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엄마아빠" 하고 운다
게리 켈러&제이 파파산, <원씽>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많은 아이들이 울 때 엄마를 찾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죠. 엄마가 안 보여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 더 서럽게 울었죠. 근데 한 번도 아빠를 찾은 적은 없습니다. 아빠가 계서도 엄마를 찾았고, 안 계서도 엄마를 찾았습니다. 일단 울 땐 엄마였어요.
엄마라는 글자를 뜯어봅니다. 미음이 두 번이나 들어가네요. 아이들이 가장 소리 내기 쉽다는 글자입니다. 영어의 마미, 중국어의 마마가 생각납니다. 발음하기 쉬워서 엄마만 찾았을까요?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딸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두 돌 전까진 그냥 울었습니다. 으앙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말문이 트이니 낱말로 울기 시작합니다. 귀를 쫑긋하고 들어봅니다. 과연 뭐라고 하면서 울까요?
"엄마빠... 엉엉엉... 엄마아빠... 엉엉엉"
세상에! 제 딸이 '엄마빠'하고 우는 겁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엄마랑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죠. 물론 엄마가 먼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내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언감생심입니다. 그래도 2등이 어딥니까. 애가 울 때 저를 끼워줬어요! 야호!
무엇인가에 자부심이 생기면 -부심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저는 빠부심이 생겼습니다. 육아하는 아빠들 사이에 끼면 괜히 자랑하고 싶어 집니다. 물론 -부심은 어느 자리에서든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됩니다. 얘기했다가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꿈에서만 조용히 자랑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바빴습니다. 학교 일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가정에 쏟는 에너지가 줄어듭니다. 맘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자식을 굶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육아와 업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픽업한 뒤에 재택근무하는 건 꿈도 못 꿉니다. 애가 누워있을 땐 가능했지만, 이제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두 돌 지난 아이는 방문을 두드리더라고요. "똑똑똑. 아빠? 안에 계세요? 저 딸이에요. 문 열어주세요. 아빠? 아빠?" 방에서 업무 하다가 이런 말 들으면 멘탈 나갑니다. 임시저장 누른 뒤 거실로 나가야 합니다. 이 소리 듣고 버틸 수 있는 아빠가 몇이나 있을까요.
그렇다고 업무가 자연소멸하는 건 아닙니다. 폴더에 남아 빙긋 웃으며 저를 기다립니다. 그 녀석을 처리해야 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해야겠습니다.
딸 옆에 누웠습니다. 곁눈질로 눈치를 봅니다. 잘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딸은 엄빠가 잠든 것을 확인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잡니다. 본인 재우고 뭔가 하는 걸 눈치채는 순간 극대노입니다. 결국 버티지 못한 저는 먼저 잠에 듭니다.
일찍 잔 덕분에 새나라의 어린이가 될 조건은 갖추었습니다. 새벽에 눈이 떠집니다. 폴더 안에서 빙긋 웃고 있는 녀석이 생각납니다. 그 녀석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1시간만 더 자고 싶습니다. 알람을 1시간 뒤로 미룹니다. 다들 아시죠? 이 버튼을 눌렀다는 건 파멸을 뜻합니다. 예상하신 것처럼, 생각보다 매우 개운하게 잤습니다. 이젠 지각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폴더 안의 녀석들은 더더욱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번식력이 너무 좋습니다. 이대론 안 됩니다. 야근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괜찮답니다. 일 마무리하고 오랍니다. 아내는 천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며칠 동안 야근했습니다. 덕분에 폴더를 싹 청소했습니다.
"엄마, 엉엉엉 엄마, 엉엉엉"
... 딸의 울음소리가 달라졌습니다. 엄마빠라고 안 해줍니다. 저를 보는 눈빛이 싸늘합니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힙니다. 빠부심은 부실시공한 두꺼비집처럼 바사삭되었습니다.
이대로 둘 순 없습니다. AS를 해야 합니다. 골든타임을 놓칠 순 없습니다. 다시 육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시간이 정말 모자란데요? 개인 관심사였던 글쓰기는 개점휴업한 지 꽤 됐습니다. 그건 나중에 짬나면 다시 한다고 쳐도, 일을 안 할 순 없잖아요?
이 책, <원씽> 중 워라밸을 다룬 파트가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걸 각색해 보겠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건 헛된 믿음이다. 기적은 항상 극단에서 일어난다. 워라밸 찾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다."
간지러운 델 긁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대부분 이렇게 살지 않나요? 눈을 질끈 감고 정신승리를 시도해 봅니다. 마음의 위안을 선사해 준 작가님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살며시 한 장을 더 넘겨 봅니다. 바깥일에 집중해도 되는 거죠?
"어린 자녀에겐 부모가 필요하다. 이 시기는 결정적이다. 되돌릴 수 없다. 늙어서 성공한 뒤 자식에게 잘해봤자 이미 버스 떠났다."
'아오, 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워라밸 하라는 거예요, 아니면 성공을 위해 하나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는데요? 네?'라고 생각하며 또 한 장을 넘겨 봅니다.
"버리고, 선택하고, 집중해. 솔직히 하고 싶은 거 많지?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개인적으로도 성취를 맛보고 싶은 거 다 이해해. 근데 그거 다 챙겨가며 어떻게 성공하겠어? 시간은 한정적인데 말이야. 가장 중요한 거 하나만 남기고 다 놓아줘. 물론 가정은 유리구슬이다. 놓는 순간 와장창 깨질걸? 템포 조절까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놓아버리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고백하겠습니다. 솔직히 주말에 폰 보며 쉰 적 있습니다. 친한 친구가 불러서 맥주 한 잔도 했어요. 애기 낮잠 잘 때 글도 썼습니다. 저 하고 싶은 거 많았어요.
그런데 모든 토끼를 다 잡을 순 없습니다. 그러면 다 놓친다는 거 저도 느낍니다. 줄이고 또 줄여야겠습니다. 하나만 남을 때까지요. 물론 가정은 당연히 챙겨야 합니다. 그건 기본값입니다.
바쁜 3월이 지나갔습니다. 일도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밀도 있게 육아를 시작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도 씁니다. 그 외의 것들은 포기한 지 오래됐습니다. 승진준비? 택도 없습니다. 깜냥도 안 됩니다. 주말 임장? 못 간지 한참 됐습니다. 그런 거 다 챙겼다가는 가정 못 챙깁니다. 배가 가라앉지 않으려면 최대한 버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겨두고 전부 다 버려야죠.
그래도 '책 읽고 글쓰기' 하나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잠 좀 줄이면 되더라고요. 책은 출퇴근 버스에서 읽으면 되고, 글은 새벽에 쓰면 됩니다. 그럼 가정도 지킬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아이가 다시 울었습니다. 미운 네 살이라더니, 본인의 과업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귀를 쫑긋 세워 다시 들어봅니다. 뭐라고 할까요?
"엄마빠... 엉엉엉... 엄마아빠... 엉엉엉"
부서졌던 빠부심이 다시 차오릅니다. 딸아, 아빠가 잘할게!
사진: Unsplash의Caleb Wo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