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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Dec 28. 2021

나는 나를 던지지 않았다.

올해가 가기 전 '판도라의 상자'를 건네다.


격동의 올해는 오늘 포함 나흘,

오늘을 제외하고 사흘이 남아있다.




어제는 스마트폰 사진에서 서로의 사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

알록달록 풍경이 담긴 사진, 좋은 글귀가 담긴 사진,

주고 받았던 선물 중 각자가 잘 쓰고 있는 물건이 담긴 사진을 인화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고르다 보니 차곡차곡 쌓였을 뿐.



사진꾸러미는 새벽에 주문했고 점심 쯤에 도착했는데,

새삼 빠른 택배서비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사진을 쭉 깔아놓고 테두리가 좀 넉넉한 것만 골라냈다.



얇아서 잉크가 절절하게 나오는 볼펜,

넉넉하고 시원시원하게 글씨가 써지는 유성매직,

이 두 가지말고.


내가 애정하는 적절한 두께를 표현해내는 '네임펜'으로.




비록 내가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나름의 작은 사진첩을 만들어볼 요량으로 꾸민 것일 뿐이었다.


재작년쯤 남자친구에게 한 번 선물했던 적이 있었는데,

남자친구는 인생에 버거운 시점이나, 우리가 아주 가끔 다퉜을때 보면 

생각의 전환이 찾아옴과 동시에 눈물을 펑펑 쏟게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진을 건넨 어제 사진을 넘겨보던 남자친구는 말이 없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이거 판도라의 상자 2탄이네'


그 말을 들은 나도 고백했다.

사실 사진첩에 글귀를 적어나가면서 나도 눈물 펑펑의 위기는 있었다고.

 


마음이 잔잔했던 와중에,

남자친구 생일에 찍었던

한 사진을 보고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비닐에 쌓여 있는 몽블랑 빵에 하트 모양의 초를 하나 꽂아놓고,

계단이 높은 어느 역 바깥에서, 두 손으로 빵을 감싸고 있던 사진.


초여름이라 날씨도 더웠지만, 밤이 되니 바람이 조금 불어서

촛불이 자꾸 꺼질랑말랑했던 날이었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이틀 전에 어렵게 이직한 직장 신사업팀에서,

신사업이 돌연 취소되면서 보름만에 합류한 모든 팀원들과 함께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었다. 


출근 한 날에도 몰랐고, 퇴근할 무렵 한 명씩 본부장의 호출을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사실 아이디어회의인줄 알고 참석했다가,

급작스런 퇴사 통보였다는 것을 알고......


실로 날벼락이 몰아쳤던 그 날이 되살아나는 느낌에, 

나보다 더 슬퍼했던 남자친구가 고맙고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꽤나 무기력한 상태였지만, 그 모습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

누르고 애쓰고 하던 시기였었다.




그 케이크 사진을 보니, 그 때의 추억이 당장 어제 일처럼 떠올라

마음이 싸르르해지더니 슬펐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 것만 같아

남자친구를 멀리 하려고 했고, 그 이전의 시간으로

나를 던지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나를 던지지 않았으며,

감싸 안아주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하찮거나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올해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잘 데려온 것에 그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나를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 내 자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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