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피해야 해.
지난밤 40도를 넘겨버리는 뜨밤(뜨거운 밤)을 보내서 그런가.
찌뿌두두한 몸을 모닝 기지개로 쭈우우욱 펴는데
오웃. 팔다리 손가락발꾸락 사지가 쭉쭉 펴지는 느낌. 깨운해다 깨운해!
“응애애액! (악 깜짝야!)”
내 귀여운 겨듀량이 밑 갑작스러운 거대한 검은 머리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빠가 내 왼쪽 겨듈 밑에서 내 팔을 팔베개라도 되는 양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다.
'아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구.. 누가 봐도 내가 아빠 겨듀량이에서 자고 있어야..
그래, 그 평화로운 광고의 한 장면 같은 그런 그림 아니냐규.
거의 내 몸통만 한 아빠 머리가 내 겨듈에 와있다니. 이게 머선일인지 대체. 히융..‘
난 그렇게 한동안 불만 가득 칭얼칭얼 댔다.
그리고 눈을 뜬 아빠는 갑자기 나를 목욕시키더니 엄마와 셋이 갑자기 장모님 집 밖으로 나간다.
"응앵?(아빠 어디 가?)"
하얀 솜뭉치가 혹시 날 놓칠세라 부리나케 아빠 어깨 위에 안착해 따라온다.
“따로 예약은 필요 없다는데? 그래도 열났었으니까 한번 진찰받아보는 게 좋겠지?”
어젯밤 잠을 설친 아직 잠긴 목소리의 엄마가 차분히 말한다.
“응. 차로 가면 금방이니까 한번 가보지 뭐.”
말을 마친 아빠는 갑자기 나를 자동차 뒷좌석 아기 카시트에 앉히려고 시도한다.
“응애애애애애액!!(그게 되겠냐구요!!!)”
후. 이 초보 아빠. 나를 외출용 겉싸개에 둘둘둘 싸놓고 카시트에 올려둔다.
겉싸개로 쌌으니 당연히 다리가 꽁꽁 묶여있어 벌어지지가 않는데
아빠는 그런 나를 무슨 장작개비 올리듯 카시트에 세워서 실으려고 한다.
“여보. 그건 바구니용 카시트일 때만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우리 꺼는 아예 신생아용이 아니어서 안 되는 거 아냐?”
'그러치그렇취..! 역시 똑똑한 우리 엄마.
이쯤 되면 저 아빠 사람.. 나한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닌가 하는 강한 합리적 의심이 든담...후...'
결국 엄마가 뒷좌석에 앉아 나를 포근히 안고, 차가 출발한다.
나는 이제까지 차를 세 번째 타보는 거 같다.
처음 대학병원에서 태어나서 조리원으로 이동할 때. 두 번째는 조리원에서 장모님 댁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오늘 세 번째.
두 번째까지는 창밖 햇살이 너무 밝아서 눈 뜰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그래두 나름 익숙해진 눈두덩이 들어 올리기 능력을 발휘해서 살짝 실눈을 떠 주변을 살펴본다.
아직 눈이 세상에 완전히 적응되진 않아서 모든 게 흐릿하게만 보인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아빠의 신기한 능력을 알게 됐다.
'아니.. 아빠도 나처럼 눈이 두 개인데, 어떻게 저 많은 유리며 거울을 한 번에 보는 거지?
유리만 해도 앞면에 하나 양 옆면에 두 개, 뒷면도 하나 더 있고,
그리고 거울은 아빠 머리 위 하나, 차 양쪽에 두 개 붙어있고..
그럼 총 하나, 두울, 세엣, 네엣.. 헙!! 여섯 개도 넘는 유리며 거울을 저 두 눈으로 어찌 다 보면서 운전을 하는 거지?
내가 보는 아빠 눈 두 개 말고 더 눈이 숨겨져 있나...? 어른이 되면 눈이 더 생겨..? 조큼 징그러운걸.. 이게 머선일이야.. 눈이 여러 개면 좋은 거야 아니면 괴물...? 크앙.'
