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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y 11. 2023

걸어서 시드니 속으로

뉴질랜드에서 시드니로 날아왔다. 두 나라의 기온과 공기는 매우 마음에 든다.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처럼 선선하다. 뉴질랜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차분함에 비해 시드니는 활기차다.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제일 큰 공원 하이드파크를 따라 써큘러키를 향해 걸었다. 적응 1단계인 맵을 열었다. 맵을 켜고 길을 걸으니 영어로 물을 필요가 없으니 이게 외국인가 싶다. 호주의 영어는 영국식 발음에 말의 속도가 빠르니 단어 한마디도 말아 듣기 어렵다. 내 귀의  필터에는 전혀 걸리지 않는다. 그나마 남편은 같이 들어도 나보다 낮다. 못 알아듣는 아내는 번역기를 돌린다. 한국어를 영어로 보여주니 상대방도 따라 웃는다. 나의 의사소통법은 언어보다  미소와 손짓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 언어는 여행길에 어둠보다 더 무서운 공포다. 현지에서 안 통하는 언어는 귀국 후 숙제다.

 20년 전의 그리움을 찾아 어둠이 짙어가는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시드니 하면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딸이 10살 때 그때도 자유여행으로 호주에 왔었다. 그때의 감동은 사진 속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신났었다. 우리는 말로만 듣던 것을 실제 보고 확신하게 되는 그 순간을 호주 대륙을 발견한 기쁨처럼 좋았었다.

항구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는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에 실루엣이 윤곽을 따라 여전히 멋지다.

오페라하우스! 관광객과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넘치는 곳. 공연장이 바닷가에 있으니 하늘과 바다와 어울림이 최고로 멋진 곳이 아닌가? 도시 중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빛깔이었을지?  다시 와서 보니 건물 입장권이 3단계로 바뀌어 있었다. 시드니에 왔는데! 공연티켓을 살까 말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맵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야 하는데 뱅글뱅글 같은 곳으로  오게 하니 걸음수만 늘어났다. 발바닥이 얼얼해질 즈음에 친절한 배달청년의 도움으로 도시의 방황은 멈추었다. 여행은 배울게 많다. 맵이 가리키는 동서남북을 헷갈리게 보는 방향 부적응 탓이다. 그나저나 공연을 볼까 말까.

 다음날도 우리는 걸었다.

걷기 좋은 길!  멀리 가는 길을 어떻게 가야 빨리 갈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정답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거라니, 오늘 두고 볼 일이다. 부부로 사는 세월이 40년 즈음이니 서로의 성격을  알만큼 다 아는데도  너그러이 봐주는 것이 잘  안 될 때가 많아 아웅다웅한다. 성서대로 살아야 사랑이라는데 사랑을 너무나 어렵게 만드셨다.

시드니의 하이드 공원과 보타닉가든이 중심가에서 걸어서 30분이다. 푸른색의 수목과 차 없는 길은 지루할 틈이 없고, 시내중심가 공원에는  달리는 사람, 누워있는 사람, 걷는 사람마다 힐링 중이다. 역사가 오백 년은 더 되어 보이는 고목나무의 장엄함, 누구누구의 유명인을 상징하는 동상에서 품어져 나오는 분수의 물줄기까지 최고로 잘 어울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좋은 공원이다. 보타닉공원은 바나나의 칼라풀, 천사의 나팔꽃의 뷰티풀, 새의 꽃술 쪼아 먹는 장면까지 모두 다 원더풀이다. 공원의 풀밭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풀밭에 누워 책을 읽으면 멋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남녀노소가 책 보다 스마트폰을 읽고 있어서 멋있는 사람은 이제 보기 드물다.

시드니 항구의 동쪽 끝으로 걸어가잔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동시에 잘 보이는 미시즈 맥쿼리 포인트가 나온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공원길이니 무료다. 가는 길은 여러 방향에서 갈 수 있지만 오페라하우스 계단옆으로 가면 길이 있다. 공연은 저녁에 이뤄지니 낮에는 열어 놓은 게 아닌가? 발걸음이 빠르다. 바다와 공원사이 초원 위에는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그림처럼 어울린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는 지점까지 왔다. 포인트의 용어는 배경이 멋진 곳인가 보다. 다시 더 걸어가면 바위 아래 넓은 공간이 나온다. 바로 의자모양 넓은 바위가 보인다. 맥쿼리라는 영국인 출신 총독 부인이 유명해진 것은 아련한 사연이 있었단다. 시드니를 감독하던 영국인 출신 총독이 죄수들 관리로 자주 출타 중이니 남편의 안녕을 위해 기원하는 곳이었다니 우리의 망부석 스토리와 비슷하다. 부인의 의자모양을 만들기 위해 당시의 죄수들이 고생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스토리는 아니지만 삐딱한 생각을 접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니 다리가 멀쩡할 때 걸어가 보시라.

시드니를 더 가까이  더 오래 기억하려고 시내는 걷고 물어 다녀보니 여행자에게 강추할 만큼 걷기에 최적코스가 많다. 시드니의 날씨와 길의 상태가 좋아서 뛰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이니 누구나 좋아하는 것으로 걷고 뛰자. 나도 덩달아 짧은 조깅복장으로 뛰어 보고 싶었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허락하지 않아 하루 2만 보 이상을 걷게 되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밀링 포인트 천문대는 항구에서 진입하기 좋다. 단, 미리 신청해야 안을 관람할 수 있고 대신에 바로 앞 잔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버브리지를 조망하기 좋은 명소다. 시드니 대표적인 쇼핑센터인 빅토리아빌딩은 로마네스크식 건축미를 감상하기에 좋으며 내부 구조의 역사적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며 눈호강하기 좋다. 워킹 포인트인 달링하버는 차가 안 다니는 부둣가에 고급 식당들이 즐비하고 각종 크루즈 출발 지점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크루즈 여행이 되는 길이다. 플레이 포인트는 달링쿼터로 가는 길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과 물분수가 있어 개구쟁이 아이들이  매우 흥미로워하는 길이다. 세인트메리스 성당은 결혼식장으로 유명할 만큼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고 찬란하게 햇볕과 어울린다.  성당 안에서 소망의 촛불을 켜서 기도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숙소에서 멀어도 2시간이면 가는 길들이 바둑판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의 미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길을 나서면 시간에 비해 지루할 틈이 없이 주변풍경과 낯선 곳의 지리를 익히느라 걸음수도 많아진다. 시드니라는 도시를 알아가는데 두 다리의 역할이 매우 소중하여 다리 팔팔할 때 이곳에 오거든 걸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길을 걷다 눈에 띄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면 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의 여유다. 다리가 지칠 즈음에는 거리 어느 곳이나 벤치가 있고 공원이 있으니 쉬다 걷다 하면 된다.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지의 궁금함은 나의 몫이다.

길 위에서 우리의 갈 길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맵이 단연 최고. 구글이 만든 맵은 한글서비스도 되니 고맙다. 맵 실수보다 내가 갈 위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손발이 따라가니 고생이다. 발품을 팔아 간판을 외우고 하였는데 그 길이 그 길이고 갈 길은 모르겠다. 오늘도 친절한 배달맨 찬스를 써보자. 생큐! 한마디에 인증샷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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