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도 없었던 아빠의 마지막 말

by 빨양c


오늘은 아빠가 내게 했던 마지막 말에 대한 글을 써보려구.

뭐, 유언? 그렇게 거창한 단어까지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데 따로 표현할 말이 없으니,

그저 '마지막 말' 정도로만 쓸래.


"꼭 취업하고..."


이거야. 맞지? 아빠의 마지막 말,

참 멋없다 그치?


물론 세월에 깎이고 시간에 묻힌 내 기억이 아빠의 말과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게 하지만,

아빠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내 취업을 걱정하고 있었어.


멋없게.


응, 그렇게나 슬펐던 그때 그 와중에도 참 멋없다고 생각했었던 말이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곱씹어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네.


멋없다 정말.


왜 있잖아,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백발을 잔뜩 기르고 왜인지 백발과 달리 새까만 수염을 멋지게 기른 아버지란 존재들이 곁에 선 아들을 향해서 마지막 순간에 건네는 그런 멋진 장면.

그런 멋진 장면에서 그 멋진 아버지가 어쭙잖게 서 있는 아들을 향해 하는 마지막 말이,

"꼭 취업하려무나." 라면,

음, 상상해 봤는데 아무리 멋진 장면이어도 그 말이면 참-


멋없네. 그치?


내가 자라오는 동안 아빠는 항상 멋진 모습이었는데, 왜 마지막엔 그렇게 멋없는 말을 남겨두고 간 걸까.


어린 시절부터 아빠는 꼭 2:8? 아니 7:3정도 됐겠다. 그 정도의 가르마를 날렵하게 유지했고,

배는 조금 나왔지만, 아 그리고 팔다리도 엄마보다 얇았던 것 같고.

이건 엄마가 들으면 서운해하시겠지만,

그렇게 몸매도 멋진 정장으로 항상 잘만 감추고,

빨갛고, 파랗고, 언젠가는 반짝이가 박혀있는 분홍색의 넥타이도 꼭 목에 메고.

시계는 딱 봐도 명품 아닌 티 나는데, 늘 비싼 거라고 금빛 두른 시계를 손목에 잘도 차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구두닦아 주시는 어르신께 꼭 회사에서 구두를 닦아서 신고 다녔고.

연비가 최악인 그 옛날 구형 새까만 그랜저를 잘도 끌고 다녔어.


응, 지금 곰곰이 어릴 적 내가 봤던 아빠의 옛날 모습을 생각해 보니

아빠는 참 멋진 아빠였는데,


왜 아빠의 마지막 숨결에 간신히 내뱉어진 말은, 정말 그렇게.


멋없었을까.


아빠도 아빠가 그렇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던 거겠지?

아빠처럼 계획적이고, 걱정 많고, 예민하고, 고민 많았던 사람이 마지막 말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을 텐데, 마지막 말이 고작 취업하라는 얘기라는 건, 아빠도 그 말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라고밖에 생각이 안 된다.


지금 쓰다 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은,

그때의 내가 아빠 눈엔 그만큼이나 취업에 짓눌려 힘들어 보였나보다 하는 생각.


맞아. 그때의 난

아빠처럼 계획적이고, 걱정 많고, 예민하고, 고민만 많은 학생이었어서.

그래서 아빠랑 나는 늘 붙어있었지만, 늘 멀리 있었던 거.


맞아. 그랬었지.


그래서 아빠가 마지막으로 내게 해준 말이 그랬나 보다.

그때의 내가 제일 힘들어했고,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그 취업.

그래서 아빠는 내게 꼭 그 취업을 하라고 마지막 간신히 내뱉고 그렇게 날 떠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네.

그래도,


멋없어 아빠.


아, 아빠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으니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겠다.

응. 아빠 말대로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3일 동안 기름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씻어낸 나는,

그 이후 음... 한 넉 달 뒤, 취업했어.

아빠가 세상을 떠났어도, 이 세상은 잘만 흘러가더라고.

여전히 내겐 취업을 해야 한다고 닦달하는 세상.

누가 죽거나 말거나 관심없는 세상.

그 잘난 세상에 살아남아야했던 나는, 아빠의 죽음이고 뭐고, 잔인하게도 취업을 해 있더라.


내가 꼭 가고 싶었던 곳은 포기했고, 그래도 그 업계에 나름 이름있는 회사.

