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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Nov 03. 2021

소맥 한 잔에 피쳐링

으, 취한다



퇴근길에 일하느라 고생한 남자친구는 

내가 보고싶다고 집 가는 방향 반대방향으로 

혼잡한 시간에 버스를 타고 와줬다.




술을 진짜 잘 안마신지 오래되었는데

어제는 맥주 한 잔에 소주를 반 잔 정도 섞은 소맥을 마셨다.

한 달에 한 두번 한 두잔 마실까 말까라 취기는 생각보다 금방 올라왔다.

어느 정도는 취기를 빌려, 어느 정도는 마음 속을 빌려

최근 마음 아팠던 일들을 낱낱이 꺼냈다.


오히려 나머지 소주와 맥주를 마신 남자친구보다

내가 더 헛웃음과 허공을 가르는 조그마한 손짓이

많았을 정도니까.




나는 착하다는 말이 듣기 싫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인상 세고 독하고,

못된 사람이 세상 살기 편하다는 말을 끝장나게 체감하고 있기에.


우리는 3년 넘는 시간을 만나왔지만,

어제는 내가 인생을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어느 미안한 일들보다도

훨씬 더 미안했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살아야하는데........,

그래도 뭐 어제는 이미 술술 흘러갔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쭉 지나가고 있다.


그나저나 부드럽고 매콤한 닭발을 먹었더니 이리저리 걷고 뛰느라 거칠어진 

내 두 발이 뽀송뽀송해진 느낌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러 패기좋게 과자를 두 봉사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놔두고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소 즉흥적이지만 약속이나 한듯 술을 마시고 집에 올 때면

편의점에 들러 달달한 디저트를 사는 계획적인 패턴을 보이는 것은 

언제봐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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