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아님 주의!
예방주사라는 무서운 녀석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나는 당분간 병원 갈 걱정도 없고해서 맘 편히 쿨쿨 잠을 청했다.
"이쯤 되면 신생아 낮밤 구분이 가능해지는구나.. 이때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해야 하는군."
분명 너튜브를 열심히 보고 있을 아빠의 혼잣말이 들린다.
목소리는 들리지만 나는 굳이 눈을 뜨지 않는다.
귀찮아서는 절대 아니구.. 그저 일일이 반응해주면 내 귀여움 뿜뿜 때문에 저 아빠 심장 녹아버릴지도 몰라서. 헤헿.
'그나저나 낮밤 구분이 가능해진다구?'
아 그러구 보니 그동안은 창밖 대부분이 까맣게만 보였었다면, 요즘은 밖이 밝게 보이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았다.
물론 신생아의 숙명대로 거의 누워만 있다 보니 천장의 흰 면만 계속 보고 있긴 하지만..
"축뽁아~ 지금 밖이 밝지~?? 이게 낮이야. 이따 깜깜해지면 밤이구.! 낮엔 노는 거고, 밤엔 자는 거야. 알았지?~"
친절하기도 하신 아빠의 설명이 이어진다.
'음.. 밝은 게 낮이고, 어두운 게 밤이군.'
나는 아빠가 모르긴 바라며 살짝 실눈을 떠서 창밖을 본다.
새까맣던 창밖이 조금은 희미해진 느낌이다.
"헤이클로바 라디오 켜줘."
아빠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서 네모 기계를 향해 말한다.
내 옆 쿨쿨 낮잠을 즐기던 헤이 솜뭉치가 자기를 부른 줄 알고 흠칫 놀란다. 요 우스운 것. 너 말구 헤이 클로버지롱~
열린 창문을 통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에어컨으로 퍼석퍼석해진 내 귀여운 빨간 볼때기를 천연 미스트가 감싸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런 화장품은 어찌 아는 거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갑시다 랄라.)
"아아. <민아정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늘의 문화 초대석 시간은 출판계의 중고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분이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그린 <수상한 퇴근길> 이라는 소설로 평범한 셀러리맨에서 스타작가로 제2의 커리어를 살아가고 계신 핫한 작가님을 모셨는데요. 무엇보다 희망퇴직이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꿈을 이뤄낸..."
그리고 네모 기계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음.. 저게 라디오 인가 보군? 뭔가 익숙한 느낌..'
"자~ 축뽁아. 이제 아빠가 아침이 되면 창문 열고, 이렇게 라디오를 켜줄게. 그럼 아침이다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축뽁이와 아빠만의 시크릿 신호! 히히"
내가 깬걸 눈치챘는지 아빠가 날 안아 품에 안고 내려보며 말한다.
'아빠는 맨날 나랑 둘만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은 하나도 안 궁금해할 시크릿 같은데 킁'
아빠가 뭔 소리를 하는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아침부터 얻어맞은 예방주사 때문인지 아니면 요새 잠을 잘 못자서인지 나는 잠이 쏟아짐을 느낀다.
"낮에 잠을 일부러 안재우면, 밤에 푹 자지않을까?"
요즘 유독 밤잠을 설치는 나 때문에 엄빠가 잘 못 잤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게 무슨 망나니 같은 소리인지. 나 같은 신생아는 낮에 푹 자도 밤엔 더 푹 잘 수 있다구요.
특히 요 근래 나는 잠을 잘 못 잤다.
내 작고 귀여운 뇌로 이유를 생각해보니 속싸개를 안 해서 그런 것 같다. 현생 한 지 시간이 좀 지나자 엄빠가 언젠가부터 속싸개를 더이상 해주지 않는다. 덥기도 덥거니와 숨 쉬기가 좀 어려워 보인다나. 물론 그 말엔 나도 동감이다.
'다만, 그럼.. 내 움직이는 손발 좀 어떻게 해줘..'
내가 누워서 이렇게 눈을 아래로 촥 내리깔아 보면, 내 양 볼 옆으로 파닥파닥 움직이는 게 내 몸에 붙어있는 손인건 알겠다. 처음에는 이게 내 손인지 몰라서 자다 말고 화들짝화들짝 놀란 적이 많다.
근데 문제는.. 이 손이 내 말을 잘 안 듣는다. 하얀 솜뭉치가 요술이라도 부린 건지 이거 참.
분명 내 몸뚱이에 붙어있는데 왜 내 말을 듣질 않는 거야?! 잘 때는 제발 얌전히 내 옆구리에 착 붙어서 얌전히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얄미운 손 둘은 배고프면 내 입으로 오느라 움직이고,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서 또 위로 올라왔다 내려가고. 아주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
물론 가끔은 움직이는 모양이 무척 힙해서 마음에 들 때도 있긴 했지만, 속싸개를 안 하기 시작하니 이 움직이는 손 때문에 깊이 잠을 잘 수가 없다.
'손만 그러면 다행이게?'
요새는 다리도 힘이 좀 생겼는지 난리도 아니다.
생각해보라.
