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위에서 보는 결혼식은

by 알뜰살뜰 구구샘

<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마지막 편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향하여, 신부와 신랑 행진!"


단상 위에서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후에는 내 역할이 없다. 이제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부부를 향한다. 하객도, 혼주도, 직원도 모두 신부와 신랑을 축복한다. 아낌없이 박수를 친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 분도 많다.


나도 하객일 때는 신랑과 신부만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른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회자석은 보통 높은 곳에 있다. 결혼식장 구석구석 다 볼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누군가 마법을 걸어놓은 것 같다. 사람들의 웃음이 마스크를 뚫고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부부를 축복하는 것 같다.


어느새 부부가 끝에 도착했다. 사진사가 입맞춤을 시켰다. 박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타이밍이다. 친구들이 옆에서 꽃도 뿌려 줬다. 기사님이 오케이를 외쳤다. 이제 단체사진을 찍을 때다. 난 신부와 신랑 바로 뒤에 섰다. 사회 본 친구는 보통 거기 선다. 신부님께서 부케를 아주 잘 던지셨다. 양쪽 친구들이 활짝 웃었다.


모든 절차가 끝났다. 친구들이 단상에서 우르르 내려왔다. 가면서 부부에게 덕담을 건넨다. 보통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든지, 잘 살라는 말을 한다. 물론 나도 그런 말을 건넸다.



관혼상제 중에서 관과 제는 보통 가족끼리 치른다. 반면 혼과 상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도 참여한다.


장례식장에선 박수를 칠 수도, 크게 웃을 수도 없다. 얼마 전 할아버지와 어머니 상을 연달아 치렀다. 모친상 때 친구들이 많이 와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무슨 얘기하겠는가. 그냥 평상시 얘기를 한다. 그러면 축하할 일도, 웃긴 일도 듣게 된다. 평소였으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을 이야기도 거기선 조심히 들어야 한다. 장례식장과 박장대소는 어울리지 않다. 하지만 결혼식장은 다르다. 거기서는 박수도, 웃음도 다 허용된다. 그래서 난 결혼식장에 가는 게 좋다.


이제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아이는 벌써 4살이 됐다. 슬슬 결혼식에 갈 일이 적어졌다. 주변 친구들이 웬만하면 다 결혼했기 때문이다. 한창땐 더블캐스팅이 될 때도 있었다. 한 곳에서 신랑하고 인사만 급하게 한 뒤, 다른 예식장에 참석할 때도 있었다.


결혼식은 갈 때마다 새롭다.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에 갔을 때, 내가 결혼하고 나서 참석할 때, 아이를 낳고 갔을 때, 그리고 사회자로서 함께했을 때 각각 느낌이 달랐다.


20대 초반엔 결혼식에 대해 잘 몰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참석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었다. 그땐 결혼하는 사람보다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나도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라는 게 요술방망이 한 번 휘두르면 뚝딱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몇 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그걸 안 뒤로는 조금 달라졌다. 결혼식에서 두 부부가 보였다. 행사 준비한다고 고생했으니 얼른 신혼여행 가서 푹 쉬라는 말을 하게 됐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양가 부모님이 보였다. 몇십 년 동안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는 마음을 생각하게 됐다. 나중에 딸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으면 어떨까? 아마 내 결혼식보다 더 긴장할 것 같다.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지나 않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사회자로서 참여할 때는 느낌이 또 달랐다. 훨씬 더 시야가 넓어진다. 신혼부부, 양가 부모님, 하객들, 그리고 결혼식장 직원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지휘자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그날 행사가 잘 끝날 수 있게 넓게 봐야 했다. 그래서 사회자 단상은 높은 곳에 있나 보다.


여태까지 결혼식 단상에 3번 섰다. 신랑으로서 한 번, 사회자로서 두 번이다. 내 인생에 결혼식 사회를 볼 일이 또 있을까? 한 번 더 하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웬만한 친구들은 다 장가를 갔다. 이 마음은 곱게 접어 넣어둬야겠다.



"행복한 미래를 향하여, 신부와 신랑 행진이라고 되어 있는데, 앞에 행복한 미래라는 문구는 직접 쓴 거야?"

"맞아요 형, 그거 멘트 저희가 쓴 거예요."

"아,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믿어?"

"그렇죠. 그러려고 결혼하는 거 아니에요? 형도 그래서 결혼했잖아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난 미래의 행복을 좇지 않아. 지금 현재 이미 행복하거든."

"제가 사회자 잘 고른 것 같네요. 순간 대처 능력이 좋아요 형."



지금까지 <결혼식 사회를 망치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UnsplashJeremy Wong Wed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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