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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18. 2023

보랏빛깔의 샤프린블루

도시 이름에 꽃 이름 ‘사프란’이라니 은근 낭만적일 거라는 기대는 맞았다.

마을은 어떤 빛깔일까? 샤프란꽃이 보랏빛이니  마을의 상징도 보랏빛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다양한 칼라가 어울리는 곳이다.

아마도 신안의 퍼플섬이 떠올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마을은 꽃이름과 별개로 문화유산으로의 의미가 큰 곳이었다. 샤프란을 포송포송하게 해주는 섬유유연제 정도로 알고 왔다. 실제의 용도는 식재료와 약용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것에 놀라웠다.

마을 입구에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판과 샤프란꽃 조형물우뚝 솟아있다.

280여 년 전의 중세 오스만 튀르크 시대 전통 가옥인 주황빛 지붕의 차르쉬는 마을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게 하였다. 

차르쉬에서 하룻밤을 자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겨울에는 단열이 약한 벽에서 느껴지는 냉기로 해가 솟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마을의 건축물이 옛날 전통방식으로 지어져 보존의 가치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난방이 취약해서 히터가 있거나 갈탄을 이용한 난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샤프란볼루에 오는 세계 각국 사람들은 편리한 현대적인 풍경보다 옛것에 대한 정감 있는 풍경을 찾아 이곳에 와서 '원더풀'을 외친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자신을 편하게 내려놓을 곳은 의외로 멋진 휴양지보다 고향 같은 시골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에너지를 얻어간다. 나도 그렇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노란색 칠이 되어 있는 르쉬. 안으로 들어가니 키 크고 잘생긴 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몇 달 전에 이곳을 인수했다는 사장은 수선할게 많다고 하면서도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낸다. 재벌 2세 느낌이 드는 그의 경영방법은 모르는 게 많아서 옆집에 물어보러 가는 게 더 많다. 그것을 다 들어주는 옆집 아저씨가 이상할 정도다.

사장이 얼마나 천화태평인지 다음날 조식 때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2층으로 안내한다. 방문을 여니 삐거덕거리는 나무바닥에 알록달록 전통카펫이 깔려있다. 옛날집이라 방바닥의 기울기가 다른지 침대가 삐딱하게 놓여 있지만 시트는 새하얀 빛이 아주 깨끗하게 보인다. 화장실은 최소한의 용무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룻밤쯤이야.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골목길은 반질반질한 돌길다. 길에서 넘어지면 바로 꽈당할 것 같아 조심조심 기웃거린다. 골목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여유와 무관심을 건들어 손짓하니 입가를 혀로 한 바퀴 돌리며 관심을 보인다. 녀석은 여행자 정도는 경계도 없이 졸졸 따라온다.

오래된 건축물 사이로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길을 숨바꼭질하며 내려왔다. 골목길 사이로 카페들이 보인다. 샤프란의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카페로 들어갔다. 샤프란차를 주문하니  보랏빛대신에 노란 빛깔 차를 가져온다.

샤프란은 뾰족한 암술머리를 말려서 음식에 맛이나 색을 내고 염료로도 귀중하게 사용되는데, 금보다 비싸다고 할 만큼 고급 향신료라고 한다.

샤프란 차는 실처럼 가느다란 샤프란을 끓은 물에 띄우니 차의 색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찻잔을 들어 꽃술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한입 마시니 느낌이 몽롱하더니 뇌신경이 편안해진다. 차 한잔이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모금 여유를 부리며 차멍을 한다. 따라오던 고양이는 어느 틈에 꾸벅꾸벅 오수중이다.

로쿰가게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그녀는 미소와 한국어로 인사한다. 샤프란으로  만든 로쿰을 맛보기로 건네준다. 로쿰은 샤프란 꽃술을 잔뜩 묻혀 맛나고 향이 다.

사프란블루는 오스만시대부터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여 돈이 많은 무역로의 역할을 한 도시답게 건축물들이 멋지고 크다. 사람들은 풍요로움 속에서 아름답고 큰집인 차르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한 도시의 풍경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지금은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다는 점을 느낀다.

마을은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프란블루는 관광을 한다기보다는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길을 따라 무조건 위로 올라가니 흐드를륵언덕이 나온다. 정상에 오른 듯 마을이 잘 보인다. 튀르키예의 옛날 시가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스만튀르크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자욱한 연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아늑하고 아담하다. 차르쉬의 창문들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무슬림들의 기도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언덕을 따라 다시 돌길을 걸어 내려오면 마을입구가 나온다. 마을입구에는 둥근 지붕의 목욕탕인 하맘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터키탕이라는 표현좋아하지 않는다. 튀르키예 목욕탕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신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의식 중 하나로 목욕을 하면서 하맘이 생겨났다. 하맘을 체험해 보기로 하였다. 여탕과 남탕이 따로 있다.

우리의 대중목욕탕과 달리 뜨겁게 데운 대리석의 증기로 땀을 내고, 수건으로 때를 밀어 물로 몸을 씻어 낸다. 탕에서는 옷을 다 벗지 않고 속옷만 입고 때밀이 아줌마의 부드럽고 능숙한 손놀림에 맡기면 된다. 우리의 때밀이와 비슷하다. 밖에 나와 하맘의 지붕을 보니 꽂혀 있는 유리병 위로 수증기가 올라온다. 오랜만에 몸호강을 하니 숙면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나른하니 어서 쉬고 싶다. 차르쉬에서 하룻밤은 하맘 덕분에 잠이 잘 올 것 같다.

조식시간이 되어도 통 감감무소식이어서 식당을 기웃거렸다. 주방장도 없이 사장이 "굿모닝"인사를 건넨다. 아침식사에 대해 궁금해하니 지금 시장을 갔다 오겠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성질 급한 우리는 차르쉬를 나왔다. 마을 식당에서 초르바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숙소에 오니 그때서야 올리브, 오이, 토마토, 큼지막한 빵바구니로 상을 차려준다. 할 말을 잊고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하니 사장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본인은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것저것이 서툴다고 한다. 부디 빨리 업무파악이 되길 기도할 뿐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마을의 돌길을 걸어 내려왔다. 마을은 다른 빛깔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사람들마다 가게를 기웃거리는 표정들이 멈추다 걷다 하면서 살까 말까 망설인다.

로쿰가게 아가씨가 저 만치서 금방 알아보고 맛보기 로쿰을 건넨다. 두 번째인데 공짜로 먹을 수 없어서 선물로 가져가려고 몇 개 집어드니 양손 엄지하트를 보이며 좋아한다.

샤프란을 파는 가게에는 꽃잎이 바구니 가득하다. 꽃송이 속에 노란 암술이 돋보인다. 샤프란 차의 진심을 보여 주는 거라 믿으며 금보다 비싸다는 차를 샀다. 샤프란에 물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딱딱한 돌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만큼 여러 빛깔의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친절한 순백의 로쿰가게 아가씨

철없는 노란색 숙소의 사장님

희뿌연 수증기 속 때밀이 아줌마

주황색 지붕이 멋진 마을에서 미소 짓게  하는 보랏빛 흥분들이 좋다.

마을의 매력에 더 이상 발목이 잡히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다른 빛깔의 여행지로 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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