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는 글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by 빨양c



그렇게 호랑은 너무 쉽게 그리고 누구보다 깊게,

그래, 누군가들이 쉽게들 말하듯 유난스럽게,

상대방에게 감정이입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 호랑에게 인간관계라는 건 너무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멀리하는 것이 그나마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학창 시절이든, 어른이라 불리는 지금이든.


'뭐 이지랄이었으면 이런 고민 따위 하하하 하며 우스워했으려나..'


무한반복으로 돌아가고 있는 Song request를 들으며 살며시 눈을 뜨니 여전히 창문 밖 세차게 쏟아붓는 빗물이 보인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직 학교 도착까지는 거리가 좀 남았다.

호랑이 다시 눈을 감으니,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 생각을 그만 멈추려 의도적으로 노력했지만,

언젠가부터 머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디로 흘러가든 그냥 두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억지로 끊으려 할수록 그 노력 때문에 더 잡다한 생각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지 맘대로 하게 그냥 두면, 언젠가는 그 생각도 사라지더라는 걸 이때쯤 호랑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니, 무던해졌달까.


'작가는 무슨 놈에 작가.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지. 참내.'

지랑의 공모전 타령이 떠오른 호랑은

창문이 굳게 닫혀 그럴 리 없음에도, 마치 빗물이 눈에 튀기라도 한 듯 갑자기 눈을 질끈 움찔거렸다.


빗발은 점점 더 거세져 이제는 버스를 당장이라도 물속으로 떠밀어 넣을 기세다.


'그리고 글자의 무게를 감당할수없는 사람이지..'

이렇게 글쓰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호랑이었지만,

사실 어린 날의 호랑은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소설처럼 가상의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그 인물들에게 호랑의 생각과 느낀 감정들을 덧입힌다. 주인공이든 주변인이든 모든 등장 인물들에게 호랑의 생각과 감정이 스며들기에 호랑은 그 모든 캐릭터를 본인처럼 느꼈고, 그들 사이 이어지는 서사를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 가득했던 생각, 그 감당할 수 없었던 고통들을 소설 속 인물들이 대신 짊어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누군가는 "그거 정말 니 쓸데없는 생각이네-"로 치부했을 머릿속 생각과 감정들이

소설 속 누군가들에겐 "정말 특별한 생각이네요!"로 토닥여지는 느낌.

이처럼 호랑은 글쓰기야말로 본인이 위로받고,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임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유일한 휴식처였던 글쓰기였지만,

그것도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호랑은 중학교 시절을 지나며 글쓰기를 환멸 하게 되었다. 그래,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하던 대로 그 “불필요한” 글쓰기 따위.



때는 비 오는 버스 안 호랑에서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공포의 중2병이 돌았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 니네 쌍둥이는 생긴 것도 똑같은 게 둘 다 왜 그 모양이니 정말. 내일 부모님 모셔와!"

선생님의 따끔한 목소리가 들린다.


"부모님 돈 벌러 가야 돼서 못 오시는데요. 저희 집 가난한데 돈 못 벌면 쌤이 저희 대신 먹여 살리실 거예요?"

이게 정말 우리가 알던 그 호랑이 말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언뜻 들으면 지랑이 말한 것으로 착각할 말투로 호랑이 말한다.


"큭큭큭"

옆에서 같이 혼나고 있던 지랑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내일 안 오시면 어떻게 될지 각오들 해.다 나가봐!"

지쳤다는 듯 선생님이 힘없는 투로 쌍둥이를 향해 말한다.


"아 담탱 오늘따라 왜리 예민하냐.. 징글징글하다.~하~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와 참내. 야 이지랑 이따 맨발 노래방이나 가자. 애들 거기서 모이기로 했어. 잘생긴 선배도 몇 명 온다니까 기대해 ㅋㅋ"

호랑이 교무실을 나오며 지랑에게 말한다.


"좋지~역시 내 동생! 나랑 쿵짝이 잘 맞네. 이 우울쓰한 기분을 노래방에서 다 날려버려야지. 오늘 목 상태 좀 보자 아아아"

지랑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닭이 울어봤자 꼬끼오지 뭔 꾀꼬리 되겠다고 꽥꽥되냐~"

호랑이 놀리듯 지랑을 향해 말한다.


중2 시절, 믿기 어렵겠지만 호랑은 고등학교 때와는 많이 달랐다.

어쩌면 지랑보다 더 지랄 맞다 소문이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 시끌벅적한 아이로 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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