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6편입니다.
피로연장에서 웃지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하긴, 남의 집 경사를 망치고도 밥이 잘 넘어가면 문제가 있다. 물론 나를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결혼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을 뿐이다.
대학 친구들끼리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어느새 다들 유부남이 되어 있었다. 결혼식 사회자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나는 오늘 사회를 봤다. 맞은편엔 내 결혼식 사회를 봐준 형이 있었다. 옆엔 조만간 사회를 볼 동생이 앉았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결혼식 사회로 이어졌다. 도제식으로 각종 비법이 전수됐다.
어느새 피로연장에 우리만 남았다. 새신랑이 인사하러 왔다. 역시 신랑도 나에게 질책하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5일 전 예행연습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 의기양양하게 '나만 믿고 따라 와.'라고 했었는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뷔페는 제한시간이 있었다. 정리를 하고 짐을 챙겼다. 아내와 딸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새신부가 있었다. 미안함과 축하의 마음을 반씩 담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신부님! 오늘 정말 예뻤어요. 많이 안 우시던데요? 완전 무대 체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아참, 식권이 좀 남았는데, 이거 받으세요. 답례품으로 교환하세요."
"어? 식권 몇 장 남았어요?"
"열 장 조금 넘어요."
"혹시 지불보증인원 넘겼어요?"
"아뇨. 정해진 퍼센트 안에서 다 해결됐어요."
"그럼 카운터 정산할 때 제출해 보세요. 아마 그거 빼고 결제해 줄 거예요. 저 결혼할 때도 그렇게 해 줬어요. 대부분의 결혼식장이 그렇게 해 줄 걸요?"
내 말을 들은 신부님께서는 1층 사무실로 향했다. 나도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몇 시간이 지난 뒤, 문득 식권 환불 건이 궁금해졌다. 새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신랑! 오늘 결혼식 치른다고 고생 많았지? 지금은 어디야? 공항 가고 있어?"
"네. 지금 운전해서 가고 있어요. 원래는 집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바로 출발했어요."
"그렇구나. 혹시 아까 신부님께서 말한 식권 열몇 장은 어떻게 됐어? 환불받았어?"
"아뇨. 환불 안 해 준대요. 이미 결제가 다 되었대요."
환불이 안 된다니, 황당했다. 내 결혼식 할 때는 안 이랬다. 물론 다른 예식장이긴 했지만.
"엥? 보증인원 안에서 끊었잖아. 그래도 안 해 준대? 그럼 답례품으로 바꾸지 그랬어?"
"형, 답례품으로도 안 바꿔준대요. 그냥 열몇 장 날린 거죠 뭐..."
"뭐라고? 그럼 그냥 예식장에서 몇십만 원을 홀랑 먹은 거야? 이건 좀 심한데? 일단 알겠어. 신혼여행 조심히 잘 다녀와!"
식권 한 장에 3~4만 원이라고 치면, 몇십만 원이나 되는 돈을 날린 상황이었다. 황당했다. 심지어 직원들이 진행도 어설프게 했잖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바로 예식장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결혼식 사회를 봤던 사람입니다. 혹시 최고 책임자와 통화 가능할까요?"
"안녕하세요? 어떤 일이신가요? 일단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나는 식장에서 미숙했던 점에 대해 조목조목 말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기 위해 메모장을 보고 읽었다. 누락은 없었다. 전화 걸기 전에 1번부터 10번까지 정리했기 때문이다. 번호 구성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사소한 것은 초반에 배치했고, 결정적인 것은 후반에 넣었다. 직원이 '이런 공연은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 것을 마지막에 말했다. 전화응대를 하는 직원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눈치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좀 미숙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직원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운데 낀 직원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도 아닌데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과받으려고 전화한 게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이제 협상을 시작할 차례였다.
"실장님, 제가 사과받으려고 전화드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식장 측에서도 이런저런 잘못한 게 있었다는 건 인정하시죠? 그러면 제가 다른 건 안 바랄게요. 그 식권들만 좀 환불해 주세요."
"아, 그 식권이요? 그건 결제 정보가 본사에 이미 넘어갔어요. 저희 측에서 임의로 재결제를 해 드리기 힘든 상황이랍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본사 카드가 제시됐다. 그럴 줄 알고 나도 카드 하나를 더 준비해 놓았다.
"아, 그러면 오늘 있었던 일을 블로그에 포스팅해도 될까요? 참고로 제 블로그는 하루 방문자 수가 1천 명 조금 넘어요. 누적 방문자 수는 100만 정도 되고요. 있었던 일 가감 없이 리뷰해도 될까요? 나중에 업무방해 이야기 나올까 봐 허락받고 쓰고 싶네요."
블로그 카드를 제시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화응대하는 태도가 살짝 달라졌다. 일단 회의를 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시겠단다. 전화는 그렇게 종료됐다.
블로그 카드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하루에 천 명 들어왔다. 누적 방문자 수도 100만을 갓 넘은 상황이었다. 결혼식장 리뷰도 꽤 썼었다. 하지만 나는 겁이 많은 성격이다. 나중에 업무방해로 소송이라도 걸리면?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이다. 그래서 포스팅할 때 장점 위주로만 적는다. 이번에 내민 카드도 마찬가지다. 조금 세게 나가긴 했지만, 예식장에서 더 강하게 나온다면? 그땐 그냥 포기할 심산이었다.
몇 분 뒤, 예식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권한이 조금 더 있는 상급자의 전화였다. 그분이 나에게 또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사회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혹시 남은 식권을 답례품으로 바꿔 가시는 건 어떤가요?"
전화 한 통에 답례품까지 왔다. 이 카드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더 나갈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었다.
7편에 이어집니다.
사진: Unsplash의Saile Ily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