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되면 정말 i호랑은 사라질 것만 같은,
물론 그렇게 지랑이보다 더 지랑이처럼 지랄 맞은 중2를 보내던 그때도, 호랑은 내심 본인의 성향인 I답게 조용하고, 차분하고, 고요한 게 본인에게 친숙함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또 다른 I의 특성답게 그런 자신의 본래 모습은 철저히 감추고,
E같은 지랑을 따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사자인 지랑을 속이고, 부모님을 속이고, 선생님을, 그렇게 주변 친구들 모두를 속였다.
그렇게 본인도 지랑처럼 E성향이 가득한 아이로 스스로를 철저히 포장하려 노력했고,
그렇게 본인 스스로를 속였다.
왜?
우리 모두 겪어 알듯, 중2 그 나이 때 우리들은 누구나 머릿속에 세상 심오한 철학자 100명쯤 들어앉아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철학자들은 늘 그때의 우리에게 떠들어대며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해
'세상은 무엇인가?'로 이어지는
학교 성적에는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되는 물음들.
그리고 그런 철학자들이 머릿속에서 실컷 떠들어대면, 그 소란스러움이 낯설어서였을까?
아직 어린 날의 우리들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저 누구보다 단순하게 결론짓고, 아무렇게나 행동으로 옮기곤 했다. 그리고 그때의 호랑도 다를 바 없었다.
"넌 쌍둥이인데 왜 니 언니처럼 그렇지 않니?"
"넌 쌍둥이인데 왜 니 언니랑 달라?"
"니 언니는 그런데 너는 왜 그래? 쌍둥이 아냐?"
"너 진짜 이상하다. 니 언니는 안 그러던데. 무슨 쌍둥이가 그래?"
다 똑같은 말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모두 다른 사람이 호랑에게 했던 말이란 것이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호랑이 가장 많이 들었던 저 말들은 한창 예민한 중2 호랑에겐 빠져나갈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진짜 나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도 허락받지 못한 채,
'그럼 나는 언니처럼 되야겠구나, 그렇게 물어대는 니들 뜻대로. 그럼 내가 좀 편해지겠구나.'라는,
말도 안 되게 단순한 결론으로 치달았고,
그저 행동으로 옮겼을 뿐.
그리고 다만, I의 특성대로 집요하고 완벽하게 지랑이처럼 지랄 맞게 되려 했을 뿐.
그래서 호랑은 언젠가부터 작정한 듯, 지랑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랑이 처럼 수업시간엔 풀(Full) 잠, 쉬는 시간엔 꿀(honey) 잠, 방과 후엔 노래방으로 달려가고, 습관적으로 학교도 제끼고 주변 학교 축제에 훈남 구경도 가고, 친구들과 놀겠다고 밤새 밖에서 떠돌기도 하고. 더 놀라운 건, I의 성향 때문인지 어떨 때는 지랑보다 더 악랄하게 지랄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야 이호랑 설마 오늘도 뺄 거냐? 한잔 하라니까?
어른들도 다 하는 거 우리도 언젠가 다 할텐데 지금 못할 거 뭐 있냐?"
호랑이와 그 또래의 무리가 아무 이유 없는 어두컴컴한 길바닥 한 모퉁이에 앉아 그들 또래의 집단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야야. 저건 술 담배 얘기 나오면 꼭 저러더라. 우리랑 놀건 다 놀면서 이럴 때만 혼자 고결한 척 오진다니까 진짜. 재수가 없어요 아주ㅋㅋ"
무리 중 하나가 말한다.
"야 이호랑. 이지랑은 이런 말 나오기도 전에 원샷 때렸을걸? ㅋㅋ 니네 쌍둥이 맞냐~아 지랑이가 와야 재밌는데. 저건 겉만 똑같지 재미가 없어 영~"
무리 중 또 다른 하나인 한 학년 선배인 C오빠가 말한다.
호랑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럴 때마다 호랑을 보호해줬던 지랑도 이날은 왜인지 없었다.
호랑은 망설였다.
언젠가부터 호랑도 느끼고 있었다.
자기한테 잘 맞지 않는 지랑이라는 옷을
‘이게 맞다. 언니처럼 하는 게 맞다’
고집하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머릿속 철학자 100명을 눌러 애써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이었던 호랑에게 있어 술 담배에 있어서 만큼은 호랑의 기준엔 최후의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그 길로 가는 순간,
진짜 E지랑같은 사람으로 인정받겠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i호랑은 사라질 것만 같은,
칠흑같은 절벽 낭떠러지로 스스로를 밀어넣는 느낌.
지랑의 가면이 벗겨질까 노심초사하며 늘 애쓰던 당시의 호랑은 그렇게 그 절벽 낭떠러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I야, 그렇게 꾸역꾸역 E가 될 필요는 없어..
넌 I답게 I로 살면 돼."
누군가 그때의 호랑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어린 호랑은 그런 절벽 따위 우습게 뛰어넘었을 텐데.
아쉽게도 호랑의 주변엔 그런 하나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그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호랑 본인을 대신해 그 낭떠러지에서 호랑을 건져 올려주던 지랑도 자리에 없었다.
“안 마실 거면 그냥 꺼져라. 술맛 떨어지게 왜 끼는 거야 그럼?”
무리의 하나가 선택을 종용하며 위협하듯 말한다.
호랑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이 무리가 호랑을 껴주지만, 지랑이에게 대하는 것과 결이 다르다는 걸.
지랑 때문에 호랑을 껴주지만, 본인이 지랑이인 척한다는 걸 잘 알고, 지랑이 자릴 비웠을 때 틈만 나면 이런 식으로 호랑을 괴롭혔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와 바로 오늘,
호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E지랑인척 살 것인가.
지랑이 아닌 무언가로 살 것인가.
이 물음을 앞에 두고 호랑의 머릿속 철학자 100명은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