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냥, 그때, 그게, 거기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학교 선생님도 모두가 사라진 새까만 창문으로 가득한 학교.
그리고 그 앞 어두컴컴한 학교 운동장과 그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들 중 두 번째 나무에 호랑은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걷고 걸었는데, 결국 돌아온 장소가 학교라니.
갈 곳 없는 중2는 서럽다.
호랑은 체육복을 속에 겹쳐 입고 교복 치마를 겉에 두른 채, 이미 굳게 잠긴 허리 높이의 학교 정문을 훌쩍 뛰어넘어 세상보다 더 깜깜한 운동장에 들어섰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아마도 그렇게 왜 나보고 언니 같지 않냐고 물어대는 사람들을 탓하며 스스로 이지랑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때부터 아니었을까?
그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호랑은 이 두 번째 나무를 찾았고, 기댔다.
왜 굳이 두 번째 나무였을까?
그냥 그때 그 나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그냥, 그때, 그게,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이것도 잘못된게 아니다.
그렇게 그 나무에 기대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그 사람 때문에 마음 아팠던 일, 언니처럼 된다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하는 공허한 질문 같은 본인의 힘듦과 슬픔을 말없이 털어놓았다.
그렇게 나무에 기대 어떤 날은 활짝 웃고, 어떤 날은 눈물 쏟고, 어떤 날은 자책하고, 어떤 날은 기운 내고.
물론 나무는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못했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소리나 지껄여대는 주변 사람들보다 낫다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무리 중 하나의 쌔빨간 가시 돋친 말들을 피해 온종일 걷기만 하던 호랑이 다시 돌아온 곳 또한 바로 그 나무 옆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랑은 누구도 자신을 위로할 수 없다 믿었고, 또 아무에게도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호랑은 어젯밤 그 무리 속에서 있었던 일을 나무에게 털어놓았다.
그 잘난 무리의 어른인 척 놀아나는 제안을 뿌리치고 뛰쳐나오는 순간 호랑은 이미 알았던 것 같다.
다시는 그 무리에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곧 본인이 지랑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임을.
나무 옆에 이렇게 맥아리 없이 앉아있는 본인을,
누구라도 제발 이런 자신을 안아줬으면, 다독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누구가 절대 이지랑은 아니길 그렇게나 바랬었다. 하지만 그때 호랑의 옆에 있는 건 안타깝게도 지랑이었다.
"야 이호랑! 역시 여기 있었네. 걔네들이 그날 뭐라 했어? 무시해~ 걔들 원래 그렇잖아. 내 친구들인데 나도 가끔 개짜증 나서 패 버리고 싶은데 뭐. 너라고 오죽하겠냐. 괜찮아?"
어느샌가 다가온 지랑이 호랑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언니도 그렇고,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소리나 지껄여댄다고 호랑은 생각했다.
그 시절 그때, 누군가에겐 무리에서의 "이탈"은 세상으로부터의 일방적 거절을 의미했다.
그 무리가 누군가에겐 전부라 믿어지던 때였고, 그때의 주변 사람들은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렇게 된 건 당연히 그 무리의 잘못이 아닌, 무리를 이탈당한 무리 이탈자의 잘못이라고.
호랑은 이 일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은, 늘 그렇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뿐이라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