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판사 대표 : 이호랑

앤 나폴리 출판사: 작고 귀여운 당신의 삶을 출간합니다.

by 빨양c


언니를 그렇게 홀로 병실에 두고 뒤돌아서 있는 힘껏 나의 애마를 즈려밟고 서울 정동길을 지나 흥화문 옆 조용한 공간 한편, 귀엽고 상큼한 초록 빛깔 문 앞에 섰다.


앤 나폴리 출판사.

매일 출근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새벽부터 너무 여러 번 얻어맞아 정신이 쏙 빠져서일까?

오랜만에 본 회사 간판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은 평범하진 않았으니까.'

마음이 계속해서 위로가 필요하다고 소리친다.

누구라도 위로해줄까 싶어 조용히 앤 나폴리 출판사 문을 밀어 연다.


끼익- 철컥. 텅.


. 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역시 사무실은 텅 비어있고, 내 발걸음은 조심스레 들어선다.

오랫동안 책이 팔리지 않아 내 키에 두배나 되는 책들이 주인을 찾는 서점에서나 날법한 짙은 갈색의 종이향이 제일 먼저 내 코끝을 건드리고, 그 다음으로 이슬비가 브슬브슬 내릴 때의 은은한 비 비린내가 섞인 꽃잎 향기가 이어진다.

그 다음은 어디선가 갓 볶은 고소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지 어서 한잔 마셔달라는 블랙의 커피 향이 아우성친다. 난 이 회사의 이런 첫 향기가 참 좋다.


[앤 나폴리 대표 : 이호랑]


세상을 호령해야만 할 것 같은 내 이름 세 글자가 박힌 명판이 책상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 앉는다.

응. 그래. 내가 이 회사의 대표이자, 유일한 작가다.

그리고 여기가 내 자리고, 언젠가부터 내가 유일하게 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마감에 쫓길 때는 누구보다 강하게 내 목을 졸라 나를 질식시킬 것만 같은 숨 막히는 자리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 이 첫 향기와 함께라면 세상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이 자리는 날 그렇게 위로해준다.

'뭐. 아무도 알아주진 않겠지만.'


새벽부터 정신 나간 언니의 자살 소식도 놀라운데, 어마 무시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무사하다 말하며 돈 낼 사람 필요하니 입원 수속하라는 무감정의 목소리의 병원 직원의 전화도 놀라웠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본 언니의 아무 일도 아니라는 쾌활함에 난 할 말을 잃었고,

자살 시도한 언니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고민의 늪에 풍덩 빠져버렸다.

그렇게 내던져진 내 자신이 갑자기 한없이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그래. 언니보다 내가 더 불쌍한 거 같다.'


손가락을 고요히 컴퓨터 자판 위로 올려 더 고요한 사무실 적막을 깨는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울려본다.




'쯧.. 이런 걸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겠어?'


물어볼 사람이 없어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이딴 질문은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혹은 차마 답해줄 지식인도 없다는 듯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한다.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 당연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듯한 애매한 관계로 남는 그런 느낌..? 망할.


언니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살아 돌아온 그 언니의 입에서 행여나..

”네가 돈을 안 빌려줘서 그래.

네가 내 출판사에서 책을 안 내주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거야.

그래 어릴 때부터 항상 네가 문제였어.

항상 그랬어.

니가.

니가.

니가.

너 때문에.

그래 그 잘난 너 때문에!!!"


'너 때문에'라는 말은 어느새 '나 때문'이라는 핏빛 자책이 되어 내 심장이 과녁판이라도 되는 양 수도 없이 내리 꽂힌다. 언니에게 던진 내 경솔한 물음에 저런 이유가 답변이 되어 꽂힐까 봐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뒤돌아서 걸어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는걸..'


'언니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게 쉼을 주는 그 자리에서 차분히 고민해본다.

일단 언니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출판사의 사장이다. 뭐 겉으로야 그렇지만,

요즘 출판업계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당연히 상황이 안 좋다. 최악이지.

아무리 사회생활 까막눈인 나지만, 나도 이 업계 있어서 들리는 소문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언니의 출판사의 작가 타깃은 돈이 될 것 같은 너튜브 스타들. 이미 구독자 수가 몇십만을 넘는 충분한 독자층이 될 조건을 갖춘 그들을 찾아,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책 출간을 유혹하고,

무려 이 나라가 인정해준 출간 표준계약서를 초안으로 한 계약서를 작가에게 내밀며 영업 웃음 발사^^

"세상에 유일한 네 이름으로 된 너만의 책을 남기게 해 줄게. 네가 나중에 죽어 없어져도 너의 소중한 그 책은 세상에 남아 너의 가족은 물론,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거야."라는 멘트로 일반인을 한순간에 작가로 포장시킨다.


흥행하면 대박, 안돼도 그 잘난 표준계약서에 의거 10년 계약 조항을 따라 언니의 출판사에서만 출간할 수 있는 노예 같은 조항으로 일반인 작가를 둘둘 묶어놓을 수 있으니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딨을까?

역시 사업수완이 좋은 E성향의 언니답게 잘도 일반인 작가들을 구워삶고 있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라.

누가 당신에게 작가를 시켜줄 테니 책을 내자고 한다.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한글만 알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한글을 알지.’

그리고 '작가'라는 글자가 주는 묘한 신비감을 거부할 수 있는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해서 한 작가라도 대박이 터지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언니의 출판사는 출간한 책이 연달아 모두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최악인 건, 너무도 쉽게 접근한 그 너튜브 스타분들의 학폭, 미투 등 사생활 문제가 언론에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면서 출판사의 이미지도 나락으로.

