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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ul 28. 2019

수영장에 ‘풍덩’ 몸을 맡길때

수영으로 깨달은 몰입(Flow)의 즐거움

"수영을 좋아하는데, 수영장에 갈 수가 없어." 친구가 이런 고민을 토로한적 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모순된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되묻자, 그는 본인의 상황을 설명했다. 업무 관련해 밤낮없이 전화가 걸려 오는데, 수영을 하는 동안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으니 불안해서 수영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그의 상황이 이해되어 안타까웠던 것이 생각난다.


최근 운동을 위해 수영을 시작하고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어놓고 입수하는 순간 '초연결사회'로부터 완벽히 단절된다. 시간에 집착하는 태도가 사라지고, 수영 코치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시계를 확인하거나 핸드폰을 켜서 날씨를 걱정하거나 깜빡하고 보내지 않은 메일을 떠올리는 등 과거와 미래 사이를 배회할 잠깐의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다. 꼬르륵 물 속에 잠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운동장이나 헬스장에서는 온전히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다이어트는 하고 싶지만 단절되는 시간을 불안해했던 것일까. 런닝머신에 연결된 텔레비젼을 보며 달리거나, 근력운동을 하는 동안 카카오톡 메신저를 확인하곤 했다. 긴급한 용무로 나를 찾을 사람이 얼마나 되기는 할까. 그저 무언가를 동시에 해야만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물속에 ‘풍덩’허고 들어가는 순간, 팔동작, 발차기, 호흡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수영장 레인 한바퀴를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목적을 위해 달린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여지없이 물에 가라앉기에, 조금의 잡생각도 허용되지 않는다. 물을 휘감은채 흐르고 또 흐르다보면 근심도 걱정도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몰류(沒流)의 경험은 내겐 신세계와도 같다.  


과거와 미래의 생각과 걱정에서 해방되는 순간

몰두하고 전념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여러개 있다. 몰입(沒立), 명경지수(明鏡止水), 몰아(沒我), 무아지경(無我止境)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상태의 결정체는 황홀경(恍惚境)이다. 황홀하고 황홀한 경지. 수영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경지에 이르는 기분이 든다.


칙센트미하이 클레어몬트 그레쥬에이트 유니버시티(CGU)교수는 오랫동안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구했다. 그가 1970년대에 제시한 'Flow(몰입)'이라는 개념도 일련의 연구 결과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어수선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최상의 성과와 생산성을 낳는 상태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Flow'를 학술적 용어로 선택한 이유는 고도로 집중한 상태를 '흐르는 물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것 같은 체험'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양의 정서에서는 '몰입'이라 단어로 본역해 지극히 고요하고 정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서양의 정서로 보았을때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흐르는 물'처럼 동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내가 수영을 하며 느낀 정서적 경험이 서구에서는 이미 Flow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책 '런닝플로(Running Flow :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순간이 행복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고 있다.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미래의 걱정에서 해방되는 순간 우리는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최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가 몸과 마음을 바쳐 몰입한다는 것은 건강한 정신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도소리를 듣는 일도 몰입의 순간이다

수영장에서 흐르는 물에 몸을 내맡기는 체험을 하면서부터 변화한 점이 있다. '몰입'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일상의 다른 순간들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관심분야를 공부하거나 글을 쓰다가 몇시간이 훌쩍 지나간 순간, 드물게나마 훌쩍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경험 등 크고 작은 몰입의 경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 수록 더 행복하게 큰 성취를 느낀다는 말처럼, 그런 순간들에 생산성이 올라가고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일상 속에 숨겨진 의외의 몰입의 순간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정신 없이 수다를 떠는 주말,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던 어떤 겨울날, 파도소리에 취했던 강릉의 파란 바다, 신비로운 소리와 향기에 멍해졌던 인도 여행 등이다. '지금 이곳'에 온전히 머물렀을때 걱정과 근심을 날려버리고, 다시 창의적인 일들로 돌아올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수영장에서 숨을 헉헉 거리면서도 열바퀴의 레이스를 완주하듯, 인생에서도 나의 목적에 집중하면서 가능한 한 몰입의 순간을 늘려나가고 싶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내가 가진 미약한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고, 작은 목표를 달성하게 할 것임을 믿는다. 작은 성취의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내맡기는 수영을 통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바로 가 지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들이 다시 시작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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