장 등을 직접 탐방하여 단서를 찾고, "리들러"가 직접 "배트맨" 앞으로 보낸 메시지를 마주하며 자신을 포함한 거대한 "고담 시"의 부정과 부패를 밝혀가는 동시에 "리들러"가 몰고 오는 재앙을 찾아 이를 막아 가는 모습이 더 강조되었다.


항상 "배트맨"은 모든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 중에 가장 지능적이고 압도적인 지력을 가진 존재로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런 캐릭터의 측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그 중간에는 "팔코네"와 같은 도시의 이면을 지배하는 "마피아 빌런"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아버지가 정의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란 확신을 잠깐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의외로 취약한 인간적인 면도 노출한다.


완벽성에서 멀어진 이런 "허당"같은 면을 영화 속에서 보게 된 또한 일부 팬들은 재미없었을 것이다.


4. '19년 작 "죠커"에서는 "토마스 웨인"이 그저 천민 자본가로서 그려지고 그의 아들인 "브루스 웨인"을 찾아간 "죠커"가 되기 전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자신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내연의 연인"인 그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인하려 할 때 그를 사정없이 치고 박대하는 그저 탐욕스럽고 가난한 이와 자신의 경계를 엄청난 것으로 생각하고 빈부격차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가난한 이에게 폭력적인 존재로 등장했었다.


이 영화에서 다시 창조된 "배트맨"의 "부모"가 비참하게 그가 어릴 때 살해당한 내용에선 "토마스 웨인"은 시장이 되기 위한 선거 과정에서 "재개발 계획"을 세웠다가 자신의 가정의 아내 "사라"의 정신적인 불안을 둘러싼 내용을 기사화하려는 기자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마피아 두목인 "팔코네"에게 기자를 "협박" 하는 수준의 일을 부탁했다가 결국에는 "팔코네"에 의해서 그 기자를 죽이게 되었고, "팔코네"의 설명으로는 "토마스"가 시장이 될 경우 무너지게 될 것을 예상한 경쟁 마피아 조직 "마로니"에 의해서 토마스 부부가 죽은 것으로 설명된다.


이 과정에서 "리들러"가 노출한 영상을 통해서 내용을 확인한 "브루스 웨인"이 "팔코네"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듣고 비틀거리는 다소 미숙하고 인간적이기 그지없는 "배트맨이자 브루스 웨인"으로 나온다.


"브루스 웨인의 인격적인 완전성 내지는 성숙함"을 기대했다면 또한 실망했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배트맨"은 자신의 부모가 죽은 뒤에 은둔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2년 전부터 "배트맨" 활동을 시작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미숙함이 드러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일단, 기대와 다르면 실망할 수 있다.


5. 최초에 "나는 복수다"라는 대사로 등장하던 그가 자신과 싸우는 악당이 또한 정체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나는 복수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결과적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불의한 이들에 대한 광범위한 그의 복수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측면에서 부자이지만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을 하는 건전한 영웅으로서의 "배트맨"이 항상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왔던 바 이런 계기를 만난 뒤에야 성숙하는 과정은 어쩌면 이전 스토리의 중언부언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겐 이 영화가 몹시 재미있었던 이유는?


누아르물에 가까운 어두움으로 무장한 채로 시작 시점부터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보다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배트맨"의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제대로 나오고 있었고, 실제의 세상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던 히어로에서 지금 이 세상에 정말로 있을 것만 같은 존재로서 제대로 형상화되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이었다.


1. 이번에 그가 싸운 적은 "리들러"라는 수수께끼를 던지면서 범행을 저지르는 빌런이었다. 심지어 이 적은 "브루스 웨인"의 어린 시절의 같은 학교를 다녔던 존재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을만한 "불만 분자" 중에 좀 더 철두철미하게 사회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며 "배트맨"까지 조종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파국까지 가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출처: The Sunday Times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이 시대에서 경험하는 "랜섬 웨어"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여러 정보가 동영상 파일을 통해서 여러 곳에 뿌려지면서 파국이 확장되고 심화되는 장면이나 "메타버스"의 일부인 동영상 채널을 통해서 자기와 같은 이들을 모집해서 집단을 만들어 폭력적인 범죄를 대단위로 행하는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 등이 실제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만한 현실의 모습을 영화에 잘 가져다 붙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실적인 "히어로"와 "빌런"의 지능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 매 장면마다 흥미로웠다.


