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똑같은 지구에 사는 똑같은 지구인을 마주하게 된다면
(표지 출처: Film Intel)
이 작품의 메시지는 그와 같다. 자기 자신을 구할 구원자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구원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남을 구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구원하며, 구해진 남은 남이라기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남을 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원한다".
2015년에 현재의 "워쇼스키 자매"가 "워쇼스키 남매"였을 때 만들어졌던 작품 중에 하나인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보고서 느낀 바가 무척 많았다. (당시 글 : https://brunch.co.kr/@rpyatoo/27 )
그런데, 그 글 아래에 지금은 브런치를 탈퇴한 분이고, 이젠 그분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분이 '22년 5월 31일에 남겨 놓은 "Another Earth"에 대한 추천사를 금년 1월 3일에야 처음 읽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와 어떤 면에서 주파수가 맞아서 추천했던 것일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때마침, 금년초 통신사 요금제를 바꾸다가 "디즈니 플러스"와 "밀레의 서재"를 묶은 요금을 선택했다.
그러고서 "디즈니 플러스"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찾아본 순간, "프라임 비디오"보다야 훨씬 나은 콘텐츠가 많았지만, 그만큼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개봉작을 본 영화여서 조금 실망했었다.
그렇게 찾던 중에 "Another Earth"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디즈니의 으리으리한 작품과 비교해서 어찌 보면 한없이 초라한 SF독립영화 수준의 영화였지만, 보게 된 순간 집중하게 되었다.
화려한 특수효과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와 철학적 각본으로 승부해서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유명한 저예산 SF/스릴러 명작은 영화로 특기할만한 작품은 "Man from Earth"이고, "Another Earth"도 같은 급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작품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작품을 "로파이 사이파이"라 한다.
같은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감독 "마이크 케이힐"이 배우 겸 각본가인 "브릿 말링"과 공동 집필한 각본으로 만들었고, 작품 내에서 "브릿"은 여주인공으로 나오고 나중에는 "넷플릭스"에서 파란을 일으킨 드라마 중에 하나인 "The OA('19)"의 제작자이자 주연으로 나왔다.
결국 이 작품은 "브릿"의 상상력의 그 첫 떡잎을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부터가 될 성싶었다.
시작은 화려하게 나온다. MIT에 합격한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 "로다"는 마찬가지로 젊고 강렬한 눈빛을 가진 남자와 파티에서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누면서 미래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벌어진 세상의 변화는 달리던 자동차의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데, 갑작스럽게 발견된 행성이 지구에 근접하면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행성은 다름 아닌 또 다른 지구였던 것이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가 글로벌 영화 작품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다중 평행 세계 대한 이야기가 평범한 스토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멀티버스가 아직 제대로 대중적인 소재가 아니었던 시기에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 소식을 듣고 차를 몰고 가던 "로다"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며 또 다른 지구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쳐다보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임신한 아내를 옆에 자식을 뒤에 태우고 교차로에서 정지하며 다정한 말을 나누고 있던 한 남자의 가정을 태운 차의 모습이 나오고, "로다"가 몰던 차는 그 차를 사정없이 부딪친다.
그 현장의 참혹함과 작품 속에서 계속 무게감을 만들어 내는 "로다"의 죄책감은 바로 차에서 내려 자신이 부딪친 차로 달려가서 보게 되는 장면이 만들어낸다. 가장이자 작곡자인 "존 버로스"가 의식을 잃고 있는 상태에서 그 옆 조수석에서 즉사한 그의 아내와 차밖으로 튕겨져 날아가서 죽은 그의 아들의 모습이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바라보는 "로다"의 모습은 참혹한 고통 속으로 던져진다.
이 작품이 2011년이 아닌 2025년작이었다면 그런 장면이 정말로 충격으로 다가오는 편집이나 영상의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고통에 대한 느낌은 분명히 그 무게감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장면은 예리했다.
이 이후에 미성년자로서 처벌을 받아 수년간의 감옥 생활을 뒤로하고 사회로 복귀한 "로다"는 직업을 구함에 있어서 그저 몸을 사용해서 일을 하는 한 대학교에서의 "청소부"일을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겨서 하게 된다.
많은 말이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영화의 문법상, 그는 자신이 한 가정에게 끼친 엄청난 죄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인정받거나 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말이 많지 않은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공허한 눈동자와 축 처진 어깨와 정처 없어 보이는 발걸음 등이 그의 심리를 대변하고 하지 않는 말을 상상해 내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이 심심하고 조용한 작품이 내겐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내면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미성년자로서의 범죄자이기 때문에, "로다"의 이름이나 정보는 사회에 알려지지 않게 되어 있고, 사고가 난 작곡가 "존"의 사는 집 등의 내용은 기사로 나와 있어 "로다"는 그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문 앞에서는 자신을 밝히고 사과를 하려고 준비했었지만, 차마 입을 때지 못한다.