겨우겨우 잠이 들었는데 본인 손 발을 누군가 매달아서 계속 좌우 위아래로 파닥파닥 움직인다면 과연 잠을 잘 잘 수 있겠는가? 욕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흥!!
이렇게 고생하는 나를 모르고, 뭐? 이제 낮밤 구분할 수 있으니 낮에는 안 재우겠다는 말을 하는 저 말인지 똥인지 방구인지 하는 아빠를 보니 기가 막힌다.
"헤이 솜뭉치. 아빠한테 신생아의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너튜브 영상 좀 알고리즘으로 풀어버려."
너튜브를 보는 아빠를 유심히 지켜본 결과, 아빠는 알고리즘의 노예다. 너튜브가 추천해주는 대로 주야장천 본다.
근데 이건 몰랐지? 메롱.
알고리즘을 내가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걸? 헿. 물론 솜뭉치의 부가옵션기능 중 하나인 것 같지만.
"음.. 근데 낮잠을 충분히 못 자면 성격이 예민한 아이가 된다고도 하네.."
너튜브를 보던 아빠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나는 아빠의 반응이 자못 만족스러워 배냇 웃음을 날려준다.
"응? 이건 뭐지? 모로 반사 이불? 그냥 모래주머니 이불 양옆에 넣고 애기 누르는 거 아닌가? 이런 게 좋은가 흠..?"
추천 영상에 뭐가 떴는지 아빠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응? 오오!! 헤이 솜뭉치 아빠가 저거 무조건 사오게 텔레파시든 알고리즘이든 뭐든 다 보내!"
아빠 너튜브를 살짝 훔쳐보니 내 손처럼 마구 맘대로 움직여 잠을 잘 못 이루는 신생아를 위해, 잘 때 손발을 이불로 고정시켜주는 그런 육아템인 것 같아 나는 바로 수를 좀 썼다.
솜뭉치의 영향인지 아빠는 모로 반사 이불 템에 정말 꽂혀 바로 당근맨이 되어 후딱 어딘가로 다녀오더니 내 눈앞에 모로 반사 이불을 짜잔! 대령했다. 굳이 짜잔 효과음을 내지 않으셨어도 좋았을 텐데..
지금도 수많은 밤을 육아에 시름하는 초보 엄빠분들은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 그 장비빨 세우면 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정말 생각도 못한 기가 막힌 장비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근데 그 장비빨 채우려다간 어떻게된다?
정답! 거지꼴을 못 면한다!
정말 딱 봤을 때 별거 없는 육아템같아 보이는데, 육아라는 이름만 붙으면 갑자기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물건값이 엄청 비싸지더라. 게다가 나 같은 신생아들은 금방금방 크기 때문에 얼마 쓰지도 못해..개억울해!!
그럴 때 이런 당근맨을 잘 이용하면 아주 유용한 육아템을 구할 수가 있다!
참고로 우리 아빠 56.2도 당근맨이다. 왠지 자랑해야 할 것만 같아.. 그래서 나는 아빠 직업이 당근맨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아빠 당근맨의 시대!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해볼 생각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모로 반사 이불의 첫 착용기는.. 오마이떙쑤갓 슈퍼 대만족!!!!!!!!
그동안 속싸개가 너무 내 가슴통을 꽁꽁 싸매서 몸이 커질수록 숨쉬기가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요요 귀여운 모로 반사 이불 녀석은 팔 양 옆 부분을 모래주머니(?) 같은 게 이불을 꾸욱 눌러주고 있어서 잠들었을 때 내 손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을 해준다.
사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았고,
그래서 현생 해서 혼자 덩그러니 바닥에 누워있을 때면 이 거친 세상을 엄빠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하는 가냘픈 신생아가 된 것 같아 괜히 서럽고, 그래서 자다가 괜히 막 눈물 콧물 짜고 목청 터져라으앵앵했더랬다.
더 최악인 건, 나를 더 편하게 해 주겠답시고 엄빠는 양수 느낌이 나는 물렁물렁 침대 위에 나를 눕혀서 잠들기를 바라지만, 이상하게 나는 바닥면이 딱딱하지 않으면 잠을 영 못 자겠더라. 물렁 침대는 누운 등 밑에서 나를 지하로 끌어당기는 느낌?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딱딱이 바닥이 좋다.
딱딱이 바닥과 오늘의 핫 육아 템! 이 모로 반사 이불이라면!! 두둥! 낮밤 구분 따위 무섭지 않지!!헤헿. 넘 좋다! 대만족. :)
내가 그동안 짧지 않은 이 현생을 살면서 ‘이건 꼭 사야 돼!!’ 하는 핫육아템이 몇 개 있는데 이건 나중 에세이에 한번 풀어볼 예정이다. PPL은 아니고.. 그냥 그러타구..
아빠가 모로 반사 이불을 내 귀여운 뽈록 배 위에 덮는다. 그럼 나는 꿀잠 열차 타러 슝~~~
★축뽁이의 1분 육아 꿀팁!
*모로 반사란?
모로 반사는 모로(1951)가 발견한 것으로, 갑자기 큰 소리가 나거나 머리 위치가 바뀌면 등을 구부리고 손과 팔을 앞으로 뻗어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팔을 서로 감싸 안는 것이며 생후 4~6개월경 사라진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