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빠는 왜 직업이 없어?

왜 거기서 침 질질 흘리며 퍼질러 자고 있냐 이 말이야 내 말은.

by 빨양c


'사지 멀쩡한 인간이 저렇게 대낮부터 아기 자장가 들으며 코 골고 자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분명 저 아빠 사람은 직장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아빠는 왜 직장이 없지?'


선 잠에서 깨버린 나는 침 질질 코 드렁드렁 수염 가득가득한 채 옆에서 쿨쿨 중인 아빠를 보고 있다.

음..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분명 내가 태어나고 병원 산부인과에 있을 때 아빠는 출근을 했었다.

물론 당시 전염병이 극심했어서 신생아 면회시간이 저녁 7시 30분부터 8시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빠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그때뿐이었지만, 분명 잠결에 내일 퇴근하고 바로 오겠다고 엄마한테 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서 나와 산후조리원에 몸을 의탁했을 때도 분명 아빠는 회사 때문에 조리원에 같이 있질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 그때 전염병 때문에 조리원에서 한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오는 규정이 생겼다고 했다.

그 말은 출근러들은 출근을 해야 해서 조리원에 산모와 아이를 내려주고 나가면 다신 못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출산휴가가 가능한 자기 아빠 같은 사람들은 5일이라도 같이 머물다 나간다고 조리원 입소 동기 옆자리 엄청 울어대던 못생긴 신생아가 알려줬었다.

그 친구는 잘 지낼까. 나처럼 천장만 보며 세월 보내고 있겠지. 많이 예민하던 아기였는데. 보고프구나 조리원 동기야..


음.. 암튼, 그때 아빠가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조리원 생활이 기대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걸로 기억에 남은 걸 테고.

'설마.. 저거 저거 그때도 두 집 살림 챙긴답시고.. 감히 나와 엄마만 덩그러니 조리원에 버려두고 나돌아 다닌 거 아냐?!!'

의심이 확 들면서 갑자기 속이 울컥해져 코 곯며 자고 있는 아빠 얼굴을 향해 방귀를 뽷!!! 하고 뀌었다.

소리 참 좋지 않은가? 뽷뽷!! 나는 내 방귀소리가 참 좋다. 내 똥방귀 향기는 덤이요~ 에헿!!

그러나 아빠는 미동도 없다.

하. 나 재우려고 자장가 틀어놓고 왜 자기가 저리 잘 자냔 말이지. 늘 이런 식이다.


흠. 암튼 장모님 집에 기어들어온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요즘 낮에도 나를 돌보고 있다.

지난번 일곱번째 에세이 <7*. 아빠에게 두 집 살림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증거1. 밤 10시 나가서 새벽 7시 귀가.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밤마다 사라진다>에서 말했듯,

아빠는 아침 7시면 여기 장모님 댁에 뿅! 하고 나타나선 밤 10시까지 나를 돌보다 밤엔 홀연히 사라진다.

'낮에 여기 와있는 거 보면 직장생활을 하진 않는 거 같단 말이지..’


'그럼 나와 엄빠는 정말.. 힘들게 쿨럭쿨럭 매일 교대근무하시는 60대 장모님한테 빨대 꽂고 살고 있는 거야..?'

아무리 신생아지만 이건 아닌 거 아닌가 싶다.

한창 일해야 할 팔팔한 엄빠와 혈기왕성 흘러넘쳐 터지는 신생아는 대낮부터 이렇게 벌렁 누워 코 골고 있고, 장모님은 뼈 빠지게 나가서 돈 벌고 있고..?

이게 머선일이야 대체.. 요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더니..

아빠는 와꾸가 청년이 절대 아닌데, 왜 직업이 없는 걸까?

"헤이 솜뭉치 일어나 봐. 울 아빠 무직자야? 예전에 삼신 보여준 영상에는 분명 멋진 정장 슈트 빨 죽이는 차도남이었단 말이지.."

잠결의 솜뭉치는 귀찮다는 듯 나한테 음성을 하나 들려준다. 엄마의 목소리다.

"여보 육아휴직 1년 내게 해준대? 그래도 감사하다. 요즘 그런 직장 어디 있어.."

몸이 회복되지 않아 아픈 목소리의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아 저런 얘길 했었어? 나 잘 때 했나 본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나름 유용한 솜뭉치의 생활편의 기능 하나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신생아의 감정 기복은 생각보다 크다.


'자주 써먹어야지. 으헤헿 엄밀히 따지면 저거 솜뭉치도 놀고먹는 무직이지 모.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러면 안된다구. 일을 해랏 솜뭉치 퉤.'

아무튼, 그럼 아빠는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1년 쓰기로 했나 보구나.

'날 위해서? 어머어멋 초큼 감동인데 이거. 이 사람 이거 잠만 퍼질러 잘 줄 아나 했더니 이렇게 신생아 마음 싱숭생숭하게 밀땅하기 있기야 이거?'

난 짧고 뭉툭한 내 팔을 아빠 쪽으로 휘저어본다. 역시 아빠에게 닿진 않는다.

현생에 오기 전 보여준 삼신의 영상에서 현재의 우리 아빠들이 이 사회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여실히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커녕 엄마들도 출산휴가 3개월 쓰는 것도 눈치 엄청 보던데 뭐.

울 엄마처럼 아기 낳아본 엄마 독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3개월이란 시간은 정말 애 낳고 난 본인 몸 추스르는데도 빠듯한 시간이다.

거기에 남편이 혹여나 ‘애 낳으니 난 할 거 다 했다~’는 썩어빠진! 마인드(너머 과격한 표현 졔송해요 애교로봐줘이응앵) 로 엄마와 아기를 대하거나 하면, 엄마는 바로 산후우울증으로 입장.

그럼 힘들어지는 건 누구? 응. 정답. 너 남편들이지 모.


온종일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신생아의 눈에도 이 세상이 이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싶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돈을 버는데, 그 돈을 벌려면 가정의 행복을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한다니.

닭이 먼저야 달걀이 먼저야야 모야. 에잉.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이 많이 크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다만, 난 이 시대 엄빠들이 육아휴직을 당당히 요구했으면 좋겠다.

물론 난 직장이 없는 신생아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당당한 요구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세대가 바꾸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본인 세대가 겪었던 똑같은 길을 본인의 아이가 커서 또 똑같이 걷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놓은 나의 아이가 본인처럼 육아휴직조차 못쓰고 눈치 보며 힘든 삶을 짊어져야 하는 사회 구조가 그 모양 그대로라면, 나 포함 미래 세대에게 조금은 미안하지 않을까?

어머. 나 갑자기 왜리 철학적이야. 내 머릿속에 철학자가 들어있나 이거 싱기방구.

그래도 내가 본 저 아빠 캐릭터 상 그렇게 당당하게 육아휴직 1년을 요구하진 못했을 쫄보인데.

아픈 엄마와 더 나약한 새침데기 귀염둥이 나를 위해서 어떻게든 냈나 보다.

기특한 사람.

이따 분유 원샷하고 트림 빨리 해주는 상을 내려줘야겠다. 헤헷.



계속,


keyword
이전 13화13*. 핵인싸 신생아의 핫육아템-모로반사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