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하디, <퓨처셀프>
자기 계발 책은 스타일이 나뉩니다.
1. 뷔페형: 여러 사례 제시. 온갖 좋은 말 가득
2. 국밥형: 저자의 삶 위주. 고난과 역경 뚫은 얘기
저는 국밥이 좋습니다. 뷔페는 집중이 잘 안 되거든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국밥에 콜럼버스가 애타게 찾았던 후추 한 스냅 넣어주면 그것이 바로 극락입니다. 뚝배기 하나에 인생이 담겨 있잖아요. 기승전결부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까지요. 아이고 벌써부터 침 고이네요.
하지만 뷔페를 좋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바로 제 장모님입니다. 장모님께선 아주 호리호리하세요. 음식을 많이 드시지도 않고요. 그래서인지 뷔페를 좋아하십니다. 딱 한 점씩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아참, 장모님께서는 항상 뷔페에서 한두 접시로 끝내셨습니다. 세네 접시씩 받는 저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었어요. 장모님께서는 본전 생각 안 하시는 걸까요?
이런 스타일은 독서 습관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독서광입니다. 하루도 책을 안 읽는 날이 없어요. 그런 장모님께서 제게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바로 벤저민 하디의 <퓨처셀프>였죠. 심지어 공짜로 책을 사주셨어요. 제 생일도 아닌데 선물을 받다니!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냉큼 책의 표지를 넘겼습니다. 하루이틀 만에 다 읽었어요.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헐, 이게 뭐야. 장모님 이런 거 좋아하셨어?'
장모님께서는 저와 독서 스타일이 너무 달랐습니다. 충격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저자가 다른 사람의 지식을 훔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퓨처셀프> 안에는 여러 사례가 등장했거든요. 제가 읽어본 책도 많았어요. <그릿>,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것들이죠. 저도 그 책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를 수가 없었죠.
그런데 제가 거슬렸던 건 이겁니다. 이 책의 작가가 죄다 '직접 인용'을 해놓은 거예요.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책의 서술 방법]
-<그릿>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릿 책 드래그해서 복붙)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이렇게 나온다 (+이것도 복붙)
-스티브 잡스도 이렇게 말했다(... 복붙;;)
아니 이게 뭐예요! 이거 제가 대학 때 많이 쓰던 수법이잖아요! 이 방법은 리포트 쓰기 귀찮을 때 정말 많이 써먹었습니다. 그냥 긁어서 낸 뒤에 출처만 제대로 남기는 거죠. 이 책도 마찬가지였어요. 논란을 피하고 싶었던 건지 책 뒤쪽에 출처가 가득하더군요. 암, 그 마음 잘 알죠. 저도 대학 때 다 해봤으니까요.
다시 장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도대체 이런 책을 왜 추천한 걸까요? 이건 저자의 고난과 역경이 전혀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냥 명언 모음집이나 다름없잖아요. 이런 걸 왜 인생 책으로 여기시는 걸까요?
곰곰이 생각하니 답이 나옵니다. 장모님과 저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책을 진득이 읽습니다. 출퇴근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주로 읽죠. 한 번 읽으면 30분은 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장모님의 상황은 다릅니다. 장모님께선 하우스 농사를 지으세요.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십니다. 그러다 5분씩 짬이 날 때 책을 읽으세요. 그러니 저와는 시간 활용 자체가 다른 거죠.
짧은 시간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럼 간접인용보다 직접인용이 좋을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 보신 적 있나요? 두께부터 어마어마합니다. 하드커버 에디션으로는 못도 박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 정도로 책이 두껍습니다. 그걸 5분씩 투자해서 읽는다? 한 달 넘게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걸 대신 읽고 핵심만 전달해 준다면? 완전 좋겠죠. 그걸 벤저민 하디께서 해준 겁니다. 기미상궁 역할을 맡아준 거죠. 먹어보고 맛있는 거만 골라서 제공했습니다. 5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장모님 입장에서는 완전 땡큐인 것이죠.
역시 세상은 넓은 시야로 봐야 합니다. 저처럼 좁은 시야로 보면 답이 없어요. 세상에 국밥 한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만 있다면? 쿠우쿠우가 어떻게 살아남았겠어요. 얼마 전에 그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웨이팅까지 해야 되더라고요. 대한민국 인구는 5천만이 넘는다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는 거죠.
여러분의 독서 스타일은 어떤가요? '국밥 한 사발'을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뷔페 한 접시'를 선호하시나요? 궁금하네요.
사진: Unsplash의Saile Ily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