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개봉 영화로 이 작품을 보기에는 고통이 따른다
(표지 출처: Movies & TV Stack Exchange)
기대하지 않았던 상태로 개봉을 했다가 바로 OTT로 옮긴 뒤에야 봤던 "노바디"는 꽤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2021년 코로나의 한복판에서 이 작품은 절망적인 심정의 중년 층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작품이었고, "존윅"과 "폴라"와 함께, 노익장을 과시하며 X세대의 관심을 잘 끌어냈다. 그 당시에 이 세작품에 대해서 쓴 리뷰는 <노바디+폴라>-노병은 죽지 않는다(링크 포함)였다.
이 세작품은 당시에 전 연령대에 잘 통했던 작품이었다. 이 각각의 작품이 오로지 한세대만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나왔던 작품은 아니었다. "존윅"의 "키아누 리브스"는 미중년 남자와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전 연령대의 여심도 장악했고, "폴라"의 "매스 미컬슨"은 노익장을 넘어선 육체미와 더불어 섹시한 은퇴 킬러로서의 매력을 철철 넘치게 뿌렸다.
"노바디"의 매력은 고독한 은퇴 킬러가 아닌 "가족"과 더불어 살면서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가족"으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외부"에서도 심심찮게 시비가 걸리는 그런 중년의 소시민으로 기죽고 파묻혀가던 "전직특수부대원"이 자신의 킬러 본능과 기질을 다시 살리며, 마치 좀비라도 된 듯이 얻어터지고 총에 수없이 맞으면서도 거대한 폭력 조직을 소탕하는 쾌감을 살려냈다. 보다 팬 저변이 넓어질 작품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리진 않았지만 안 보다가, 극장가에 볼 작품이 떨어질 지금에야 이 작품을 볼 용기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 그냥 보지 말 것을'이란 후회와 만났다.
자극과 잔인함의 물량은 전편에 비해서 더 보강되었고, 아군도 2명 더 생겼다. 프로페셔널하게 "카타나"를 닌자처럼 사용하며, '카타나 싸움에는 마체테를 갖고 오지 마, 그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라고 얼굴을 두 동강 낸 적에게 주인공 "허치"의 형제로 불리는 "해리"가 던지는 대사가 나와서 인상적인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2021년 첫 작품이 줬던 만큼의 재미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15개다.
1. "허치"가 1편과 마찬가지로 검은 방 안에서 심각하게 부상을 입고 초췌한 상태로 심문에 맞춰, 이번에는 "개"와 더불어 이야기를 시작하는 내용을 다시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음으로 해서, 이 작품은 이미 1편과 같은 패턴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드러냈다.
2. 이렇게 뻔하게 시작해 놓고 기가 막힌 변주가 있다면야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어졌으련만, 과거를 답습할 뿐 새로워지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에 살아남기 어려운 전략임을 감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가족을 다룬 잔인한 영화에 대한 팬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컬트 영화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은 돈과 인력이 들었을 영화가 가야 했을 길 같진 않았다.
3. 여기에 더해서 가족으로부터 강력한 무력을 드러내서 가장의 권위를 되찾았을 것으로 기대했던 "허치"는 이 작품 속에서 미국 정부에 전작에서 태워서 없앤 악당의 돈 3천만 불을 갚기 위해, 종신 노예 계약이라도 체결한 것처럼 여러 어려운 암살 포함한 임무를 맡아서 악전고투하며 수많은 악당을 죽이고서야 집에 다 지쳐서 돌아오고, 가족 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데 무시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이 작품의 숙명이긴 하지만, 전편의 후련한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4. "노바디"란 제목을 계속 유지하려다 보니 그런 바닥의 존재감을 그대로 둬야 한다는 강박적인 고정관념이 영화를 지배한다는 것이 왠지 안타까웠다. 이후에 더 후련한 액션 장면과 그를 우습게 본 가족 내외부 사람이 다시 존경할만한 존재로 그를 받아들이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스토리나 변주잘된 설정으로 요령 좋게 이끌어 갔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느끼질 못했다.
5.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장면이 매우 후련하고도 구구절절이 공감이 가도록 만들어줬던 "자신을 억누르며 버티는 인고의 오랜 시간"이란 장치는 사실 모든 것을 바꿔도 무방했을 이 작품에서 바꾸지 말아야 했을 한 부분이었다.
