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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Aug 04. 2019

평양냉면의 맛을 안다는 것  

마포 을밀대 평양냉면

# 변화하는 마포, 변하지 않는 을밀대(乙密臺)

이 맛을 음미할 수 있으면 '진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을밀대 냉면
맛있다는 표현을 하기엔 참 어색했다
평양냉면은 내게 그런 맛이었다.


마포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평양냉면집 “을밀대(乙密臺)”의 맛을 얼마나 음미할 수 있는가이다. 1970년에 개업해서 2대째 운영 중인 곳으로 손님들이 긴줄을 서서 들어갈만큼 유명한 맛집이다.


처음 평양냉면을 먹어본 때가 십여년 전 신입사원 시절이다. 진정한 맛집을 소개해주겠다는 부장님을 따라가 처음 맛본 평양 냉면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어쩜 이렇게 “그저 그런 맛”을 내는 음식이 다 있을까 싶었다. 면 한젓가락을 베어 물었을때 “어? 아무맛도 안나는데요”하고 솔직하게 말할것인지 “오! 담백하게 매력적이네요”라고 거짓말을 할 것인지 번뇌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두어번의 해가 지날때까지도 무더운 여름이면 일주일에 한번씩 이곳을 찾는다는 부장님의 밍밍한 취향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맛을 알 수 있으면 '진짜 어른'이 되는거라고 생각했다. 맛있다는 표현을 하기엔 참 어색했던 음식, 평양냉면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부장님은 냉면을 먹을땐 토크자판기처럼 항상 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이 집이 1970년에 개업을 해서 2대째 운영 중인 집이야. 사원 시절엔 회사 힘들 때면 찾아와서 "저 국수집이나 차리게 여기서 설거지하며 배울게요."하곤 했어. 주인아저씨께서 냉면 육수 맛 잡는데 15년 걸렸다고 하셨었는데, 그 비법을 배울 수 있을뻔한 인생의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친거야! 허허”


 작은 종지에 담긴 무절임과 겨자,
냄비에서 막 건져내 파채 위에 올린 수육 한 접시
투박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고집과 자부심


# 먹고 또 먹다 보면 매력을 알게되는 맛

평양냉면 육수 맛처럼 담백하고도 특별했던 여러 해의 여름을 마포에서 보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평양냉면을 경험하면 할수록, 평양냉면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치명적인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단정하고 평범한데 잘보면 지적인 남자에게 점점 빠져드는 것과 비슷했다. 이 음식을 볼매(볼수록 매력적인),, 아니 먹매(먹을수록 매력적인)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더운 날이면 ‘을밀대’ 에 입장하기 위한 줄을 기꺼이 선다. 폭염경보가 내린 여름, 식욕도 없고 몸도 지친 날엔 아니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조차 없을땐 대안도 없다. 작은 종지에 담긴 무절임과 겨자, 냄비에서 막 건져내 파채 위에 올린 수육 한 접시의 투박한 모습이 정겹다. 냉면의 담백한 고깃국물이 보양식이란 생각마저 든다.


어느덧, 내 입에서도 이런 말들이 흘러나온다. “처음 먹을 땐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을거야.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집에 가서 잠자리에 누우면 삼삼하게 생각나지. 그러다 한번 더 찾아오게 되더라. 열번쯤 찾아 올 때면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을 알게 돼.”  

   


# 변화하는 세상 속 변함 없는 식당

지난해 5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가져온 음식으로 ‘평양냉면’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평양냉면의 인지도가 높아지는데 한 몫 한 일이었다. 아저씨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평양냉면은 그 매력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한층 젊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십대들이 평양냉면의 맛을 배우는 속도는 한참 빠르다. 진화된 학습능력과 섬세해진 입맛 덕분일테다.


을밀대 평양 냉면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어가는 사이 마포는 비약적으로 변화했다. 포장마차 거리가 허물어진 사리에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유흥가가 밀집돼 있던 기찻길과 공원은 경의선숲길, 공트럴파크로 새롭게 태어났다.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공간이 사라진다는데엔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냉면집만큼은 오래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바로소 십년만에, 한결같았던 냉면 육수 맛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던 아저씨 선배들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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