언니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이 들려왔었다.

'그래서 돈이 급했을까..’

돈으로 안되는 건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언니처럼 나도 출판사의 사장이긴 하다.

나의 작고 귀여운 출판사 앤 나폴리.

20년 넘게 연재 중인 그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이 "너 내 동료가 돼라!"라고 외치듯,

나의 출판사 이름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앤 나폴리로 하겠다!'로 정했다.

직원은?

없다. 소속 작가?

당연히 없다. 아니,

1명 있지. 응 너무 뻔하게 예상되겠지만,

나다.


내가 이 출판사를 설립할 때만 해도 생소했던 개념이긴 한데.. 독립출판, 1인 출판 이런 게 요새 유행이라더라.

맞다.

내 소중한 앤 나폴리 출판사는 규모가 작은 나만의 출판사이다.

물론 이런 I성향의 나에게도 소중한 이들이 몇몇 있어 소소하게 함께 공저로 작업하기도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내가 작가도 해 먹고 출판사도 해 먹는 나만의 작고 귀여운 앤 나폴리 출판사다.

깜찍하군.

언니의 출판사가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 느낌이라면, 나는 있는지도 모를, 한 10년간 책 한 권 팔리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동네 서점 느낌?

그렇다고 무시는 금물!

나는 무려 나름 내가 출간한 작고 귀여운 소중한 책들이 여러 권 있는 나름 스테디셀러 작가다.

나를 찾는 나름의 마니아 독자분들도 있다는 사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않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추구하는 꿈과 목적의 방향 돈보다 중요하다 여긴다.

돈을 원했다면 언니가 예전 제시했던 대로 교정부터 삽화, 표지 디자인, 판매 마케팅, 독자 소통까지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언니의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했을 것이다.

그 어린 고등학교 시절 언니의 유혹에 못 이겨 도전했던 공모전 그때처럼 언니와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무려 해당 공모전 최연소 대상을 수상했음에도 그때부터 언니와 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정확히 그 망할 "돈" 이 끼어있었다. 가족 간의 관계를 깨버리면서까지 벌어야 하는 돈이라면,

나는 필요 없다.


아무튼 그때 재미를 좀 봐서인지 언니는 이후 출판사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사업 확장에 눈이 돌아있던 언니는 끝없는 욕심에 굴복한 듯 내게 수도 없이 출간 제안을 해댔다.

그때마다 나는 거절의 거절. Nono!!


"싫어. 난 돈 벌려고 책 내는 거 아냐.

그냥 몇 분 없어도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독자분들과 소통하면서.. 그런 소소한 작가로 남을래."


이호랑.

내 이름 석자를 이미 선명하게 인쇄까지 해서 서명만 하면 완벽하다는-물론 언니의 일방적 주장이었지만-그 계약서를 눈앞에 흔들며 당장 출간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말하는 E언니에게 나는 I답지 않게 잘도 싫다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거절도 잘 못하는 I성향의 나지만, 이상하게도 E언니 앞에서는 잘만 말한다.

'음. 쌍둥이라 얼굴이 똑같이 생겨서 이질감이 없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던 작업용 딱딱한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맞은편에 있는 아주 아늑한 흰색 의자로 바꿔 앉아 목을 뒤로 젖혀 편안한 자세를 취해본다.


아! 잠깐 나의 작고 소중한 앤 나폴리 사무실 소개를 하자면,

나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작업용 딱딱이 나무 의자세상 늘어질 수 있는 아늑한 코튼 의자를 마주 보게 두었다.


작업할 때는 저 딱딱한 의자에서 하고, 쉴 때는 그 앞에 있는 이 아늑한 의자에 앉아 정말 늘어지게 쉰다. 아무래도 혼자 일하는 사무실이다 보니 이런 세세한 걸 구분해놓지 않으면 너무 편하게 돼서 작업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 세팅한 방법이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

물론 순백의 새하얀 백지 모니터 화면 위에 거

'어서 타자를 쳐서 글을 나열해주세요^^ 먹고살아야죠 작가님^^'이라 말하는 듯 강요하듯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을 때면 당장이라도 저 망할 놈에 딱딱이 의자를 불태우고 싶긴 하지만.


아늑한 의자에 앉아 잠을 쫓으려 기지개를 켠다.

그럼에도 새벽부터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였을까. 몸이 나른해진다.

그러다 머릿속 생각의 강이 나를 다시 언니의 자살 시도라는 칠흑 같은 바닷가로 인도한다.


언니와 나는 쌍둥이다.

겉모습이 99% 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면은 너무도 다른 E언니를 둔 동생 I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아늑한 의자에 목을 기대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있노라니, 노곤노곤이라는 녀석이 나를 내 기억 속 학창 시절로 데려간다.


어린 시절 밝고 활기차고 자기 멋을 진즉 알고, 그래서 자기 멋대로 사는 언니, (E)이지랑.

'오죽했으면 별명이 이지랄이었을까'

그리고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쌍둥이 동생 '이호랑(I)'


항상 비교되는 그 잘난 언니를 보며 나의 학창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그런 언니를 따라가기 위해, 닮기 위해 노력했던 상처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이야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좀 붙었지만, 어린 마음엔 늘 그런 멋지고 당당한 언니를 닮고 싶었나 보다.

'아늑 의자야 나 잠들게 하면 안 돼'하고 간곡히 무언의 부탁을 보내보지만,

어느새 이 녀석은 나를 내 기억 속 학창 시절 그때로 인도한다. 어떤 소리가 들린다.



"야! 이지랄! 쟤 네 동생 아니냐? 저 교복 펑퍼짐한 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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