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게 호랑은 너무 쉽게 그리고 누구보다 깊게,
그래, 누군가들이 쉽게들 말하듯 유난스럽게,
상대방에게 감정이입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 호랑에게 인간관계라는 건 너무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멀리하는 것이 그나마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학창 시절이든, 다 큰 어른이라 불리는 지금이든.
'뭐 이지랄이었으면 이런 고민 따위 하하하 하며 우스워했으려나..'
무한반복으로 돌아가고 있는 Song request를 들으며 살며시 눈을 뜨니 여전히 창문 밖 세차게 쏟아붓는 빗물이 보인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직 학교 도착까지는 거리가 좀 남았다.
호랑이 다시 눈을 감으니,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 생각을 그만 멈추려 의도적으로 노력했지만,
언젠가부터 머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디로 흘러가든 그냥 두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억지로 끊으려 할수록 그 노력 때문에 더 잡다한 생각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지 맘대로 하게 그냥 두면, 언젠가는 그 생각도 사라지더라는 걸 이때쯤 호랑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니, 좀 무던해졌달까.
'작가는 무슨 놈에 작가.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지. 참내.'
지랑의 공모전 타령이 떠오른 호랑은
창문이 굳게 닫혀 그럴 리 없음에도, 마치 빗물이 눈에 튀기라도 한 듯 갑자기 눈을 질끈 움찔거렸다.
빗발은 점점 더 거세져 이제는 버스를 당장이라도 물속으로 떠밀어 넣을 기세다.
'그리고 난 글자의 무게를 감당할수없는 사람이지..'
이렇게 글쓰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호랑이었지만,
사실 어린 날의 호랑은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소설처럼 가상의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그 인물들에게 호랑의 생각과 느낀 감정들을 덧입힌다. 주인공이든 주변인이든 모든 등장 인물들에게 호랑의 생각과 감정이 스며들기에 호랑은 그 모든 캐릭터를 본인처럼 느꼈고, 그들 사이 이어지는 서사를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 가득했던 생각, 그 감당할 수 없었던 고통들을 소설 속 인물들이 대신 짊어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누군가는 "그거 정말 니 쓸데없는 생각이네-"로 치부했을 머릿속 생각과 감정들이
소설 속 누군가들에겐 "정말 특별한 생각이네요!"로 토닥여지는 느낌.
이처럼 호랑은 글쓰기야말로 본인이 위로받고,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임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유일한 휴식처였던 글쓰기였지만,
그것도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호랑은 중학교 시절을 지나며 글쓰기를 환멸 하게 되었다. 그래,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하던 대로 그 “불필요한” 글쓰기 따위.
때는 비 오는 버스 안 호랑에서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공포의 중2병이 돌았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 니네 쌍둥이는 생긴 것도 똑같은 게 둘 다 왜 그 모양이니 정말. 내일 부모님 모셔와!"
선생님의 따끔한 목소리가 들린다.
"부모님 돈 벌러 가야 돼서 못 오시는데요. 저희 집 가난한데 돈 못 벌면 쌤이 저희 대신 먹여 살리실 거예요?"
이게 정말 우리가 알던 그 호랑이 말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언뜻 들으면 지랑이 말한 것으로 착각할 말투로 호랑이 말한다.
"큭큭큭"
옆에서 같이 혼나고 있던 지랑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내일 안 오시면 어떻게 될지 각오들 해.다 나가봐!"
지쳤다는 듯 선생님이 힘없는 투로 쌍둥이를 향해 말한다.
"아 담탱 오늘따라 왜리 예민하냐.. 징글징글하다.~하~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와 참내. 야 이지랑 이따 맨발 노래방이나 가자. 애들 거기서 모이기로 했어. 잘생긴 선배도 몇 명 온다니까 기대해 ㅋㅋ"
호랑이 교무실을 나오며 지랑에게 말한다.
"좋지~역시 내 동생! 나랑 쿵짝이 잘 맞네. 이 우울쓰한 기분을 노래방에서 다 날려버려야지. 오늘 목 상태 좀 보자 아아아"
지랑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닭이 울어봤자 꼬끼오지 뭔 꾀꼬리 되겠다고 꽥꽥되냐~"
호랑이 놀리듯 지랑을 향해 말한다.
중2 시절, 믿기 어렵겠지만 호랑은 고등학교 때와는 많이 달랐다.
어쩌면 지랑보다 더 지랄 맞다 소문이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 시끌벅적한 아이로 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