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자기 쇄신의 기회로 주어진 타임슬립
시간 여행, 곧 타임 슬립을 다룬 영화들은 정말로 지겹도록 많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은 수많은 타임 슬립 영화들을 보고 나서 쓴 여러 편의 감상문들에 약간의 변주 정도만 덧붙이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 슬립을 다룬 영화 중에 또 하나 재미있는 영화를 본 것이 맞기 때문에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는 감상문을 쓴다.
무엇보다 이 영화 속의 내용은 마치 오래전부터 계속 고집스럽게 도돌이표를 찍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란 사람과 왠지 닮아 있어서 마음을 끌었다.
이 영화 속의 다시 같은 시점으로 끝없이 회귀를 해야만 하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의 끝없는 원점회귀는 함정이라기보다는 우주에서 쳐들어온 외계 종족이 갖고 있는 신비한 능력에 이른바 감염된 상황이기는 하다.
이 영화에서 이 끝없는 영겁 회귀가 풀리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감염시킨 존재인"오메가"를 처단해야만 한다.
주인공 톰 크루즈는 외계인과의 전쟁중에 말 한마디 방송에서 잘못한 탓에, 대언론 장교에서 일반 전투병으로 좌천되고, 바로 그 날 죽을 수밖에 없는 외계인들과의 전쟁터에 멋모르는 신입으로 투입되었다가 "오메가"의 피를 뒤집어 써버린 이후, 죽을 때마다 다시 처음으로 일반병으로 좌천된 첫장면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그의 신체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강인함은 배가 된다.
그 과정에서 톰은 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에밀리블런트가 연기한 여전사와 만나게 되고, 그녀 역시 그와 같은 영겁회귀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때부터 최상급 수준의 전사가 되어 "오메가"를 처단하고 영겁회귀의 저주로부터 풀려나기 위한 끊임없는 생사를 반복하는 씬들이 계속 이어진다.
나 역시 이렇게 써온 시간만큼은 수준이 높아지질 않는 글 쓰기의 영겁회귀를 벗어날 유일한 길을 찾고 있다. 바로 오늘이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글. 내가 "아!"하고 자신 있게 잘 썼다고 쓸 만 한 글을 쓰는 그 순간이 올거라고 믿고 산다. 물론, 언제 올지, 시나리오도 없는 내 글 쓰기 인생에 그런 순간은 언뜻 예상은 잘 되지 않는다. 쓰고 나서 제대로 퇴고하는 습관도 없이 계속 써온 1999년도부터의 16년간의 블로그 집필은 오늘까지도 끊임없는 쳇바퀴 돌기 같은 면이 있다.
Edge of Tomorrow
감독: 더그 라이만
출연: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빌 팩스톤, 샬롯라일리, 제레미 피븐
정보: 액션, SF |미국| 113분| 2014-06-04
이 영화는 한 상영분의 3분의 1 정도 지점부터 톰 크루즈가 왜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을까가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그의 영화를 이전에 몇 편 보았던 기억이 있다면 왜 그렇게 되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시간여행 또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그가 출연해 왔던 우주전쟁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바닐라 스카이 등의 SF작품들과 여러 형태로 연결되어 있으며, 대 전쟁을 기반으로 하는 액션 활극, 모함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는 스파이극(미션 임파서블), 뻔뻔한 허영심에 빠진 장교 캐릭터가 탑건이나 어 퓨 굿맨 등에서 나온 장교이미지와 맞닿고, 끊임없이 자기를 쇄신하는 끝없는 반복 작업을 끊임없이 할 것 같은 이미지도 여러 곳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느낌이 전달된다.
그 이상 이 영화의, 이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구축한 배우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그를 주인공으로 배정하기로 결론 지은 다음 맞춤형으로 스토리가 편집되고 씬들이 배열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톰 크루즈가 갖고 있는 캐릭터 상의 반복되는 패턴은 이른 바
1. 모함을 당한다.
2. 뜻이 맞는 동료들을 찾아 모함당한 상황을 이해한다.
3. 그 동료들과 역경을 무릅쓰고 끝까지 무고함을 밝힌다.
4. 그 과정에서 대의를 이루고 인류를 구한다.
이 정도이다. 이 뻔한 패턴들이 벌써 수십여 년 반복되지만 그래도 이런 패턴에 맞는 배우 중에 아직 그를 뛰어넘을 만큼의 출연료와 유명세를 구축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이 영화에 도달하기 전까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천편일률적인 역할들에 투입되어서 매양 비슷한 연기를 하면서 쳇바퀴 돌림을 열심히 해 온 하나의 전형적인 배우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층이 계속 어려지는 것이 그가 흥행 배우로서 살 수 있는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다시 이 영화와 주인공, 나와의 연관성을 찾다 보니, 이 영화가 찔러보았을 모든 사람들의 어떤 부분 하나가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습득의 과정, 습관화의 과정이라는 우리 모두가 겪는 현상이다.
끝이 막힌 것 같은 쳇바퀴 놀음의 끝에도 결국 다른 단계로 우리가 넘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샌가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사랑을 만들며, 자신의 성취를 끝내는 이뤄내는 단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찬 메세지를 선사한다. 그게 톰 크루즈가 할 수 있는, "제리 맥과이어"에서 극대화되었던 가장 최고의 메시지이니까.
글을 꾸준히 써나간다는 쳇바퀴가 끝나지 않은 채로 어쩌면 이 공간이 소멸되거나 우리 자신이 먼저 이 공간 밖으로 소멸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행위 자체로도 우리는 충분히 멋지다라고 위로할 수 있는 영화가 있어 좋다. 엣지 오브 투마로우가 주는 미덕은 시행착오의 쳇바퀴를 견디는 긍정이라는 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을 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