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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Dec 28. 2023

Ep3. <속보> 4분기 천사탄생률 0.7명 깨져.




<"도대체 <해주신>은 어디에?" 사실상 각자도생의 저세상 현실. "위대한 세 신과 대천사는 뭐하나?">


<하루 만에 날개 검게 타… 빛의 고리가 지옥의 불로 타는 증상도. 원인 규명 지체. "신과 대천사는 왜 있나?" 천사의료협회 의사천사들 성명 발표>


천사폰 화면 위로 요즘 각종 이슈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뭐 하나 확실한 소식이 없네.'

예랑은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이슈들이 모두 의문형으로 끝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는다.


<'속보' 4분기 천사탄생률 결국 0.7명 깨져...>

속보 화면이 눈에 비치자 예랑의 손길이 순간 멈칫한다. 예랑의 눈에 급격하게 꺾인 그래프가 눈에 들어온다.


<폭등하는 집값으로 인한 경제력 상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자신의 성장 시절. 그리고 그 때보다 더 불행하게만 보이는 지금의 현실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끔찍한 경쟁심리와 끝없이 서로 비교하는 과잉과시 등등>


천사탄생률의 급감을 표시한 막대그래프가 예랑의 눈에 들어오자, 얼마 전 인간계의 출산율 급감에 대해 들었던 라디오가 떠오른다. 예랑의 눈앞에 떠있는 0.7이라는 숫자와 그때의 라디오 소리가 들리자, 자신이 있는 천국이나 인간계가 크게 다를 바 없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다.


‘희망이 없는 거지... 저 인간계 아주 작은 생명조차도 희망이 없고,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새끼를 낳지 않는 것이 이치이니... 어느덧 천국도 그런 처지가 되어가나 보구나. 천국마저...’

희망이 없는 천국, 지옥빛 전망에 휩싸인 천국, 자신의 4천 년 천국에서의 시간 동안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이 없는... 왜 이렇게 희망을 찾기 힘든 곳이 되어버린 걸까?’

이 물음에 답은 한 가지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천국에, 천사들의 생명력인 빛이 모자라게 된 것에서 시작한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젖과 꿀이 흘러넘친다는 그 대단하신 천국이 언제부터 빛에 대한 갈급함에 쫓기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어떤 천사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지옥으로부터의 영향이라 했고, 왜인지 지옥보다 인간계를 더 못 믿는 천사들은 인간계에서 흘러들어온 악영향이라고 했다. 또 회의론자들은 다른 두 세계보다 우월한 세상이라고 믿어온 천국 내부적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길게 나열하긴 했지만, 결국 어떤 천사도 도대체 왜 빛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천사의 생명력과 직결되는 빛에 대한 문제에 대해선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해결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위대한 세 신도, 삼신도 염라도.


결국 이렇게 빛이 모자란 천국이 되어버리자, 어느 세상에나 있었던, 하지만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난 적 없었던 완벽한 천국에는 결코 없었던 천사들이 나타나 빛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 ‘뚝딱’같이 정기 결제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빛을 가져가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천사의 빛을 앗아가는 방법은 당연히 기존 천국의 방식이 아니었다. 대단히 천사같이 선한 방식인 듯 하지만, 그 실상은 지극히 악마적인 방식일 뿐.


상황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남의 빛을 뺏으려는 자와 자신의 빛을 지키려는 자들 간의 간극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미세한 틈에 불과했던 그것이 이제는 너무 거대하게 찢겨져 아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이 천국엔 점점 여유가 사라져 갔다. 이전엔 이 천국에선 너무도 풍요로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천사들은 더 많은 빛을 경쟁적으로 탐하는 풍조가 생겨버렸다. 그들은 더 많은 빛을 끌어모으기 위해 자신의 임무 외에 추가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으로 능력을 키우기도 하고, 그렇게 치열한 경쟁이 당연시 여겨지는, 대단히 천국적이지 못한 모습들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예랑은 그 결과물이 바로 천사탄생률의 급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치열한 경쟁을 당연시 여기고, 그 안에서 빛을 많이 모으면 승자, 아니면 패자로 양분돼버리는 절망이 일상이 되어버린 천국에서 과연 젊은 천사들이 아기 천사들을 탄생시키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예전에도 불행했는데, 지금도 불행하고, 근데 앞날은 더 불행하다면... 도대체 지옥이랑 뭐가 다른가? 인간계랑 뭐가 다른가? 그렇게 악마들이 기를 쓰고 들어오고 싶어 하고, 인간들이 죽는 순간까지 그리는 그 천국이, 과연 이런 곳일까'

예랑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병원만 봐도 그래. 당장 아기 천사가 빛이 사라지고 있어 아파하는데 당장 방법도 없고, 마냥 기다리라고만 하는데, 아기 천사를 탄생시킬 생각을 미쳤다고 할까? 원래 부여받은 임무 외에 가능한 한 많은 추가 임무를 수행해야만 빛을 유지할 수 있는데 아기 천사를 어떻게 키울까? 내놓는 대책이라고 인간계 어린이처럼 아기 천사를 전담해서 맡아주는 곳을 밤낮없이 운영해 줄 테니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천사니까 다 참고, 그 잘난 임무 수행을 위해 내가 만든 내 새끼랑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당연한 거라고 하는 게... 그게 진짜 당연한 거냐고. 하.’

예랑은 라디오에서 들렸던 그 암담했던 인간계의 이야기와 지금의 천국의 모습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이 난다.


‘정말... 우리는 큰 거, 대단한 거 바라는 게 아냐.

그저… 내 새끼, 내 아기랑 행복하고 싶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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