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도가 다분한 엄마의 미술놀이
한 때 공예디자인 강사였던 엄마는 어떻게 미술놀이를 했을까요?
아이들과 물감놀이를 하려고 해요. 팔레트에 물감을 조금 짜고, 붓을 이용해서 종이에 그림을 그릴 거예요. 가을이니까 가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좋겠어요. 엄마는 계획이 다 있어요.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파란색 하나로 그림을 다 그렸어요. 이유는 파란색이 좋기 때문이에요. 하늘도 파란색, 나무도 파란색, 사람도 파란색...
“빨간색으로 그려볼까?” 하면 자신의 그림에 매우 흡족해하며 빨간색은 필요 없대요.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이나 햇과일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을 표현하고 싶었던 엄마는 실망스러워 기운이 쭉 빠집니다.
'노란색 물감으로 은행잎도 그려보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 말을 했다간 놀이의 맥이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자꾸 끼어드는 것이 달갑지 않을 테니까요.
색칠이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데 이번엔 건이가 종이에 물을 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이도 깔깔거리며 웃더니 따라 부었어요.
이쯤 되면 "뭐 하는 거야!"하고 소리치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눈을 감고 뒤로 한 발 물러섰어요. 아이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는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아이가 선택하고, 아이가 만든 놀이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머리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억지 '참을 忍'을 그리고, 가슴엔 불기둥이 솟고난 자리에 사리가 쏟아져 나와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인고의 시간이었어요.
아이를 잘 키워 번듯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가 매한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이 마음과 다른 아이에 비해 우리 아이만 뒤쳐지고 있다는 열등감과 불안감, 그리고 부모로서 자질과 책임을 탓하게 되는 죄책감이 만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잘 키워보겠다고 한 일이지만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된 부모의 양육태도가 오히려 부모와 아이 사이에 균열을 만들고 각종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누구나 계획은 다 있어요. 누구나 색다른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삶을 풍요롭게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 있죠. 그런데 아이가 엄마의 계획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며 분노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 억압과 통제입니다.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고, 예상한 결과물을 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의 창조성’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통제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는 '아이의 자유로움'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수용하지 않는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가로막습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하면 자기 자신의 힘을 믿고 선택해 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부모의 압력에 눌려 마음껏 발산해보지 못한 감정과 욕구는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과 분노로 쌓아두죠. 통제가 강한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잘 키워보겠다고 의도하지 않아야 엄마의 의도대로 아이가 잘 자랍니다.
엄마가 아이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커지고 조급해질 뿐이에요. 현명한 부모는 아이보다 반 발자국 뒤에 선다고 합니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상태로 육아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아요. 그러면 매번 아이의 성장에 놀라워하며 감탄하고, 아이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행복을 만끽할 테니까요.
“이렇게 하면 더 잘할 거야. 이렇게 해봐.”
물론 엄마가 아이에게 제안하고 지도할 수 있죠. 하지만 지나치면 참견이 되고,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간섭이 반복되면 아이는 '내가 못하고 있구나', '또 내가 틀렸구나', '엄마는 내가 하는 것이 못마땅하구나' 라며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런 놀이에 아이는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없어요.
엄마가 옆에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면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잔소리로 얼룩진 놀이는 아이를 위축시키고 주눅 들게 할 뿐이에요. 완벽한 원과 반듯한 선, 조화와 구도, 다양한 색채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삐뚤빼뚤하고 불완전하지만 사랑이 녹아있고, 추억으로 칠해져 있는 그림입니다.
‘여기만 칠하면 딱 좋겠는데!’라는 말이 하고 싶어지면 그런 그림을 엄마가 그려보세요. 아이의 놀잇감을 준비할 때 엄마 것도 준비해서 아이 옆에서 엄마도 엄마의 놀이를 하는 거예요. 각자의 놀이에 집중하고, 유능함을 표현하는 거지요. 이것이 아이를 존중하면서 엄마도 함께 노는 ‘엄마의 놀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