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진상손님 될 뻔했네

by 알뜰살뜰 구구샘

<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8편입니다.



"죄송하지만, 환불은 힘들겠습니다."


담당자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쪽에서 확실한 패를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럴 땐 잠자코 듣는 게 상책이다. 계속 듣기만 했다.


"결혼식 당일에 직원들이 진행을 미숙하게 한 점은 정말 사과드립니다. 어제 통화가 끝난 후 두 사람을 불러 충분히 교육시켰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사과에 힘이 있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다. 사과는 신부와 신랑에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재발방지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거기서 결혼식 한 번 더 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사회자님, 저희가 어제 계산을 다시 해 봤거든요. 계산해 보니 식권은 들어온 것만 계산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열몇 장은 결제되지 않았어요."


아뿔싸, 이건 상상도 못 했던 카드다. 그 식권들이 정말로 종이쪼가리였을 줄이야! 팩트체크가 필요했다.


"아, 그런가요? 그럼 한 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일단 신랑 측에 접수된 식권이 총 몇 장이죠?"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모장에 내용을 적으면서 계산기로 확인했다. 사실확인은 5분간 이어졌다. 몇 번이고 다시 계산했다. 그랬다. 결혼식장 말대로 그 식권들은 계산되지 않았다. 심지어 식장에서는 끝에 튀어나온 몇 만 원은 절사를 해줬다. 할인까지 해줬다는 소리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사실 관계를 확실히 알아보지 않은 신혼부부 책임 아니냐고? 결혼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혼식 당일이 얼마나 바쁜지를. 두 사람을 탓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 이 상황을 잘 마무리짓는 게 중요했다.


"꼼꼼히 계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었네요. 이 소식은 신혼부부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두 사람도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담당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만큼, 내 목소리의 힘은 빠졌다. 문득 어제 전화를 어떻게 했는지 떠올려봤다. 나 진상고객은 아니었을까? 다행히 고성을 지르고 욕한 건 아니다. 조곤조곤 요구사항을 말했을 뿐이다. 아찔하다. 만약 어제 진상짓을 했다면? 완전 민망한 결과가 나왔을 거다.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매니저님,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제 태도가 무례했다면 너그러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이제 갓 결혼한 두 사람을 너무 아끼는 나머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사실 저도 감동했습니다. 가족도 아니고 사회자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경우는 못 봤거든요. 사회자님께서 두 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두 사람을 축복하겠습니다."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사실 민망해서 빨리 끊고 싶었다. 근데 자꾸 주절주절 혀가 길어졌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약소하지만 톡으로 선물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진행 미숙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진짜 톡으로 선물이 왔다.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하나였다.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사회자님, 혹시 운영하시는 블로그 한 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 날 때 한 번 놀러 가겠습니다~]


담당자께서 톡으로 이걸 물어봤다. 이걸 왜 물어보는 걸까.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생각났다.


첫째, 내 카드가 진짜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수 있다. 주위에 누적 방문자 수 100만이 넘는 사람이 흔한가? 그것도 하루에 1천 명이 넘게 들어온다는데? 뻥카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을 수 있었을 듯하다. 두 번째 가능성은 추적관리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라도 해당 예식장 포스팅을 한다면? 그러면 추가 대응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관리자 입장에서 내 블로그를 미리 알아두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검색창에 '알뜰살뜰 구구샘'이라고 입력하시면 뜹니다~]


다행히 뻥카는 아니었다. 내 블로그는 검색하면 정말 나온다. 나름 예식장 리뷰도 몇 개 했었다. 그중에는 조회수가 몇 천 건 되는 것도 있다. 이래 봬도 블로그 짬밥으론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참고로 결혼식 진행을 어설프게 했던 두 남자 직원은 아르바이트생이 맞았다. 관리자님께 계속 물어보니 말해주더라. 어쩐지, 아마추어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나긴 했다.


이틀간의 공방전은 이렇게 끝났다. 결국 모두가 윈윈윈이었다. 나는 나대로 미흡한 식장 시스템에 대해 말했다. 예식장은 불필요한 환불처리를 방어했다. 신혼부부는 식권이 결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


다시 한번 어제의 나를 칭찬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진상을 부리지 않았던 나를. 앞으로도 불편한 의견을 제시할 땐 조심해야겠다.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9편에 이어집니다.

사진: UnsplashSantiago Lac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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