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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욕심을 버려야 보이는 아이의 눈빛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엄마가 있었어요. 어디 한 분야에 빠져 몰입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 같다가도 금방 시들한 것 같아 고민이라면서요. 돌이켜보면 아이가 좋아했던 것이 분명 있긴 했는데 엄마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않아 몰입의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자책했어요.


 순 우리말에 ‘눈부처’라는 단어가 있어요.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일컫는 말인데 누군가를 쳐다봐야만 나타나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도 이 눈부처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눈에는 그 사람의 감정이 담겨있어 눈빛을 통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아이는 부모가 따뜻한 눈빛을 바라봐주었을 때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아이의 눈빛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본 적이 있다면 그 눈빛이 얼마나 강한 빛을 내는지 아실 거예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이의 눈길이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눈빛이 어떠한가를 잘 보아야 해요. 아이의 눈빛을 본다는 것은 아이에게 집중해서 아이의 욕구와 감정을 살피는 것을 말해요.  쉬운 것 같지만 엄마의 욕심이 앞서면 가장 어려운 일이 됩니다.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 욕심이 눈이 멀게 해요


 아이들이 한글을 똑 떼었을 무렵 욕심이 생겨 아이들의 읽기 독립을 재촉한 적 있어요. 엄마들 사이에서 읽기 독립에 좋다고 소문이 난 ‘대박 책’을 구입하고, 하루에 읽을 양을 정하고,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 선물을 주는 등 보상을 주는 방식이었어요. 


 성공했을까요? 효과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엄마가 세운 목표와 방향을 아이들이 잘 따라줄 리도 없을뿐더러 '대박 책'은 모두 철저하게 외면당했어요. 책을 안 보는 이유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제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재미없어서 보기 싫다는데 왜 내가 화가 날까?' 하고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른 집 아이는 책의 바다에 빠져서 하루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지, 누구는 속독을 하고, 누구는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한다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읽기 독립도 안되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던 거예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아닌 엄마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고른 것이 실패의 원인인 것 같아 초심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눈빛을 살폈습니다. 아이들이 자동차 주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이번엔 대박 책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책 위주로 사주었어요. 하지만 그런 책조차 아이들의 외면을 받았어요.

 

 무엇이 문제인가 다시 고민했습니다. ‘이 자동차 책에도 내 욕심이 있구나!’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읽기 독립을 서두르고 어떻게든 결과를 내어 나를 빛내줄 아이로,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번에도 역시 아이의 눈빛을 보지 못했던 거예요. 보는 척만 한 거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밉고 화가 났습니다.


+ 욕심을 내려놓고 교정시력을 되찾기 위한 엄마의 몸부림


 책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욕심으로 하나하나 사놓은 책들 위로 먼지가 쌓여가고, 전시하듯 세워져 있는 책장도 꼴 보기 싫었어요. 집 안을 가득 채운 수천 권의 책과 그 책을 채운 책장은 내 수치심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였어요. 좋은 교육 환경에 책 읽는 가족 문화를 가진 집,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든 좋은 엄마라는 포장지였어요.


 좋은 사람,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자신의 상황 및 환경을 겉보기에 그럴싸하게 포장하죠. 자신의 진짜 알맹이는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이 들킬까 봐 여러 번 포장해서 커다랗게 부풀립니다.


 나를 겹겹이 감싼 포장지를 마주하는 순간 수치심을 느꼈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어요.

 “왜 이렇게 사 모았어! 이 책들, 책장들 너무 숨 막혀. 아이들이 얼마나 숨이 막히겠어! 애들 위한답시고 사놓은 책, 사실은 다 네가 좋아서 산 거잖아! 돈 아깝다, 돈 아까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한 걸음도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좀 적당히 따라와 주면 안 돼? 너네는 왜! 뭐든 다 너네 맘대로야!”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 더 급해서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깊은 몰입으로 가지 못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길이 낯설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쪽으로 오도록 끌어당기고 있었어요. 아이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어린아이가 되어 아이와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 중 하나였어요. 줄을 계속 잡아당겨 아이를 강제로 끌고 오거나 줄을 놓아버리고 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함께 걷거나. 억지로 잡아당기면 아이는 나를 따라오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른 채 살아갈 거예요. 반면 아이 뒤를 따라가는 것은 엄마가 엄마로서 성장하겠다는 의지의 길이에요. 고민의 여지없이 제가 선택할 길은 분명했어요.