2. "캣우먼"인 "셀리나 카일"을 맡은 "조이 크래비츠"는 아주 익숙한 외모의 배우는 아니었지만, 영화 속에서 "배트맨"과의 유사성을 일부 가진 존재로서 점차적으로 가까워지고 결국에는 썸을 타는 관계까지 가는 부분까지의 개연성이 충분히 납득될 수 있도록 연기를 잘 해냈다.

출처: radiox.co.uk

마지막 장면까지 "배트맨"과 결국 어떤 관계가 될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하고, 미스테리어스 한 모습도 잘 연기해 냈다.


3. "앤디 서키스"가 연기한 "알프레도"의 역할도 기존의 스토리에서 봐왔던 "알프레도" 누구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존재감을 가지고, 비밀 정보원으로서 일했던 전적을 가지고 "브루스 웨인"을 가르치고 어느 정도는 "아버지" 역할 같은 것도 해온 존재였을 거란 상상력을 제대로 형상화해냈다.


4. "브루스 웨인"이었을 때와 "배트맨"이었을 때, 양쪽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것이 종래까지의 이 시리즈물의 주인공의 모습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양 쪽의 모습이 어느 정도 통합된 것 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해 냈다.


그리고 가면 밖으로 보이는 눈이 여러 가지 감정을 제대로 잘 드러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슬픔으로 젖어 있는데, 이런 감상적이고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 "배트맨" 역할에 이 배우는 정말로 적합했던 것 같다.


할리우드 액션 배우로서의 "액션" 자체에 대한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배우가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두운 기억과 자기 연민 등을 가진 짙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로서의 이 영화에서 그에게 어울리는 배역이었고, "리들러"가 이야기했듯이 "둘은 다른 존재가 아니야, 너도 배트맨일 때 온전한 네 모습이 되는 것이고 나도 리들러로서 가면을 썼을 때 온전한 내가 되었어"라고 이야기할 때 설득력이 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연기해냈다.


말을 할 때보다 눈으로 연기할 때 더 많은 울림을 주는 연기를 함으로써, 새로운 "배트맨"의 등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5. "리들러"라는 빌런이나 "펭귄", 잠시 나타나는 "죠커", "팔코네" 모두가 사실 기존의 영화 속에서 "빌런"이 보여주는 확실한 카리스마나 라이벌로서의 대응되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진 못하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감독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상징적으로 "배트맨"이 싸워야 할 적이 보다 거대하고 위험한 사회적 불의와 시대를 바꿔서 등장하고 있는 모바일과 웹 문명을 통해 확장되고,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집단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출처: Nerdist


이것은 사실 우리란 "관객"을 "배트맨"으로 상징화하고 비유했을 때, 우리가 실제로 싸우고 있는 적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아이콘 화한 적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미 "빌런"의 존재감을 훨씬 더 능가하는 적의 모습, "고담 시"의 정치계와 법조계, 마피아 같은 범죄 집단마저 모두 포함해서도 더 광범위한 범 "빌런"의 모습이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6. 마지막에 "함께 지내자"는 "캣우먼"의 무너져 가는 "고담 시"로부터 떠나 다른 곳에서 같이 지내자는 제안을 받고 나서, 이를 거절하고도 좁은 도로에서 같이 오토바이로 주행을 하다가 갈림길에서 "왼편 길"로 떠난 "캣우먼"을 뒤로하고 백미러로 그 뒷모습을 미련을 갖고 지켜보면서 우수에 찬 눈으로 "오른편 길"로 떠나는  다소 고전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 장면이 그저 뻔한 장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가슴에 울림이 있었다.


자신의 안위와 기쁨보다, 그리고 복수를 위한 정의 실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길을 선택하는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악당들에게 두드려 맞고, 죽을 기회를 계속 겪을 수도 있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에 소시민이지만 일종의 대리 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가 손에 잡힐 것처럼 현실화가 잘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내겐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망을 하는 분들의 생각과 느낌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관객이 기립 박수를 치며 보는 영화란 이미 이 시대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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