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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18.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4-1

Light My Fire

(출처: Dall.E3로 그림)


4-1 Light My Fire


"커피색 머리"의 눈이 게슴츠레해졌을 때, "LOSER 17"의 호흡도 조금 거칠어져 갔다. 그의 머릿속에선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기지도 않은 방의 문을 열고 "커피색 머리"의 어머니가 간식을 들고 들어올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의 남동생이 들어와서 뭔가를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이래도 될까?"

가까스로 “LOSER 17"가 사라지는 정신의 줄을 붙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무 진지해지지 마, 이건 그저 장난일 뿐 야"

"커피색 머리"는 게슴츠레해진 눈에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유년기의 "의사나 간호사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좀 더 팔과 손을 크게 움직여 그의 허벅지와 등판을 더듬어 갔다.


너무도 진지하게 가난함에 대한 자격지심과 더불은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LOSER 17"에겐 그 말이 자신의 가치를 살짜기 뭉게 놓는 기분에도 빠지게 했다.


"커피색 머리"에겐 자신의 외양이 남과 다른 면이 있다는 것 외엔 콤플렉스라고 할만한 것이 그다지 없었다. 그런 기분에 "LOSER 17"이 빠지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겐 "LOSER 17"을 정신분석학 책에서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파악하는 놀이를 하던 중에 "신경증 환자"인 동시에 "쉐도우 마조히스트"라고 분류해 낸 것 외엔 더 깊이 이해해 낸 바가 없었다.


다양한 방면에서 지식을 토대로 하고, "군주론"에서 나온 내용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어떻게 통하는지를 살펴보는 시도가 그를 의식적이자 무의식적인 “마루타” 용도로 사용하게 된 이유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자면 "커피색 머리" 자신은 "사디스트"에 가까운 성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LOSER 17"의 성적 취향은 "쉐도우 마조히스트"였다. 마치 낙인처럼. 그 가설을 검증해볼 터였다.



"이것 봐, 지금 그냥 아무 생각 대잔치 중인 건가?"

"마스터"는 사방팔방 분산되고 있는 "LOSER 17"의 생각과 더불은 기억과 그가 기정사실화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커피색 머리"에 대한 추정이 선언적인 내용으로 뒤덮여 있다고 판단했다.


"기억이 더 나가기만 하면 그게 그냥 하는 생각이 아니란 걸 잘 알 텐데. 이건 그냥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만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 걔와 다른 이들로부터 들은 내용까지 포함한 거야.


암튼 계속 떠올려보자고, 내 인생에선 어쩌면 온몸이 가장 커다란 불꽃으로 타오르고,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거인이라도 된 것처럼 내외부가 팽창한 순간이라 디테일 하나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지"



"커피색 머리"는 신체에 이식된 칩을 가지고 있었다. 유아 및 유년기엔 미아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건강 관리나 훈육, 육아 등의 여러 목적에 의해서 시술한 것이었고, 당시의 유행이 되었다.


성년 전까지 해당 장치의 감시나 위치추적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장애나 기타 여러 가지의 이유로 부모 등의 보호자가 강력하게 원하는 경우 최소 17세까지는 가능했다.


그 이후에는 해당 장치로 인한 감시와 간섭 등으로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한 학생이 여럿 나타나면서 사회적 공론화가 된 뒤에 "프라이버시" 기능을 소프트웨어 형식으로 부가했다.


"커피색 머리"의 칩은 팔목의 일정 지점에 일부 전두엽의 신경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위치나 행동 추적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엄격하게 중단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가고 돌아오는 시간 동안에는 자신의 부모가 통제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켜두었지만 집에 들어와서 방문을 닫는 순간엔 그 기능을 차단했다.


대신 이 기능은 더 많은 비용을 내야하는 고등급의 서비스를 사용할수록 이식된 칩을 통해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구상의 정보 네트워크 영역이 커졌다. 그 기능은 의식만으로도 컨트롤이 용이했다.


중산층 이하 빈곤 가정에게는 보다 저렴한 버전의 보급형 모델이 있었다. 신경계와 연결할 시술 비용이 없다면 장치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가난한 부모라고 해도 아이가 있다면 그 모델을 이식했다.


결과적으로 70~80%의 남녀노소 인구가 모두 이식된 칩을 가지게 되었다. 그보다도 가난했고, 육아에도 서툰 "LOSER 17"의 아버지는 그 시술을 해줄 만한 돈이 없었다.


자신에게 이식된 "핸들러"로서 받았던 당시 고사양의 연결 장치 중 일부를 몸에 아직 갖고 있었다. 만약에라도 자신이 죽게 된다면, 이 장치를 아들에게 주겠다는 이야기를 술에 취해 여러번 했었다.


그 장치를 만드는 회사로 3개 사가 경합하고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다. 북중남미와 동남유럽, 동아시아를 모두 재패한 그 회사의 이름은 "프로메테우스"였다.


경영자인 "프레마치온"은 세계의 부를 모두 거머쥐고 있었고, AI 기술의 당시 정점에서 그가 만들어낸 각종 인공지능 기기와 시뮬레이션 게임, 의식에 데이터를 구현하는 장치는 필수품화되었다.


"프레마치온"은 "커피색 머리"의 아버지와 한국의 사업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갖고 있었다. 간혹 최신의 시스템과 신제품은 다른 소비자에게 가기 전에 그의 집에 와 있거나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브람스의 3번 3악장을 크게 틀기만 하면 돼"

"커피색 머리"는 "LOSER 13"의 걱정을 덜어주듯이 말했고, 그 말과 동시에 감성을 자극하듯이 밀고 당기는 음악이 고음량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신호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조건 반사"처럼, '나, 지금 말할 기분 아니야 내 방에 아무도 오지 마'라든가 '나 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방해하지 마'같은.


그 생각이 맞았는지, "커피색 머리"는 걱정 없이 "LOSER 19"의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끔 만들었다. 순식간에 사정없이 윤곽이 도드라진 형상이 하나 바지 위로 보였다.


"보지 마!"

"LOSER 17"은 손을 내려 그것을 가리려고 했지만, "커피색 머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불을 끌게"

바로 불이 꺼졌다. 방안의 모든 기기가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커튼이 쳐지고, 창문이 닫히고, 헤이즐넛 커피향의 방향제 냄새가 흘러나왔다.


"LOSER 17"도 자신이 마치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와 연결되어 말 잘 듣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듯이 느껴졌다.


전원이 들어온 기계라도 된 양, 온몸과 모든 감정에 타오르 듯이 불길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의 가슴은 요동치고 심장은 터질 듯이 울렸다.


또 다른 의미에서 그의 마음은 불에 타고 있었다. "커피색 머리"는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커피색 머리“에겐 그날의 그와의 관계는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


(출처: Dall.E3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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