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7일 화요일.
#어젯밤 폭풍비가 무색한 눈부신 완연한 가을 날씨.
#살이 좀 빠져 67kg.
#음악? A River Runs Throught it / Mark Isham
코푸 시럽 한통을 다 먹었다.
코로나 때 보건소에서 업무를 볼 때 한입 먹어보고는 웩 맛없어하고 아주 사치스럽게도 버려버렸던 그 코푸.
그 코푸 한통을 다 먹게 될 줄이야.
독감에 걸렸다.
물론 있었겠지만, 내 기억에 이렇게까지 독감으로 인해 아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시작은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휴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내 직장에선 독감 예방 주사를 맞게 해 준다는 말에
서둘러 독감을 맞으러 갔다.
내 기억에 성인이 되고 나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독감주사.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시절, 그리고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독감 예방주사는 뭐 하러 맞지? 잘 먹고 잘 자고 잘ㅆ고 하면 감기 안 오던데?"
그랬다.
일반적으로 청년남성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까?
그랬던 내가
작년에 태어난 아기를 돌보기 위해 독감 주사를 처음 맞았다.
그리고 지난주 올해의 독감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특별할 건 없었다.
당일은 샤워를 피하라는 말에도 쿨하게 그날 밤 벅벅 샤워도 해주었지.
그날 밤 약간의 코감기 증상이 있어 잠잘 때 신경이 쓰였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난날 아침.
갑작스레 열이 올랐다.
청년남성이었던 그때였다면 약통에 있는 흔한 감기약 한 알 먹고 말았을 테지만,
아기를 돌봐야 하는 나로서는 바로 병원으로 이동.
이비인후과에 갔다.
제일 대기열이 짧은 의사에게 진찰을 보고 약을 타왔다.
급성 인후염. 목이 아팠다.
얼른 나아야지 하는 아주 바른 양육자의 마음으로 약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6시. 설사가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설사는 6시간 넘게 이어졌고 무려 열두 번의 폭풍을 쏟아냈다.
"왜지?"
이유를 안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연스레 이유를 찾아본다.
"약?"
약봉투에 설명되어 있는 약 종류를 살펴본다.
의학적 지식이 많은 아내가 한 알 한 알 설명을 해준다.
여섯 알 중 무려 세 개가 항생제고 스테로이드제도 있단다.
스테로이드가 뭐지? 롤스로이스랑 비슷하니 좋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내의 낌새를 보니 안 먹을 수 있으면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눈치다.
항생제가 쎄다보니 내 위장이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또다시 병원으로.
이번엔 배가 아프니 내과다.
열두 번의 설사로 강제 다이어트가 되어 나쁘지 않다는 경솔한 생각을 뒤로하고
기력이 쇠한 몸을 이끌고 내과 전문의 의사에게 지난주 토요일 독감 예방주사부터 이비인후과 약봉투까지 일일이 설명한다.
의사는 약을 지어주고, 수액을 처방해 준다.
기력이 없어 보인다고 두세 가지 영양제도 같이 넣어준단다.
그렇게 나는 두 시간 동안 누워서 똑똑 떨어지는 수액과 영양제 방울들을 내 혈관에 차곡차곡 담았다.
"근데 왜지?"
분명 작년 이석증으로 쓰러졌을 때 응급실에서 수액 한방 맞으면 벌떡 일어났었는데.
그래서 나는 수액에 대한 근거 없는 맹신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조금 기력이 돌긴 했지만, 작년처럼 말. 짱. 해질 거라 생각했던 내 믿음을 채워주진 못했다.
집에 와서 망할 이비인후과 약을 몽땅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다시 내과에서 지어준 위장약을 먹었다.
내 기억에 처음 먹어보는 지사제 한 알에 신기한 내 장은 설사를 멈춰버린다.
속도 많이 괜찮아졌으니 그날 밤 잠을 푹 잘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또다시 미열과 함께 찾아온 인후염의 고통.
목이 아파왔다.
결국 다음 날.
나는 서둘러 이전 갔던 이비인후과가 아닌 다른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토요일 아침이었고, 아침 9시 땡 오픈런을 했음에도 내 앞에는 대기 인원이 30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병원이 원래 이랬나, 하는 공포감이.
무심하게 태연한 병원 카운터 직원은 예상 대기 시간 1시간 반을 언급하며 기다릴지 말지 정하라고 한다.
기다려야지.
얼마나 명의면 1시간 반이나 기다리겠어?
그 옛날 허준 드라마에서 봤던 "줄을 서시오"가 떠오른다.
꾸역꾸역 기다려서 마침내 명의를 만나 진찰을 본다.
열이 없고 몸살기운이 없으니 코로나는 아닐 것 같단다. 코로나 간이 검사도 음성.
"독감으로 보이네요."
명의가 독감이란다.
'...? 엥?
정확히 일주일 전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독감이라뇨 명의 선생님?'
하마터면 입 밖으로 새어나갈 뻔했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독감에 걸리면
제가 맞은 그 예방 주사는 뭘 위한 예방 주사였던 거죠?
맞다.
정말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목이 부어서 목소리가 안 나와 말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약을 지으러 약국으로 총총.
물론 나가는 길에 아까 그 병원 카운터 직원에게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명의에게 독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의기양양한 째릿 눈빛도 잊지 않았다.
뭐,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약이다.
또다시 약.
도대체 일주일 새에 식탁에 쌓인 약봉투가 몇 개고, 입안에 털어 넣은 약이 몇 개고,
지사제로 멈춘 내 장 안에 떠다니고 있는 약은 몇 개일까.
그렇게 3일이 지난 오늘.
여전히 내 목에서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고통을 처음 느껴본다.
청년 남성으로 불렸던 때만 해도
내가 약을 이렇게나 많이 먹을지 몰랐고,
코푸 시럽을 한통 다 먹게 될 줄도 몰랐고,
지사제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게 될 줄도,
일주일 새에 병원과 약국을 이렇게나 많이 가게 될 줄도,
목소리가 안 나오는 고통을 느끼게 될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글은 엄청 구구절절하다.
코푸 시럽 약에 취해서 써서인지 뭐를 말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정도로 해두고 도망가야지.
"모두 독감 조심하세요!"
안부도 슬쩍 남기고. 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