6. 그 인고의 시간이 급속도로 짧아져버리고, 휴가지에서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폭력을 가한 지역 주민을 맹렬하게 두들겨 패게끔 만든 장면 전에 그의 자괴감을 자극했던 것은 마치 자신처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얼굴에 상처가 난 아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사실이긴 했지만, 그가 참고도 참을 만큼 참은 다음에도 계속 그를 괴롭히는 적에게 어쩔 수 없이 그보다 훨씬 과격한 폭력으로 복수한다는 당위성이 사리진 상황이 풍선에 난 구멍처럼 작품의 위상과 더불은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7. 이 작품은 장르를 따지자면 "블랙코미디"다. 어떻게 만들었든 간에 웃음과 재미가 어두운 현실을 뒤틀어 그린 작품 위에서 잔잔히 번져가면 그것으로 족한 작품이다. 하지만, 전편에서 가져와야 했던 것은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노인이 이럴 수가라는 장면을 연출한 의외성 같은 것이어야 했을 텐데, 또다시 그를 거대한 빚으로 몰고갈 거대한 돈무더기를 태우는 장면처럼, 인상적이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8. 원래 리즈시절 전성기에도 악역을 맡아온 "샤론 스톤"이 "랜디나"라는 악당으로 등장하여, 잔인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지능적으로 잔잔하면서도 긴가민가 헷갈리게 만드는 연기력을 발휘할 기회와 거리가 멀어서였던 것인지, 이 또한 안타깝게도 이름값을 팔았을 뿐인 배역으로 소비되었다.
9. 그는 그전까지의 관능미나 우아함 같은 것은 벗어던지고 앞뒤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를 연기했는데, "랜디나"에게 복수를 한다고 해서 느껴질 만한 후련함이나 쾌감은 아주 경미한 수준이다. 안쓰러운 형태의 잔인한 죽음이 오히려 연민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10.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뛰어난 사격술이라는 "허치"의 부인인 "베카"의 숨겨진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이 작품에서 나온 가장 의외성이 있는 부분이었는데, 가족이 휴가차 놀러 온 놀이 공원의 사격장에서 공기총을 쏘면서 그 능력이 갑자기 드러나는 장면으로 허겁지겁 끼워넣기되는 것이 이후 장면에서 반전으로 드러나기엔 너무 뻔해 보였다.
11. 여러 주옥같은 할리우드 작품에서 아이콘과도 같은 역할을 소화하면서, 연령대를 높여가면서도 매력을 잃지 않고 더 상승시키고 있는 "코니 닐슨"같은 배우를 이 정도로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사의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추정을 낳게 한다. "샤론 스톤"이 아무리 고연령 대의 배우가 되었다고 해도 해낼 수 있었을 "미묘한 빌런"으로서의 연기를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이해가 되긴 된다.
12. "존윅"의 각본가 "데릭 콜스테드"가 "노바디"의 각본가이기도 하고, 양 시리즈 간에 공유되는 스태프가 일부 있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나름 가질 수 있고, 실제로 너무 수직적으로 강해서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보이는 "존윅"의 "키아누"에 비해서 "밥 오덴커크"가 연기한 전직 요원은 쉼 없이 얻어터지고, 이 작품에서는 새끼손가락 첫마디를 잘리는 등, 현실에 좀 더 가까이 위치해 있는 좀 더 사실적인 존재로서 최소한 전작에 있어서는 관객이 공감할 부분이 많이 있었다.
13. 그러나, 이 후속작에서는 "존윅 1편"에서 원래 "데릭"이 만들었던 자신의 죽은 아내의 추억을 갖고 있는 개를 죽인 적에게 복수하는 스토리가 통했기에 "노바디 1편"에서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이 관객에게 통한다는 것을 성공시킨 "데릭"이 중간에 어설프게 동물원의 "개" 한 마리를 구해내기 위해 신경 쓰는 주인공을 돕는 그 개의 모습을 잠깐 나오게 한 뒤에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형식처럼 끼워 넣은 것이 영화적 장치로서 거의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며, 이제 더 이 시대의 관객이 호응할만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긴 어려운 각본가임을 드러낸 것 같았다.
14. "존윅 4편"에서는 "데릭"이 각본가에서 배제되어 있는 상태였고, "윅 이스 페인" 다큐멘터리에서는 "채드" 감독과 "키아누"가 2편 이후부터는 완전히 새롭게 스토리를 다시 만들어가면서 제작한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데릭"의 각본이 주가 되어 있는 "노바디"와는 다른 길을 걸어버린 "프랜차이즈"로 보면 될 것 같다. 양 프랜차이즈 간의 콜라보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은 것은 "노바디"가 지닌 이야기가 "존윅"과는 이젠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3번째 작품까지 가기에는 이젠 더 동력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다르게 더 잘 만들어가는 시리즈물도 종종 생기기에 확언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에도 할리우드못알 감독에게 작품을 맡기고, 각본가를 이미 시의성 있는 이야기의 생명력을 잃은 이로 유지한다면, 아무리 성공적인 배우가 배역을 맡고 출연한다고 해도 "블록버스터 개봉영화"로서의 성공은 어려워 보인다.
이 작품이 앞으로 걸어 나가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감독을 바꾸고, 드라마로 만들던지 개봉 영화 없이 OTT에서만 방영되는 작품으로 만들던지인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 데까지 든 시간이 아쉽기는 하나, 앞으로 작품을 고를 때, "각본가"의 이야기의 생명력을 따져보고, 감독이 재미있었던 전작의 감독과 최소한 유사하거나 더 잘할 수 있는 감독이란 것을 확인해야 함을 배웠으므로, 수업료를 내고 마땅한 대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