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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산다, 집에 산다.

앨리스허, <부동산 투자로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

by 알뜰살뜰 구구샘

신혼집을 고를 때 세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먼저 초등학교가 가까워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공원이 가까이에 있어야 했죠. 마지막으로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골랐습니다.


초등학교가 가까워야 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입니다. 직업 때문인지, 안전에 좀 민감한 편입니다. 저희 반 학생들에게 교통안전교육을 꾸준히 시킵니다. 그때마다 자료화면으로 뉴스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한 번도 똑같은 영상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매년 매 학기 다른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딱히 제가 의도한 건 아닙니다. 스쿨존 사고는 끊임없이 되풀이되었고, 최신 사고뉴스는 계속 추가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까요? 그래서 무조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여야 했습니다. 결혼식도 아직 안 했는데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걱정하다니, 걱정이 좀 과하긴 하네요.


두 번째는 공원입니다. 어릴 때 살던 곳 근처에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동생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죠.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팔던 아주머니도 생생합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공원은 좋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혼 때도 공원 근처에 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도서관이 가까워야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위인전이나 학습도서를 좋아한 건 아닙니다. 판타지소설 좋아했습니다. 책방에서 2박 3일 빌리려면 700원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용돈이 화수분처럼 나오진 않았죠. 돈이 없을 땐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거긴 고전 판타지소설이 가득했었죠. 나름 도서관이라고 작품성 있는 것들만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드래곤라자나 반지의제왕 같은 거요. 게다가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없던 용돈이 생겼습니다. 부모님께서 점심값을 주셨거든요. 동생과 함께 지하 구내식당에서 먹는 라면과 김밥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미래의 제 자식도 그걸 느끼길 바랐습니다.


아무튼, 위 조건을 만족하면 어느 집이든 괜찮았습니다. 연식이든, 구조든, 브랜드든 상관이 없었어요. 예비 신부였던 지금의 아내도 제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지금 집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수도권은 2014년에 바닥을 다지고 5년 넘게 부동산 경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2019년까진 곡소리가 가득했어요. 진짜 '집 사면 바보'라는 소리 듣던 땝니다. 그러다가 2019년 하반기쯤 되면서 바닥을 다지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2021년에는 정말 무섭게 올라갔어요. 그 흐름은 제가 사는 동네에도 이어졌습니다.


집값은 균등하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대장 아파트는 거칠고 가파르게 올라갔습니다. 반면 제가 사는 곳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죠. 저희가 신혼집을 마련할 때 5천만 원 차이가 났던 단지는 2년 뒤 2억 차이가 났습니다.


사실, 1주택자 입장에선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큰 영향이 없습니다. 물론 영끌해서 레버리지가 크면 얘기가 다릅니다. 담보물건의 가치가 내려가면 은행에서 상환압력이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큰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집값 오르면 재산세 오른다고 싫어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근데 궁금하긴 했습니다. 도대체 대장단지와 저희 단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이렇게 가격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 말은 '브역대신평초'라는 신조어가 설명해 줍니다.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품아라는 뜻인 이 말은 대중의 선호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제가 사는 곳과 비교해 봅니다. 초품아는 하나 챙겼지만, 공원과 도서관은 대중의 선호도와 관련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고른 곳은 그 대장에 비해 브랜드도 밀리고, 단지수도 적고, 연식도 밀립니다. 상승장에서 가격차이가 더 벌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이걸 몰랐습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샀습니다. 그럼 그냥 만족하며 살면 되지, 왜 투덜대냐고요? 변명을 하자면, 언젠간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집에서 평생 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흔히들 말하는 '학군지'로 이사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통 학군지는 중학교 하나 덜렁 놓여있지 않습니다. 유해시설은 적으면서 편의시설은 많은 경우가 대다수죠. 그런 곳의 집은 보통 비쌉니다. 하락기든 상승기든 상관없이 비싸요. 그런데 신혼부부가 그곳에 한 번에 입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교적 외곽에 살면서 자산을 쌓아 차근차근 들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죠. 그건 무슨 뜻일까요? 적어도 몇 번은 집을 사고팔아야 한다는 소립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사를 잘 안 다녔습니다. 저도 그 영향을 받았죠. 한 번 집을 사면 몇십 년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몇 번 이사를 다녀야 할 판입니다.



제가 만약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거든요. A단지랑 B단지의 조건을 읊어 줍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묻죠. 그리고는 현재 시세를 알려줍니다. 가격 상승폭의 차이는 결국 대중의 선호도가 결정합니다.


게다가 디테일한 부분도 자세히 알려줍니다. 임장하는 방법, 부동산 사장님과 대화법, 계약서를 쓰고 잔금을 치르는 방법까지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떠먹여 주는 수준입니다.


저는 첫 집을 사고 나서 부동산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일단 저질러 놓고 시작했죠. 그러니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웠습니다. 만약 이 책을 결혼 전에 미리 알았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경상도 말에는 성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을 '산다'와 집에 '산다'를 다르게 발음합니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산다'로 짧게 끊습니다. 반면 집에 '산다'는 길게 말합니다. '산:다' 혹은 '사안다'에 가깝습니다. 이 발음 속에 우리 삶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매수계약서를 쓸 때는 순간이지만, 거주하는 것은 길죠. 처음으로 집을 구매해서 실거주하실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아참, 저는 지금 집에 매우 만족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 살 거예요. 하지만 방식은 조금 바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대장단지 매수 후 전세입자 앉힌 뒤 그 보증금으로 이곳에 전세 살기 정도랄까요? 살아 보니 구매한 집에 꼭 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앨리스허, <부동산 투자로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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