처음 본 아빠의 운전하는 모습이 자못 괴물스러워서 혼자 신기해하며 당황해하고 있던 나,
끼익-
"도착! 내리자 우리 축뽁이. 차도 잘 타고~ 안 무서웠지?"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린다.
"응애앵(응 엄마 무섭진 않았는데 아빠는 눈 여섯 개 괴물인 거야..?"
"응야 그래그래 이제 병원 들어가자~"
음.. 아직 소통이 안 되는 흔한 신생아와 엄마의 대화.
그렇게 병원에 들어선 우리.
나는 그래도 병원이 낯설지 않다. 나름 친숙하달까?
태어났을 때도 엄청 큰 병원 산부인과에도 며칠 머물고, 소아과에도 며칠 머물렀다.
그때 날 현생으로 끌어내 주신 의사 김 선생님이 있으신데 너무 멋진 분이셨다.
삼신 할매도 그런 분의 인품.. 아니 겉모양이라도 좀 닮아야 한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매 순간 차분히, 인자하게 집도하신 분으로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병원이 그렇게 무섭거나 하진 않다. 아니 않았다. 근데..
“음.. 별 이상은 없네요. 영아산통이니 평소 배 마사지 잘해주시고요.”
김 의사쌤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처음 보는 의사쌤이 말한다.
음 역시 의사쌤들은 훌륭하시군. 여기까진 좋았다.
"아. 근데 보니까 애기 BCG 접종은 아직이신 거 같은데.. 접종기간이 이미 지나셨어요. 오신 김에 맞고 가시죠?"
이때만 해도 좋았다. BCG 접종이 뭔지 0세는 몰랐으니까.
"아. 그게 뭐죠? 예방 접종 같은 건가요? 오늘 맞을 수 있는 건가요?"
왜 그래 아빠.. 왜 목소리 그렇게 흔들려.. 저런 설득에 넘어가면 안 돼...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피해야 해.
그리고 몇 분후.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으악!!!!!!!!!!!!!!!!)
처음 보는 사람이 뾰족한 바늘 달린 도구를 냅따 내 왼쪽 팔뚝에 꽂아 넣는다.
그냥 한번 쭈욱 밀어서 약을 넣고 끝이 아니라,
내 소중한 피부에 약이 동그랗게 고이도록 아주 살살살 약을 넣는다.
엄마가 표현한 바로는 포를 뜨듯이 피부 표피에 약을 고이게 넣었다나.
'순식간에 끝나도 아픈 주사를 이런 식으로 놓다니... 너무 아팠엄!!!!! 빼액!!!!!!'
”오늘 피내용 BCG 선택하셔서 여기 동그랗게 물집처럼 잡힌 거 보이시죠?
이 부분이 며칠 후 하얗게 공기게 되고, 피딱지처럼 굳은 후 떨어지면 됩니다.
그때까진 잘 지켜봐 주시고, 오늘은 목욕하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자. 다됐습니다~"
처음 보는 간호사쌤의 처음 듣는 목소리. 후. 거의 저세상 보내는 주사를 놓으시고 이렇게 차분하게 말씀하신다구요?
하지만 신생아여서 그런가, 아니면 주삿바늘이 내 울음보를 너무 터뜨려서 지쳐서 그런가.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추고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아기가 주사 맞아도 잘 참네요 호홓. 아. 이 수첩 가져가시고요. 다음 예방접종이랑 앞으로 맞아야 할 아가 접종 내용 쓰여있으니 확인해보세요. 날짜 맞춰 오시고요."
아빠 품 속에서 울다 지쳐 잠든 나였지만, 이 대목에서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바로 데스노트군...'
나는 살짝 실눈을 떠 아빠가 보고 있는 저 데스노트를 몰래 살펴보기 시작한다.
'오늘 맞은 게 BCG랬으니까... 어디 보자 그다음은.. B형 간염이군. 이건 한 달 뒤.. 그리고 그다음은.. 그다음은..'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수첩 아래쪽으로 끝도 없이 예방 주사 목록이 펼쳐져 있어서 더 이상 볼 엄두가 안 났다.
'이 세상은 썩었어.. 병 예방하려다 내 몸에 더 이상 주삿바늘 꽂을 데가 없겠는걸 으앙....'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