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빛 Jul 14. 2019

30년만의 수영

체력 인내심 승부를 위한 수영


지난주부터 수영 강습을 다시 등록했다. 무려 30여년 만이다. 수영장은 회사들이 밀집한 지역에 위치해있어 수강생의 대부분이 퇴근 후의 직장인들이다.  동네 수영장에는 장기 수강생 군단의 ‘텃세’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청정지역인듯 했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준비 운동을 마친 후, 긴장된 마음으로 수영장 레인 앞에 섰다. 내 몸안에 어떤 수영기술이 남아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바다나 워터파크에 놀러갈 때면 든든한 구명조끼와 늘 함께 했으니, 긴 시간동안 고독한 레이스를 시도해볼 기회란 없었다.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순 있을지, 팔과 다리가 수영법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마터면 물하마가 될뻔한 기억

어린시절에 수영의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은 눈물겨운 수동태였다. 킥판 없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기억, 몇 주 동안 물 밖에 쪼그려 앉아 발모양을 연습하던 기억, 호흡 실패로 물을 너무 많이 마셔 물하마가 될 것 같았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체구가 작았던 어린 시절, 나는 물에 잘 뜨지도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도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물장구를 쳐봐도, 내 발끝은 뒤에서 따라오는 아주머니의 손끝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수영장 레인을 부여잡고 토할것 같은 호흡을 가담듬고 있노라면 아주머니들은 신경질적으로 나를 추월해서 지나가곤 했다. 이런 행동들은 수영 꿈나무의 사기를 크게 꺽는 일이었다.  



그땐 어렵고 지금은 덜 어렵다

이제는 나도 비로소 아주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추월해 지나가던 그 시절의 아주머니들처럼 나도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육체적으로는 쇠태했을 것이 분명한 몸뚱이에 진지한 마음을 담아 기꺼이 ‘입문자’ 레인에 입수했다.


쉬지 않고 레인의 어디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지 전혀 가늠할수 없었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해온 발차기의 감각들을 물 속에서 다시 누릴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그토록 어려웠던 수영이 어른이 된 지금은 덜 어려울 수 있을까?


퀵판을 끌어안은채 벽을 발로 ‘뻥’차버리며 레인 위에 몸을 던졌을때 바로 깨달았다. ‘너,, 아직내 안에 남아있었구나’ 언젠가 있었던것인지조차 확신할수 없는 수영의 감각이 어렵사리 다시 소환됐다. 빠르고 시원하게 물살을 가로질렀다. 사실은 ‘어푸어푸’하며 퀵판을 잡고 겨우 한바퀴를 완주했다.


초등학생 수준의 수영실력을 인정받는데는 오랜 시간이 팔요하지 않았다. 두바퀴를 돌고 스타트레인에 서있을때, 코치님의 엄지손가락질 한번으로 두번째 레인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발차기 강습부터 다시 배우는 일을 면제받은 셈이다.


중급자들과 함께 자유형 한바퀴를 돌고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몸이 무의식 속에 보관해놓은 감각을 일깨우면서 정신은 오롯이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집중했다. ‘할수 있구나.’라는 기쁨과 ‘기억하고 있었구나!’하는 놀라움이 교차했다. 고요한 물 위를 가로지르며 한바탕 달리고 나니 숨이 기분좋게 차올랐다.



숨이 차서 터질 것 같은 순간까지
쉬지말고 계속 가세요. 꾹 참아내서 폐활량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실력도 한단계 늘어납니다!

                                                 - 무서운 수영코치님


조금만 더 힘을내요 존버!

수강생 전원이 쉬는 시간 없이 ‘뺑뺑이’를 돈다. 몸을 푸는 발차기 연습 두바퀴, 자유형 네바퀴, 배형 두바퀴, 평형두바퀴로 총 열바퀴다. 수영을 하는 동안 내가 몇바퀴째 돌고 있는지는 차오르는 숨의 크기로 알 수 있다. 앞서 달리는 노련한 회원들도 숨이 가빠진다.


어깨가 넓은 코치님은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숨이 터질때까지 쉬지 말고 가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참고 한바퀴를 돌고나면 기초 체력도 한단계 늘어난다는 말도 덧붙인다. 헬스장에서도 많이 듣던 이야기와 크기 다르지 않다.


레인 한바퀴를 돌때마다 헉헉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저 죽을것처럼 힘들어요!’라고 외치는 아련한 눈빛은 물안경에 철저히 보호된다. ‘조금 만 더 힘을 내보자고요. 존버!!”라는 신호는 숨을 헉헉 쉬는 것으로 대신한다. 서로의 토할것 같은 숨소리가 큰 위안이 된다.


한바퀴 돌고 서있는 출발선에서 “죽겠다”고 말하면서도, 뒷따라오는 회원의 물살에 못이겨 다시 한바퀴를 돌고오면 실력의 돌이 하나 쌓인 기분이다. 거대한 실력의 돌탑이 쌓이는 날엔 내 몸에 어떤 감각이 들어와 있을까?


제현주 작가는 ‘몸을 진지하게 단련해보면 존재하는 줄 몰랐던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게하는 또 다른 렌즈를 획득하게 된다.’고 했다. 고작 수영2주차에 접어들었지만, 나 역시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가 생겨난 듯한 기분이다.


당분간은 수영장에서 하루하루 상승하는 기쁨을 흠뻑 누릴 예정이다. 체력과 폐활량을 키우며 몸을 단련하는 즐거움과 고통을 계속 기록해야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판 노예의 삶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