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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an 04. 2024

Ep4. 천사가 천사를 만드는 방법?




<천사 개체 부족-남은 천사 임무 과부하-인간계 대혼란-선한 인간 및 출산율 급감-천사탄생률 급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 완성. 앞으로 천오백 년 안에 천국에 고령천사가 반 이상될 것이라는 지옥빛 전망.>     


‘천국에 지옥빛 전망이 대체 웬 말이람? 정말 다른 천사들은 이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나만 위기라고 생각하는 건가…‘


예랑은 비현실적인 이 천국의 현실이 현실이란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천사가 부족해 지옥빛 전망 운운하는 천국이라니.


'천사가 부족해진 이유가 뭘까?'

예랑이 배운 바로는 <태초신>이 세상을 처음 만들 때 이 천국에 천사를 탄생시키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인간이 인간계에서 네 번의 환생을 하는 동안 일정 조건에 맞는 선행을 연속해서 쌓는 것. 그래야만 천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다.


 <태초신>이 처음 세상을 만들 때, 인간계를 사이에 두고 착한 이는 천사로, 악한 이는 악마로, 그렇게 천국과 지옥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예랑 같은 일반 천사는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천사와 악마는 인간계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그 구조 속에서 천사는 끝없이 선한 환생을 이루어나가는 인간을 찾아야 했고, 악마는 반대로 끝없이 인간을 타락시켜 악으로 물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선행을 쌓는 인간은커녕, 인간 자체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이 줄자 당연히 천국 천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간과 천사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테초신> 이후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위대한 세 신인 <해주신> <높으신> <어르신>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개체 수의 부족으로 천국, 인간계, 지옥 세 세계의 균형이 깨지는 건 각 세계를 지배하는 어느 신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예랑의 생각에 물론 위대한 세 신의 권능으로 합의만 된다면 천사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었을 텐데, <태초신>이 사라질 때 남긴 절대 법칙에 따라 그들은 더 이상 신도, 천사도 새로 창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렇게 회의 끝에 우선적으로 시행된 것이, 바로 하급 악마, 그러니까 악마 색이 가장 옅은 지옥의 어린 악마를 천국 천사에 할당해 그들을 천국에 데려와 천사로 키워 천사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천사의 임무를 대신 수행할,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겉은 악마이지만 속은 천사인 존재를 늘리면, 어쨌든 인간계에 선한 영향을 끼칠 ‘천사’가 많아질 테니 인간계-천국-지옥의 균형이 다시 맞춰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얼마 가지 못해 최악의 판단이었음이 밝혀졌다. 하급 악마로 천국에 입성한 겉만 악마일 거라 믿었던 아기 악마로 인해 벌어진 천국의 한 사건으로 인해, 이 방안은 즉각 폐기 철회되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그때 ‘사건’이 생각나자 예랑의 등 날개 부위 상처가 다시 욱신거린다. 그때의 상처가 잊혀질 법도 한데, 매번 이런 고통을 주는 걸 보니 지옥에 대한 원망이 든다. 아니, 그것이 지옥을 향하는 것인지 그 결정을 내렸던 위대한 세 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위대한 세 신은 모여 지옥을 지배하는, 하급 악마의 천국 입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지옥을 관장하는 <어르신>에게 책임 추궁을 하고는 두 번째 방안을 제안한다.


그것은 셋 중 어느 신의 아이디어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천사를 인위적으로 창조해 내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태초신>의 법칙으로 인해 직접 천사를 만들 수 없었던 위대한 세 신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그 방법이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

예랑이 예꼬를 탄생시키기도 한 그 방법.

바로 ‘탄생 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 특정’ 성체 천사를 조각내는 것이었다.

기존 천사의 머리, 팔, 다리, 날개, 어깨 그렇게 온몸 각각의 부분을 쪼개 조각낸 후, 인간을 탄생시킬 때 사용하는 삼신의 능력을 사용해 쪼갠 천사의 조각을 늘어뜨려 붙여 아기 천사로 결합, 재탄생시킨다.

이 방법을 따르면 <태초신>의 법칙인 네 번의 환생을 거친 선한 인간은 필요 없다. 그저 기존 천사가 자신의 온몸을 난도질해 조각내는 고통만 참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산고와 비슷한 정도의 고통이리라. 하지만 인간과 달리 그런 천사의 고통을 줄여주는 무통주사 같은 건 없다. 방법이 지극히 지옥스럽지만, 위대하다는 세 신은 천사라면 응당 그 정도 고통은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천사는 그런 거니까. 그게 다였다.

