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아주 가까운 지역이다. 시리아는 오랜 기간 내전이 심한 여행위험 경계지역이다. 우리는가까이 접근하기가 두려워서 고민했던 지역이어서조심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신께 우리의 안녕을 간곡하게 빌며길을 나섰다.
차는 5시간여 만에 카흐르만마라슈에 도착하였다. 어느 도시나 지역특산물 광고가 눈에 띄듯이 도시의 상징을 알려주는 아이스크림 간판이 보인다.
"어머나! 그 흔한 아이스크림을 이렇게나 많이 광고하나?"
"그 이유를 곧 알게 될껄!" 남편은 다녀온 경험이 있는지라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숙소에 짐을 두고 거리로 나왔다.
잘생긴 청년이 우리를 미소로 부른다. 그는 서커스 하듯 긴 막대 끝에 아이스크림을 깔때기에 꽂아 줄듯 말 듯 장난을 친다. 이 또한 관광의 묘미일 거라 싶어 손을 내미니 꼬깔콘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하하하" 주변의 사람들도 유쾌하다. 그는 민망해하는 내게 공손하게 콘을 안긴다. 사람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 내내 돈두르마 묘기 대행진은 계절 구분 없이 튀르키예 관광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가게 주인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조금씩 다르나 여행객들의 실수가 더 재미있다.
카흐라만마라슈의 명물인 돈두르마는 다른 아이스크림과 달리 염소젖과 쫀득한 살렙에 얼음과 소금을 넣어 만든다. 아이스크림은 쇠막대로 저어주니 매우 쫀득하다. 돈두르마로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이벤트도 열리고, 스테이크처럼 잘라먹기도 하고, 피데 안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만들거나 피스타치오 가루를 뿌려 먹기도 한다.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는 재미 또한 여행의 맛 아닌가. 돈두르마의 원조가게 앞의 모형을 배경으로 한 움큼 베어 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귀국하고 나서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북서쪽 133km 지역에 역사상 최고로 강한 지진이 이 도시를 흔들어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건물아래 묻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이다. 튀르키예 지도를 열었다.
"아..."
몇 달 전에 다녀온 카흐라만 마리슈와 아디야만이 포함되어 있다. 연일 방송과 신문은 피해에 따른 구호를 요청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남한 정도가 지진피해라니 믿기지 않았다. 튀르키예를 여러 번 다녀왔기에 그때마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던 따뜻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길을 헤맬 때 앞장서 걸어주던 청년, 넵룻산 정상이 춥다고 담요를 빌려주던 할아버지,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생각나 집에서 따온 석류를 건네던 아저씨, 차가 고장 났을 때 공짜로 고쳐주던 카센터 사장, 화덕에 구운 빵을 맛보라고 싸주던 빵집 주인 등등 셀 수없이 많은 인연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는데 생사가 걱정되었다. 그곳 상황이 수천에서 수만으로 인명피해와 부상자가 늘어가고, 집을 잃고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는 사람만도 100만 명이 넘었다는 소식과 열악한 대피 시설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어 많은 구호 물품이 필요하다고 언론이 전하였다.
"주여! 이들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 그러나 기도만 할 수없었다. 뭔가 도울 방법이 있을 거다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으로 이곳저곳을 검색하였다.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안내하는 물류창고의 주소를 발견하고 필요한 물품을 정리하여 우체국으로 갔다. 이모저모 아는 지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부탁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같은 마음이다. 튀르키예에 대한 우리의 마음들이 형제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들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세상이다 보니 매우 조심스럽지만 진심이 통할 거라 믿는다. 이번 지진이 원자폭탄 수백 개의 위력과 맞먹을 정도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나 종교적 갈등이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앞설 수 없다. 기적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아직도 구조와 구호는 계속되고 있다니 기적 같은 일이 순간순간 일어날 것이다. 매일매일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 세상에서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누군가는 얼마나 숨 쉬고 싶은 세상 아닌가,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