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백화점 서비스를 바라면

by 알뜰살뜰 구구샘

<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9편입니다.



예식장 투어라는 말이 있다. 예비부부가 결혼식장을 고르기 위해 돌아다니는 걸 뜻한다.


나도 결혼할 때 이걸 했다.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세 군데를 둘러봤다. 두 곳은 명색이 호텔이었다. 남은 한 곳은 웨딩컨벤션이었고. 우리는 웨딩컨벤션에서 결혼하기로 했다. 기준이 뭐였냐고?


우선 날짜가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나름 비수기에 결혼했다. 세 곳 모두 날짜는 비어 있었다. 다음 고려사항은 주차장이었다. 하객들이 주차에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선택한 곳의 주차장이 가장 넓었다. 마지막으로 고려한 항목은 가격이다. 사실, 가장 저렴한 곳을 골랐다.


우선 식대가 가장 저렴했다. 그렇다고 음식의 질이 형편없진 않았다. 동네 사람들도 웬만하면 다 거기서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홀 대관료도 적당했다. 너무 허름한 느낌도 아니었고, 적당히 고급스러웠고 적당히 넓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다.


하지만 가성비는 말 그대로 가격 대비 성능이다. 가격을 더 지불하면 당연히 서비스는 좋아진다. 1인당 식대가 5천 원 비싸지면 음식의 질도 달라진다. 갓 구운 스테이크가 추가되고, 초밥의 질도 훨씬 신선하다. 몇만 원 더 내면 인력이 더해진다. 하객들은 움직일 필요가 없다. 앉은 곳에서 음식이 제공된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요리를 대접한다. 가만히 앉아서 코스요리 먹기만 하면 된다. 돈은 거짓말 안 한다.


대관료도 마찬가지다. 돈을 쓰면 쓸수록 넓은 공간이 제공된다. 심지어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으로 커진다. 홀에 들어갔을 때 가장 차이가 나는 건 천장고다. 돈을 더 쓰면 천장도 높아진다. 사람을 포개어 쌓는 것도 아니고 천장이 뭐가 중요하냐고? 직접 가서 느껴 보시라. 천장고의 위력을. 거기서 결혼하는 신부와 신랑은 뭔가 더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건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때 공간을 많이 이용했다. 천장을 높이려면 중력을 이겨야 한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결론적으로 천장이 높으면 돈이 많고 권력이 세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그런 돈도, 권력도 없었다. 당연히 가격 대비 성능을 추구해야 했다. 그렇다고 완전 허름한 곳에서 할 수는 없었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우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가성비 좋은 곳을 선택했다. 참고로 우리 고장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결혼한다.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하다.


이번에 결혼한 두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단다. 가성비를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봤단다. 두 사람 모두 우리 고장에서 근무한다. 그러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내가 결혼한 곳뿐이다. 거기보다 가성비가 좋은 곳은 아직까진 없다.


"아, 그러면 그 예식장에서 결혼해?"

"형, 거기 말고 딴 데서 해요."

"엥? 왜 거길 골랐어? 아, 두 사람의 부모님이 다 그쪽에 사셔서? 부모님 가까운 데서 결혼하려는 거구나?"

"뭐, 그런 이유도 있는데요. 저희가 고른 데가 조금 더 저렴하더라고요."


결국 돈이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결혼식은 보통 한 번 한다. 명사 앞에 '평생 한 번 하는'이 붙는 순간 지갑이 쉽게 열린다. 근데 이 예비부부는 달랐다. 신부와 신랑 모두 알뜰함을 추구했다. 고장 사람들이 인정한 '가성비'보다도 더 저렴한 곳을 골랐다.


내가 이래서 이 친구를 좋아한다. 알뜰살뜰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산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나랑 비슷한 타입이다. 그의 결혼식 사회를 내가 맡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었다.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당연히 호텔은 아니었다. 도심 외곽에 웨딩홀이 덩그러니 있었다. 주차할 공간이 많았다. 건물 외관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역사가 20년 넘었다고 한다. 내부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았다. 저렴하지만 실속은 챙기는 느낌이었다.


얼마 뒤, 결혼식이 끝났다. 앞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결혼식 사회를 망쳤다. 그렇게 된 큰 원인은 직원의 미숙함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둘은 너무 아마추어였다.


'어떻게?'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 결혼식장 진행요원 복장이 저럴 수 있지? 어떻게 넥타이를 안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재킷을 안 입을 수가 있지? 어떻게 흰 셔츠 안에 검은 목티를 입을 수 있지? 어떻게 셔츠 단추를 2~3개나 풀어헤치고 진행할 수가 있지? 어떻게 예식 시작 시각을 준수하지 않을 수 있지? 어떻게 신랑 어머니가 공연할 때 뒷담을 할 수가 있지?


다음날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주말에만 와서 일하는 대학생이었단다. 20대 초반의 남학생 둘이 결혼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군대는 갔다 왔을까? 보수는 얼마나 될까? 최저시급만큼 받을까? 한 시간에 만 원 받는다고 쳐 보자. 하루에 4시간쯤 일하겠지. 그럼 일당 4만 원인가?


나를 반성한다. 시급 만 원 받는 사람에게 너무 많이 바랐다. 아니, 그들은 가격 대비 최상의 성능을 냈다. 보수에 비해 훨씬 프로다웠다. pc방 알바로 치면 카운터 보기, 음식 서빙, 매장 청소는 기본이고 컴퓨터 관리 및 수리, 방화벽 세팅, 고객 유치까지 도맡은 상황이었다.


결혼식장 진행요원에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미 가격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거긴 다른 업체보다 홀 대관료가 저렴했다고 한다. 난 여태까지 그 가격차이가 '시설'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다. 인력 제공과 같은 무형의 서비스가 차이 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대관료에는 공간대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을 쓰는 비용도 다 들어가 있었다.


백화점 매니저는 항상 정장을 입고 있다. 구두도 신고 있다. 용모도 단정하다. 그는 백화점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트 아르바이트생은 대체로 정장을 안 입는다. 평상복에 조끼 정도면 충분하다. 나도 마트알바를 해 본 적이 있다. 한 시간에 5천 원 받았다. 그때 정장 안 입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백화점 직원의 퍼포먼스를 요구하지 않았다. 마트 점장도, 손님들도 암묵적으로 다 알았다. 내가 5천 원치라는 걸. 그때 최저시급이 그 정도였다. 거꾸로 말하면, 나도 마트 알바생에게 백화점 서비스를 바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아무튼 결혼식은 잘 끝났다. 신혼부부도, 사회자인 나도, 결혼식장 매니저도 윈윈윈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흔적이 남았다.


웨딩 산업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해 주는 통과의례 같다. 연인과 부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하루 종일 돈 얘기를 하느냐 안 하느냐. 그리고 그 문은 결혼식이 열어준다. 이번에 다시금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나도 돈돈돈 거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가정이라는 기업을 부부라는 CEO가 경영하는 거다. 공동경영자끼리는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 돈 이야기를.


피로연장에서 신랑이 나에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형, 결혼식 이거 두 번은 못 하겠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마지막편(10화)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Unsplash卓倩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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