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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얼려 보기

제자가 자기를 넘을 수 있게끔 키워야 스승이다

by Roman

(출처: What's on Netflix)


이 작품이 개봉하던 시점에는 솔직히 개봉관까지 가서 볼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바둑이 한 몰 간 한국의 지금 이 시대에는 사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이후 인간이 "AI"에게 수많은 분야에서 격퇴당하고 있는 위기와 지금까지 인간이 못했던 것을 "AI"로 해볼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시대를 많이 뒤돌려서 '1980~2000년대의 한국 바둑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고, 바둑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존경해마지 않았던 두 바둑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판단일지도 몰랐다.


이 작품은 오래전에, 최소한 2016년 "알파고 VS 이세돌" 전에 나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 이후에 원래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어야 했을 2023년에 "이창호"를 연기했던 배우 "유아인"의 약물 상습 투여 문제로 인해 연기되었고, '25년 3월에야 개봉했고 5월 넷플릭스에 뜬다.


여러 난관이 있었고, 시대에도 뒤쳐진 소재의 작품이었지만 이 시점에 굉장히 준수한 관객 동원 능력을 보여줬다. 3월 개봉해서 200만 명가량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다룬 소재와 극에 투여된 자본에 비하자면 굉장히 좋은 성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건 시대를 잘 읽은 축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이길래 철 지난 바둑 영웅 이야기가 먹힌 것일까? 극 외적으로는 거대한 중국의 발흥에 급격하게 밀리고 있는 한국인에게 극 중에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당시 완벽하게 바둑에 있어서만큼은 이 두 사람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었던 배경이 있었기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극 중 중요한 사건은 "조훈현"이 그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 식객이자 제자로 삼았던 시기에 "이창호"가 급성장을 이루고 스승을 제압한 내용이다. 그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두 기사는 65회 이상의 공식 대국을 가졌고, 그들의 전성기에 중국을 압도한 것은 잘 알려진 역사다.


명민하고 자신만만했던 소년 시절의 시계방 할아버지의 손자 이창호를 연기한 아역배우 "김강훈"은 대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에 한치 밀리지 않고 당당함과 승부사 기질을 뽐내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냈다. "유아인"은 "이창호"의 이미지를 살려내면서도 번득이는 천재성과 오만함을 보였다.


약간 뚱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느낌을 주는 "이창호"의 입단 후의 청년 시절의 모습으로선 감잡을 수 없는 소년 시절을 보게 된 바둑의 전설을 아는 관객이라면 신선함을 충분히 받았을 것이다. 손자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시계를 채워주는 할아버지 "이화춘"역의 "전무송"은 따뜻함과 전심으로 손자를 믿는 마음을 인상적으로 표현해서 극 중 손자의 전투력의 일부로 나오는 내용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유아인" 배우의 커다란 실착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행작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룬 소재 자체보다 두 사람 간의 승부 내용과 스승과 제자 입장에서의 갈등을 필연적으로 보이도록 만들면서도 대단한 그래픽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영상 기술로 긴박감 넘치게 만든 연출이다.


물론, 이 작품의 사실상 주인공인 "조훈현"이란 인물이 우선 자만에 빠질 정도로 뛰어난 성공을 성취하고 제자를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키워내고, 그 제자를 통해 그 자신이 다시 한번 더 성장하면서 자기 입으로 내뱉은 명언과 금언을 실제로 실천하고 그를 통해 인간적으로 거듭나는 연기는 "이병헌"급의 대배우가 아니면 제대로 살려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물의 핵심을 제대로 연기해 냈다.


'바둑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바둑은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등의 깨달음을 통해 만들어진 말을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이창호" 또한 이를 배우고 깨닫고 스승을 넘어섬으로써 다시금 스승이 준 배움의 가치를 더 크게끔 만들었다. 두 사람이 바둑의 수를 몰입해서 생각한 뒤에 두는 연기는 대단해 보였다.


작품의 가장 후반부에서 감동을 낳는 둘이 언론 인터뷰에서 서로 말하는 대사는 마치 바둑의 한수한수처럼 서로를 올려 세우며, 바둑은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므로 같이 두는 두 사람의 실력이 좋은 기보를 만드는 핵심임을 깨닫게 만든다.


훌륭한 사제간의 대결이 한국 바둑의 수준을 넓히고 높이도록 만드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음을 이야기한 것이 이 작품 "승부"가 한국 관객과 시청자에게 감동과 뿌듯함을 선사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인류 보편적인 도덕성과 사제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작품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서 얼려본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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