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치열한 공방전

by 알뜰살뜰 구구샘

<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7편입니다.



남은 식권 열몇 장을 답례품으로 바꿔 가란다. 이걸 받아야 할까? 수화기를 들고 짧게 침묵했다. 나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답례품은 현금이 아니잖아요. 신혼부부에게 불필요한 지출일 수도 있어요. 본사랑 조율하는 게 번거로우시겠지만, 환불처리가 될 수 있도록 꼭 부탁드립니다."


일단 답례품은 확보했다. 그들이 내 카드를 신경 쓴다는 소리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웨딩 업계에서 블로그 리뷰의 영향력은 꽤 크다는 걸. 아무래도 검색 상위노출을 시킬 수 있는 블로거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카드를 믿고 협상을 더 끌어봤다.


"사회자님, 저희도 많이 양해해 드린 거랍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답례품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을까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예식장 담당자도 만만치 않았다. 답례품으로 꼭 막고 싶은 눈치였다.


"매니저님, 솔직히 그 답례품들하고 식대하고 가격 차이가 꽤 나잖아요. 시중에서 그 물품들 사면 얼마 하겠어요?"

"사회자님, 저희가 제공하는 답례품들은 이 가격에 준합니다. 마진 하나 없이 제공하는 거예요."


우리 좀 솔직해지자. 전시되어 있는 답례품 내가 다 봤다. 꽃소금이나 홍삼절편 같은 게 정말 3만 원대 중반이라고? 매니저님은 마트에서 그 돈 주고 사시겠어요?


"오늘 결혼한 두 사람, 정말 한 푼 두 푼 열심히 아껴서 사는 친구들이에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꽃소금 같은 물건이 아니랍니다. 지급보증인원 안에서 다 끊었잖아요. 예식장의 운영 미숙을 핑계로 추가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은 식권 그것만 좀 환불해 주세요."


담당자께선 조금 더 상의해 보겠다고 하셨다. 내일 전화를 주겠단다. 몇 시쯤 연락을 주겠냐고 여쭤보았다.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스케쥴러에 기록을 했다. 수화기 너머 치열한 공방전은 그렇게 끝났다. 물론 종전은 아니고 휴전인 상태로 말이다. 회담은 내일 재개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신부님께서 남긴 그 식권에 사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신부님께서 식권 열몇 장을 빼놓았단다. 따로 챙겨야 할 사람들에게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결혼식이 시작되니 정신이 없었다. 식권을 따로 챙겼다는 사실을 잊었단다. 생각보다 하객이 많이 와서 식권을 추가했단다. 한참 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야 빼놓았던 식권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신혼부부 쪽도 과실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급보증인원 퍼센트 안이었다는 것이다. 보통 예식장에서는 사전에 식권 배부 수를 결정한다. 그리고 당일에 유동적으로 더 지급할 수도 있고, 남은 걸 환불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하객이 100명 온다고 가정해 보자. 그 예식장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0퍼센트 범위를 설정했다면? 80명부터 120명까지 커버해 준다는 소리다. 만일 하객이 50명 온다면? 못다 쓴 30장은 어쩔 수 없다. 이건 환불 안 된다. 적어도 80명치는 결제해야 한다. 대신 시간제한을 지킨다면 답례품으로 바꿔갈 수는 있다.


반면 하객이 너무 많이 와서 150명이 오면 어떨까? 120장까지는 식권을 주지만, 30장은 추가제공하지 않는다. 융통성을 부려주는 예식장도 있겠지만,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곳도 봤다. 나도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식권을 못 받았던 적이 있다.


두 부부는 이 비율 내에서 식권을 추가했다. 그러니 식장에서 제시한 규칙을 지킨 것이다. 신부님께서 식권을 따로 챙겼다는 사실을 잊었다고 해도, 규정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상식으로는 남은 식권을 환불해 주는 게 당연했다.


물론 신혼부부는 나에게 이 협상을 부탁한 적이 없었다. 나 혼자 오지랖을 부리는 상황이었다. 가족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결혼식 사회를 말끔히 해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첫째였다. 미숙한 진행을 했던 결혼식장에 대한 아쉬움이 둘째였다. 마지막은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부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새신랑과의 인연은 10년이 넘었다. 그 친구가 돈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익히 안다. 한 푼도 허투루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식권 열몇 장은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아닐 수도 있다.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성공한 협상 결과를 톡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 친구가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산타할아버지의 선물보따리를 주고 싶었다.


약속된 하루가 지나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다. 이제 전화가 올 시간이다. 폰이 울렸다. 매니저님 전화번호가 표시됐다.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빨간 양말 안에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있을까?



8편에 이어집니다.

사진: UnsplashAndrej Liša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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