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룻산으로 가는 길은 카흐라만마라스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가량 걸린다. 튀르키예 여행 위험경계지역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서안전여부에 대해 자료도 찾아보고 현지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문제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출발하였다.차는 꼬불거리는 산비탈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간다. 마음은 콩닥콩닥하고심박수는 높아간다. 자유여행은 동반자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다.
"우리 돌아갈까요?"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길이 험하고 낯선 곳이라서 되돌아가기도 만만치 않아 믿을 것은 차밖에 없다. 다행히도 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올라간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흐른뒤에어우프랏 넴룻호텔의 돌간판이보이기 시작한다.
"야호!도착이다!"
호텔은 허허벌판에 오직 하나뿐인 단층건물이었다. 넴룻산 일출을 보기 위해서2000m 이상을 올라온것이다.호텔 투숙 손님은 오직 우리뿐인 듯 썰렁하다. 매니저는 우리를 기다란 단층건물로 안내한다. 방은넓고 온기가 있다.
우리는 종일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배가 고팠다.투숙객이 없어서 말만 잘하면 부엌을 잠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얼큰한 맛이 그리웠던지라 라면의 실물을 보여주니 잘 말해보잔다. "Help cook food." 주방장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부엌으로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세계의 공통어인 몸언어가 통한지라 가스레인지와 냄비를 빌려 라면을 끓였다. 라면의 맛은스프라고,국물까지 다 비웠다.
우리는 배도 부르고 몸도 따뜻해지니 넴룻산을 오르기로 하였다.호텔에서 차로 약 20분쯤 가니 입구가 나왔다. 입구에서만난 현지인이 정상은 바람이 많이 분다고 담요를 빌려준다.
돌계단을 따라조금 더 들어가니 돌산이 하늘까지 닿아 보인다. 고산지대의 삭막한 돌틈사이로 낮은 키의 꽃들이 반긴다. 꽃들은 마른 잎을 단 체 강인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생명 있는 것마다 축복 아닌 것이 없다. 고산지대의 건조하고 척박함속에서도 하늘에서 내린 비는 엄마의 탯줄이 되어바위틈까지 생수를 내려 주었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은 곧 신의 축복이리라.정상을 향해 숨이 차고 헉헉거리는 인간에게도 숨 고르기를 하며 쉬어 가란다.고산지대라서 숨 막힘은 가다 서다 호흡하니 매 순간마다 느끼지 못한 공기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살게 한다.
어느새 돌무덤 앞에 이른다. 무덤은 자갈로 덮여 있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해발 2150m 정상의 원추형 돌무덤은 기원전 1세기에 콤마게네 왕국을 다스렸던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이라고한다. 그는 정상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부수고 자신의 조각상을 비롯해 제우스, 헤라, 티케 신들의 조각상, 사자상, 독수리상을 각각 세웠다. 그리고 바윗덩어리를 주먹 크기로 쪼개 언젠가는 죽지만 하늘 가까이 자신의 무덤으로 쓰려고 50m 높이의 고깔 모양의 돌산을 만들었다. 그가 죽어서 하늘 가까이에 묻히면 영원히 살게 될 거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이 되고픈 꿈은 지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되어 돌산에 묻히고 말았다.그가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돌덩어리를 30㎞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왔다고 하니자동차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산에 어떻게 이 거대한 돌을 끌고 왔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넴룻산의 신들을 상징하는 돌로 만든 석상들은 머리만 남은 체 무덤가에서 수호신처럼 장엄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섬찟하다.
영원히 발견되지 않고 미스터리로 묻혀있을 돌무덤이 세상에알려지다니 발견은 위대하다. 낯선 이방인이 멀리 돌산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는 허허벌판에서 돌산에 묻혀 있는 신들과 소통하는지도. 한참을 바라보다 천천히 걸어간다. 여기서는 누구나 순례자의 모습이다.
다음날 일출을 기대하며산을 내려왔다.고요한 산장의 밤은 적막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네시 반이 되어 반수면 상태로 숙소에서 나와 넴룻산으로 향하였다. 입구에 도착하니 어제와 달리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넴룻의 일출을 보기 위해 장장 10시간을 버스를 타고 온 팀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들이 일출에 대한 기대로 매우 밝고 선하다. 어둠을 뚫고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르는데 말 한마디 없이 침묵의순례길이 되어 준다.
아뿔싸! 산 정상은 인간의 접근을 막을 듯 매서운 칼바람에 이가 덜덜거릴 정도로 춥다. 긴 밤을 지새운 정상의 석상들도 해 뜰 순간을 기다리는 양 웅크리고 있다. 우리는 서서히 물들고 있는 하늘을 응시하며 추위와 바람을 담요로 다독였다.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둥그런 원추형 무덤 앞에서 일출을 바라보다니! 너무도 환상적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정상의 바람은 매섭고 추위에 떨긴 했지만 아디야만의 첩첩이 펼쳐진 능선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의 무덤가에서 온 마음을 다해 소망을 빈다.
' 안녕하게 하소서'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소망이 되어 하루하루 삶을 숨 쉬게 한다.
매일 보는 태양인데도 감격스럽다. 석상들에게 햇살이 비추니 온기가 느껴진다. 석상들이 작렬하게 내리 비취는 태양과 함께 산아래를 굽어본다. 사람들은 서로 국적이 달라도 일출을 맞이하는 마음들이 행복하게 보인다. 옆사람과도 감격의 순간들을 미소로 인사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입구에서튀르키예 여인들이 춤을 춘다. 신을 만난 기쁨을 나누는 거란다. 그들은태양의 기운이 그들의 영혼 속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도 행복한 미소를 보낸다. 여행 위험인접지역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이 평온해진다. 방금 전에 넴룻에서 같은 해를 바라보고 왔다는 것은 같은 추억을 공유한 셈이다. 어서 속히 시리아국경지역이 평화로이 살게 될 날을 위해 머리 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