그 회사 출근하면서 나도 아빠처럼 꼭 넥타이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늘 아쉬웠던 건, 아니, 아쉬운게 아니고 많이 슬펐던 건..

아빠한테 넥타이 매는 거 배워둘걸.


아빠는 넥타이 참 멋지게 멨었던 거 같은데.

아무리 초록 창 검색해서 영상 보며 따라 해도 영 어렵더라.

나도 분명 아빠 닮아서 잘 멜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또 잘 어울릴 거로 생각했는데.


영 멋없더라구, 아빠.


그래도 그 모습 아빠가 봤으면, 아빠의 마지막 바람대로 아빠는 날 참 멋지게 봐주었을 것 같기도 하다.

넥타이 메는 법도 자상하게 알려줬을거야 분명.

아빠는 아들들에게 충성하는 멋진 아빠였으니까.


그 회사에서 7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어. 길지?

아빠 젊을 때 어린 내게 누누이 자랑스럽게 말했잖아.

아빠는 능력이 좋아서 회사를 열아홉 번인가? 스물한 번인가 옮겼다고.

물론 그걸 듣던 엄마는, 회사 적응 못 해서 옮겨 다닌 게 뭐 자랑이냐고 쿠사리를 줬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과연 저 쿠사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까?

일본어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별로 쓰기 싫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아빠가 자주 쓰던 쿠사리라는 단어가 문득 그리워지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 사람의 향이 묻어있는 단어들이 있다고.


차라리 아빠의 마지막 말이 취업 따위가 아니라 쿠사리였다면,

나는 조금은 아빠의 마지막을 멋지게 기억할까?


오늘도 역시나 물음만 가득한 글로 하얀 배경이 채워진다.


멋없게.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무슨 일하냐고?

음... 아빠가 대학생이던 어렸던 내게 하라고 했던 직업이 지금 내 직업이야.


웃기지?

난 가끔 내가 웃긴 거 같아.


그때 아빠가 나한테 그 일을 해보면 어떠냐고 했을 때,

내 능력, 그래 지금 돌아보면 뭣도 안되는 그 잘난 능력 운운하며 내가 '그따위 일'을 왜 해야 하냐고 신랄하게 반항했던 그 일.

그 일을 내가 하고 있어 아빠.


그것도 꽤 멋있게.


돌아보면, 역시 나를 제일 잘 아는 아빠였어서.

지금은 내 옆에 있어 주지 못하지만, 그런 나를 제일 잘 아는 아빠였어서

내게 그 일을 해보라고 한 거였을 텐데.

그때의 어린 나는 왜 그렇게나 악랄하게 반항했던 걸까.

그때 아빠 말 듣고 준비해서 그 일을 시작했다면,

아빠의 마지막 말도 그 멋대가리 하나 없는 취업 따위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암만 생각해도 나도 참 멋이라곤 더럽게 없었어, 그치.


근데 아빠,

그래도 나 요즘 좀 멋있게 살고 있어.


아빠가 말한 그 일에서 육아휴직 받아서

아들도 내 손으로 돌보고 있고,

이렇게 글 써서 살다 보니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려보기도 하고.

자랑하는 김에 조금만 더 하자면,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도 내가 쓴 책이 납본되어 있어.

납본이라고 말하더라?

멋지지?

먼 훗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 책은 남는대.

이정도면 나 좀 멋지지 않아 아빠?


응. 요즘 내가 보는 나는 그래도 조금 멋진데,

이런 멋진 나를 봐줄 멋진 아빠는 이 세상에 없네.


그래도 괜찮아.

괜찮다고 믿으려고.

아빠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멋지다 해주는 멋진 사람들이 주변에 아직도 많거든.


사는 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주변 멋진 사람들을 위해 멋지게 살아가는 거.

아니, 멋져 보이게, 괜찮아 보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거.

아빠도 그래서 분홍 넥타이, 금빛 시계, 반짝이는 구두를 그렇게 매일같이 몸에 걸쳤던 걸까?

그때 내 눈엔 허세 가득 하나도 멋없어 보였는데, 다신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멋지게 느껴지는 세월이 되어있네.


우습고,

멋없다가,

또 멋졌다가,

미소가 번지는.

나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나 취업도 잘했고,

아빠보다 더 멋지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래, 멋지게.


다행이다.

오늘의 이 글은, 공허한 물음으로 끝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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