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된다
+ 물놀이
4세 때 바다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여흥이 남았는지 욕조에서, 세면대에서 물놀이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던 물놀이가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물놀이를 합니다. (덕분에 목욕 안 한다 거부하는 일은 없었네요)
물놀이를 하면 물을 펑펑 틀고 놀아요. 만약에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어떤 말을 하게 되시나요?
"물 잠가!"
"물 아껴야지!"
그런 말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쭤보면 수도세 많이 나올까 봐 그런다고 입을 모아요.
정말 수도세가 많이 나올까요? 제 경험에 의하면 아이가 한 달 내내 물을 쓰고 놀아도 4인 가족이 워터파크 한 번 다녀오는 경비보다 적게 나옵니다. 워터파크는 1일 입장료만 해도 만만치 않잖아요? 게다가 주유비, 톨게이트 비용, 식비, 간식비, 의복비 등 어림잡아 계산해도 20만 원을 훌쩍 넘어요.
워터파크 가는 것은 평생 기억에 남는 이벤트이기에 그 정도는 쓸 만한 가치가 있고, 집에서 물장난 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요? 엄마에겐 워터파크가 훨씬 의미 있고, 큰맘 먹고 하는 이벤트일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집에서 하는 물놀이나 워터파크나 모두 즐거운 놀이입니다. 집에서도 놀아도 워터파크에서 논 것만큼이나 신나게 놀아요.
이렇게 계산(?)이 끝나자 매일 집에서 하는 물놀이만큼 가성비 좋은 놀이가 없더라고요. 아이들이 물을 계속 틀고 놀아도 가급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가끔 "물이 넘치면 수도꼭지를 잠그자."하고 엄마의 감정 실리지 않도록 거들기는 했어요. 혹여나 엄마의 말 한마디에 놀이의 흐름과 재미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요.
매일 까르르 웃고 논다면 매일 큰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행복한 기억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운 아이는 내일도 행복하게 살아요. 아이 삶에 유년시절은 행복한 추억으로 기록될 거예요.
+ 물감
하루는 아이들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제가 한눈을 판 사이에 물감통을 턱 잡더니 쭈우우우우-욱! 짜내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본 순간 동공이 커지고, 눈빛이 크게 흔들립니다.
"아껴 써야지!"
"왜 이렇게 낭비하니!"
일을 하느라 물감을 쓸 때에도 한 번 짤 때 엄지손톱만큼 짜서 썼거든요. 학용품은 아껴 쓰는 거라고 하도 들어서 세뇌되었거든요.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냥 눈을 감았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웃었거든요.
저렴한 물감은 비싸 봐야 오천 원 정도 합니다. 1시간에 몇 만 원씩 하는 미술학원, 창의 미술 다니는 것보다 오늘 집에서 물감 한 통 다 쓰고, 몇 시간을 노는 게 더 이득이에요.
사실 아이들 노는 데에 그렇게 큰돈 안 들어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오히려 더 적게 들 때가 많아요. 휴지는 최저가로 구매하면 배송비 포함해도 하나에 200원도 안 해요. 물티슈도 끽해야 천 원이에요. 마구 풀어헤쳐 재활용이 불가능한 휴지는 잘 모았다가 미술놀이에 한 번 더 활용하여 놀 수 있고, 물티슈는 비닐봉지에 담으면 재사용이 가능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의 값어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불가능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해지고, 놀이의 진가를 알아보게 될 거예요. 지금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행복합니다.
+ 살림살이
과학 실험할 때의 일이에요. 아이들이 한창 공룡에 빠져 있을 때, 그림책마다 나와있는 화산과 용암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재연해주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 베이킹소다를 활용한 화산 폭발 실험을 해보기로 했어요.
베이킹소다도 넉넉히 있었고, 식초도 비싸지 않은데 살림살이로 ‘장난’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재료를 소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베이킹소다 조금, 식초도 조금 넣었더니 화산 분출도 소극적이더군요. 엄청난 폭발을 기대했던 아이들이 실망하자 당황스러워서 그 위로 더 붓고, 더 붓었지만 결과는 꽝이었어요. 다른 용기에 처음 넣었던 양보다 10배씩 넣었더니 그제야 만족스러운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콜라 폭발하는 영상을 보더니 이 실험을 꼭 해보고 싶다며 강력하게 어필했어요. 콜라에 멘토스를 넣었더니 부글부글 끓던 콜라가 하늘로 솟구치는 영상이었어요. 코카콜라는 펩시 콜라보다 가격이 더 나가기에 나중에 해보자고 미루다가 치킨 배달하면 서비스로 받는 펩시콜라로 실험을 해보았어요. 멘토스도 길거리에서 홍보물에 곁들이로 들어있던 것을 모아 2-3알 넣었지요.
멘토스를 한 개 넣는 순간 직감적으로 제가 화산 폭발 실험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요. 유튜브에서 봤던 거대한 콜라 폭포는 없었어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 아까워 구매를 미뤘던 코카콜라가 펩시콜라에 비해 탄산이 더 강해서 실험에 더 적합했던 거예요.
실험에 사용했던 멘토스에도 실패 원인이 있었어요. 멘토스의 표면이 콜라 내부의 표면장력을 약화시키면서 순식간에 이산화탄소 양을 증가시켜 폭발하는 거래요. 그러니 2-3알 넣는 걸로는 택도 없었던 거죠. 결국 코카콜라와 멘토스를 재주문하고 재실험을 했어요. '극적인 실험 결과를 내려면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구나.', '푼돈 아끼려다가 돈이 이중 삼중으로 드는구나.' 깨닫게 되었죠.
+ 새하얀 A4용지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