 수치심과 분노 등 억압된 감정을 풀어내고 나니 눈빛을 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었어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됐어요. 엄마 눈에서 욕심이 걷히면 시야가 밝아져서 비로소 아이가 있는 그대로 보여요. 아이가 좋아하는 건지 나를 위해서 참는 건지,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인지 나를 돌보는 것인지도 알게 됩니다. 


+ 몰입의 조건 :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몰입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서서 밖을 보고 있어요. 그 시선의 끝은 4차선 위의 정차된 차에 가 있어요. 아이들은 도로에 나가면 볼 수 있는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사준 책에는 신형 아이오닉 5 안 나와요. 막 출시된 신형 쏘렌토가 보고 싶은데 책에는 2014년형이 나옵니다. 신차가 나오기 전에 출간된 책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막 출시된 자동차, 출시 예정인 자동차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자동차 잡지!'

                        

잡지를 종류별로 사주면서 그 안의 기사를 읽었으면 하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엄마의 마음과는 별개로 아이들은 주야장천 밤낮없이 시세표를 봤어요.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와 숫자를 보고 또 봤어요. 아이들은 즐거움이 있는 것은 반복하고 싶어 해요.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뜯어말려도 합니다.


아이의 깊은 몰입을 응원해주고,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몰입의 절정을 경험할 수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창밖을 보던 아이들이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신형 소렌토, 아우디 Q8, 벤츠 E클래스” 하면서 다 맞히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잡지를 가져와 이름을 가리고 물어봤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차까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400대가 넘는 차를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국내외 400여 종에 달하는 차량의 외관뿐만 아니라 성능, 크기, 가격까지 해박해서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예산과 라이프 스타일 등에 적합한 자동차를 추천하고, 그 차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대안으로 유사한 성향의 경쟁 자동차까지 소개할 수 있는 자동차 백과사전이 됐어요.


 더 나아가 디젤,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등 자동차 동력에 따른 분류와 마찰력, 구동력, 관성, 제동력 등과 같은 자동차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공부합니다. 물리 시간에 외우고 외워서 배운 것을 아이들은 즐거움으로 습득했어요. 물론 이게 공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뿐만이 아니라 4억짜리 람보르기니 1대를 구입할 가격이면 국산 경차를 몇 대 구입할 수 있다며 사칙연산을 익히고, 영어로 표기된 회사와 자동차 이름을 가지고 영어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과학기술과 시대 문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작은 기술 하나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아이가 막 출시된 차를 궁금해하면 함께 자동차 대리점을 방문해서 꼼꼼히 살펴보았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면서 다가오실 때는 남의 영업점에서 이러는 게 실례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럴 땐 여러 전시장이 모여있는 대형 쇼핑몰(*하남 스타필드)이 으레 구경하러 왔겠거니 하셔서 관람하기 좋더라고요. 강남과 고양시에 각각 위치한 현대 모터 스튜디오, 강남 BEAT360, 인천 BMW드라이빙센터도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차는 집 앞만 나가도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열광하는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맥라렌, 애스턴 마틴, 페라리 등 수입차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슈퍼카를 만나기 위해 압구정동, 논현동, 청담동 등 강남 일대를 시간이 날 때마다 드라이브했어요.


이전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모르겠어. 생각해보고."라며 구체적인 말이 없더라고요. 내심 답답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는데 자동차에 몰입하면서부터 아이들의 꿈이 구체화되더라고요. 건이는 자동차 CEO가 되고 싶고, 강이는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대요. 그래서 자신들이 기획하고 디자인한 차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대요. 이처럼 아이들은 진정한 몰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미래를 꿈꾸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지 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세요.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아이의 작은 꿈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화시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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