그리고 왜인지 예랑은 그 희귀하다는 천사를 탄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예랑은 그런 고통 속에서 예꼬를 탄생시켰다.


그때의 고통은 끔찍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예상하지 못했던 아기 천사와의 행복은 큰 것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예꼬의 눈동자를 살필 때마다, 그 눈동자가 자신을 보며 웃거나, 찡그리거나, 칭얼댈 때도 예랑은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어쩌면 위대한 세 신은 결국 이런 큰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걸 알고 있었나, 그래서 그렇게 그 고통을 눈감고도 이 방법을 밀어붙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의 큰 뜻대로 천사 수는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천국이 빛이 모자라 천사들이 아기 천사를 더 이상 탄생시키지 않고, 이렇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전까지는.   

   

"콜록콜록, 컥컥"

예랑이 품에 있던 예꼬의 갑작스러운 기침에 화들짝 놀란다.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다시 폈다 휘감아 예꼬를 더 꽉 껴안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자신의 남은 빛을 모두 예꼬에게 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예꼬가 평소 모습을 찾는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모든 빛을 다 주고 싶다. 자신이 소멸할지라도.

하지만 의사 천사가 아닌 예랑에게 그럴 능력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지금처럼 품에 안고 멍청한 대기 숫자만 읊어대는 저 망할 화면만 노려볼 수밖에.

그런 예랑의 눈에 화면의 숫자 30이 들어온다.

한숨이 난다.

마음 한편에 그냥 인기 없는 의사 천사로 대기를 바꿔달라고 할까 고민이 든다. 참는다. 그래도 확실한 의사에게 받는 게 낫다고 믿는다. 예꼬를 더 꽉 껴안는다. 예꼬의 기침이 조금 잦아드는 것 같다.     


'천사가 병에 걸리는 게 말이 돼? 그것도 지옥이나 인간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기 천사가?'     


도대체 천사가 이따위 알지도 못할 병에 걸린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더 짜증 나는 건, 처음에는 그렇게 천국에 난리가 났었는데, 이제는 천국에서 병에 걸린다는 게 무덤덤해진 분위기라는 거다. 위대한 세 신도, 한순간에 사라진 대천사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이 너무 슬프다. 천사가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진다는 게, 그런 곳이 천국이라는 게 절망스럽다.      


<위대하신 세 신, “하급 악마의 천국 재이민 검토설” 3,000년 만에 헬게이트 다시 열리나? <해주신>의 최종 결정만 남아. 삼신 "<해주신>은 현재 정상 임무 중. 부재중 사실 아냐...">


결국 천사 숫자의 급감이라는 결과를 받아 든 천국에, 이전 실패했던 하급 악마의 천국 재이민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세 신이 깊이 공감한다고 했던 그때의 고통은 개인의 고통으로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예랑은 분노가 치민다.


‘뭐? 또 헬게이트를 열겠다고? 부족한 천사 수를 채우려고 이민을 받겠다고? 제일 쉽고, 편한 길로 가겠다는 거네.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도 못하고. 아니, 위대한 세 신은 정말 이 세상을 다스리는 거에 관심이 있기나 한 건가? 그냥 어떻게든 될 대로 되겠지, 나만 아니면 돼, 뭐 그런 거 아니고? 결국 고통은 나 같은 일반 천사들 개인의 몫이라는 건가? 개인의 고통을 책임져주지 않는 세상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거지?’


뉴스 메인 헤드라인 글자 밑으로 특유의 차가운 눈을 내리 깔고 있는 은빛 단발의 삼신의 사진이 보인다. 역시 하나도 당황하지 않은 채,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마치 본인이 다 알아서 하겠다는 듯한 미소. 3천 년 전 자신이 어렸을 때 봤던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미소.

예꼬를 품에 안아 받친 예랑의 날개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삼신의 얼굴을 마주하니 자신의 뒷 목과 날개 사이 등 뒤 정가운데 있는 어릴 적 날카로운 상처가 다시 저려온다. 새까맣게 탄 천사의 링에 닿아 지져진 흔적은 아무리 빛으로 감싸고, 숨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예랑을 다시 괴롭힌다. 예랑의 머리 위 빛의 고리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3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아무리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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