엉겁결에 청소 회사에서 찾아와 무료로 청소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시늉을 하며, 집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면서, 그가 폐인이 되어 아무것도 안 치우고 집안에서 술만 마시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된 "로다"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수많은 극화를 본 우린 이런저런 상상을 할만한데, 이 작품의 공동 각본가이자 주연 배우인 "브릿"은 "로다"를 정처 없이 길을 나서서 걸어가다 한겨울 온통 눈만 깔려있는 공터에 가서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눈밭에 누워 "에스키모"식의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연출했다.
그것이 그만큼 자책감으로 가득 찬 여린 마음의 여자가 시도할 수 있을만한 일이라는 현실감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시도한 대로 얼어 죽었다면 극은 10분짜리도 안 되는 단편영화로 끝났을 것이라, "로다"는 누군가에 의해서 구조되고 병원에서 얼어 죽지 않은 채로 깨어나고, 아버지는 병실에서 그 옆을 지킨다.
대학교에서 "로다"가 청소를 할 때, 그의 옆에서 정체 모를 조언도 하고 "로다"의 이야기도 그대로 들어주는 것으로 보이는 인디언 혈통 같은 고령의 노인 청소부 "퍼딥"은 한두 마디의 조언을 던져 "로다"가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티도 한 나면서 뭔가 "로다"를 죽음과도 같은 자기 파괴의 선택에서 멀어 지게 만든 것 같은 이미지를 준다. 뒤엔 눈과 귀에 자해를 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구와 같은 또 다른 지구에 대해서 여러 언론의 추정적인 보도가 오가다가, 직접 미국의 고위급의 여성이 생방송에 출연하여 시청자들 앞에서 또 다른 지구에 통신을 시도해서 물어본 결과 자신과 동일한 신분과 출생, 정체성을 가진 여자 고위급이 또 다른 지구에서 자신의 통신을 받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한마디로 그 또 다른 지구는 이 지구와 거의 차이 없이 동일한 지구인이 살고 있는 거울과도 같은 곳이었던 것이고, 그쪽은 이 지구를 지구 2라고 부를 것이고, 이쪽도 그쪽을 지구 2라고 부르는 상황일 것 같은 가정이 오간다. 그 과정에서 지구에선 또 다른 지구로 나갈 인원 신청을 받는데, "로다"는 여기에 신청하면서 자신이 범죄자로서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가야만 할 이유를 제대로 적어낸다.
그래서 제2의 지구를 향해 갈 희망이 생긴 "로다"는 자살하지 않고 "존"의 집에 방문해서 계속 청소를 열심히 하며, 그의 삶을 보다 깨끗한 것으로 만들며, "존"은 점차적으로 "로다"의 헌신적인 청소와 매력에 끌려 자신의 "톱" 연주를 강당에 데려가 보여주며, 감동한 "로다"는 "존"과 강렬한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제대로 된 각본이 없었다면 참으로 황당한 스토리였을텐데, 필연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다음에 또 다른 지구에 가는 팀의 일원으로 선정된 "로다"는 자신의 소식을 "존"에게 알리게 되는데, 그는 우선은 축하를 한 뒤에 가지 말라고 하며,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로다"는 자신이 그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그의 가족을 차사고로 죽인 것이 자신이란 것을 그제야 털어놓는다.
이 작품에서 "존"은 강력하게 단 두 번 화를 내는데, 처음은 자신과 아내의 추억의 냄새가 담긴 스웨터를 "로다"가 빨아버린 탓에 아내의 체취가 날아가버린 것에 대해서 화를 냈던 것이고, 그다음이 "로다"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이임을 알고 바로 나가라고 화를 내는 것이다.
첫 번째의 화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존"은 "로다"와 육체적인 것을 포함한 사랑에 빠지고, 두 번째의 화를 통해서 둘 간의 사랑은 "로다"의 죄책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게 만드는 것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연이어지는 "로다"의 화해 안이자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은 매우 논리적이고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받은 또 다른 지구로의 항공권 티켓을 "존"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지금 있는 지구에서 벌어졌던 차사고는 또다른 지구가 관측되면서 이를 보려던 "로다"가 실수를 하면서 벌어진 것이지만, 아마도 저편의 지구에서는 같은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티켓으로 또 다른 지구로 다시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을 언론에서도 드러내면서 떠났고, "로다"는 자신의 자책감이 대부분 해소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설명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만이 어찌 보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유일한 반전일 수가 있는데, 이 장면만큼은 어디를 뒤져서도 보게 되더라도 내가 이야기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 장면은 너무도 단순하고 간단한 장면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주는 느낌은 극을 차분히 집중해서 본 관객이나 시청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잔잔한 놀라움과 더불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그와 같다. 자기 자신을 구할 구원자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구원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남을 구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구원하며, 구해진 남은 남이라기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남을 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원한다".
이제야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보고 쓴 내 감상문 밑에 그 독자분이 왜 "어나더 어스"를 추천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작품은 우리가 나와 다른 것으로 치부하기 마련인 다른 인종과 성별 등의 사람이 결국은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었고, 이 작품은 그 깨달음이 어떤 행동을 낳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