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앙~~~~아흑. 끅 끅. 엄마아~~~~~~~~~"
예랑의 귀에 날카로운 아기 천사의 울음소리가 찢어 들어온다.
고개를 든다. 병원 한편에 엄마 천사 품에 안겨 우는 아기 천사가 보인다. 저렇게나 작은 얼굴 절반이 마스크로 뒤덮여있다. 소문에 이 병이 지옥에서 인간계에 퍼뜨린 전염병이 천국까지 흘러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병을 막기 위해서 인간들은 마스크를 한다고 한다. 코나 입 같은 기관지로 전염이 된단다. 그래서 이곳 천국도 그런 인간들처럼 마스크를 써서 이 병을 막겠다는 건데, 과연 인간에게나 통하는 방법이 자신 같은 천사에게도 통할지 강한 의심부터 든다. 이만큼이나 이곳 천국의 천사들은 ’ 병‘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알 필요도 없었고.
’정말 지옥에서 시작된 병일까? 하긴, 그 놈들 아니면 누구겠어?’
천국엔 사실 지옥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천국을 다스리는 위대하신 <높으신>님이나 지옥을 관장하는 <어르신>님이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해주신>님이라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 같은 뭣도 없는 천사는 자신의 임무 외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리고 그건 저 엄마 천사도 마찬가지 인가 보다. 아니, 저 엄마 천사뿐 아니라 이 병원에서 힘겨운 기다림을 버티고 있는 대다수의 천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다. 천사가 마스크라니. 웃기지도 않다. 인간의 형상을 따라 하고 있다곤 해도, 코도 입도 폐도 그들과는 다를진대 마스크를 하면 예방이 될 거라고 생각하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웃기다. 아니, 우습다. 이런 면에서 천국 천사들은 인간계의 인간보다 위기에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하긴, 그동안 이런 위기가 거의 없었으니까. 천국에 위기라니. 참.'
예랑의 머릿속에 천국과 위기란 단어가 나란히 떠오르자 참 안 어울리는 두 단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저 아기 천사가 아프다고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예랑이 물끄러미 마스크 아기 천사를 바라본다.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렸는데, 눈에서는 빛으로 된 물방울이 떨어져 얼굴이 엉망이다. 아기 천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인간계 어딘가에서는 하천이나 강이나, 작은 물가가 범람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의 눈물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그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인간계에서는 물과 관련된 재앙이 된다. 그래서 천사들 사이 암묵적인 규칙 중 하나는 절대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것이 있다. "인간"을 돌봐야 하는 "천사"에겐 당연한 숙명이라고 했다. 예랑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천국에선 그럴 일도 거의 없었기에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없다. 자신은 인간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니까. 아, 딱 한 번만 제하고는.
‘저 아이는 몇 번째일까? 얼른 저 기다림이 끝나야 눈물을 그치든 할 텐데. 눈물을 그쳐야지 인간들이 다치지 않을 텐데.'
아기 천사의 눈물을 보면서도 인간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예랑은 스스로가 천사인 게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욕도 하고, 화도 내고, 성질이 불같아서 그렇지, 뭐 이런 천사도 있는 거다. 어쨌든 천사는 천사니까 그거면 됐다.
띵-
천장 위 화면에 38번 숫자가 눈부시게 쏟아진다.
앞으로 37명만 지나면 된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마음이 답답하다. 예꼬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스크라도 해줄걸.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교육시켜야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어. 미안해.."
예랑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것도 천사의 특성인 걸까?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저 지옥 악마들의 세계에는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다는 그 '미안'이라는 말이 참 쉽게도 나온다. 분명 자신은 천사가 맞긴 맞다는 확신이 다시 한번 든다.
예랑의 목소리가 들리자, 걱정 말라는 듯 예꼬 왼쪽 입가가 살짝 올라간다. 아직 인간의 형상을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부분이 잘 움직이지 않을텐데, 그리고 이렇게 아파하면서도 안심하라는 듯 웃으려는 예꼬의 미소에 예랑은 다시 한번 미안해질 뿐이다. 예꼬는 분명 자신보다 훌륭한 천사가 될 것이다. 자신처럼 이렇게 마음 약한 천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른쪽 날개 끝을 살짝 들어 예꼬의 이마를 짚어본다.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예꼬의 머리 위 빛의 고리를 쳐다본다. 아까보다 더 희미해진 것 같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직도 전광판 화면은 38번에서 멈춰있다. 답답하다. 이 기다림 때문에 자신처럼 화가 잔뜩 난 천사는 정말 없는 건지 궁금해진다. 예랑은 전광판을 보던 고개를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다른 천사들 모두 표정이 어둡다. 그래도 자신처럼 화가 난 것 같은 천사는 없는 것 같다. 머리 위 링의 색이 붉게 된 천사가 없는 걸 보니. 천사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모두 링의 고리에 색으로 표시된다. 다만 긴 세월을 살다 보면 색을 조금 감추려고 할 수는 있어도,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은 다 알아본다. 삼신이나 염라, 그리고 당연히 위대하신 세 신도.
지잉-
그때 예랑의 눈에 자신보다 더 하얀빛을 쏟아내는 천사 하나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인다. 저렇게 쎈 하얀빛은 인간에게 강림할 때 신비감을 극대화할 때나 필요한 쑈 하는 빛인데 왜 천국 한복판에서 저러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천사 간에 저런 빛을 내면 욕이나 먹을 텐데. 천국에도 가끔 이상한 관종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어? 근데 쟤는 왜 바로 들어가? 쟤는 뭐야?’
관종 천사가 병원 입구를 지나 전광판은 쳐다도 안 보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대천사의 자제라도 되나 싶다. 놀랍게도 이곳 천국도 인간계의 어딘가처럼 저런 말도 안 되는 특혜가 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태초신>이 처음 인간계를 만들면서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시작은 공평했으나 끝은 미약하리라"
왜인지 지금의 천국에 이런 말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분명 모든 천사는 똑같이 공평했는데,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하더니, 저 모양 저 꼴이다. 망할. 더 최악은 위대하신 세 신도, 삼신도 아무도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이 모양이 꼴이 됐겠지 싶다.
“뚝딱이요. 바로 들어갈게요.”
관종 천사가 기다리는 다른 천사들의 눈초리를 느꼈는지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말하곤 진찰실로 휑- 들어가 버린다.
'아.. 뚝딱으로 미리 예약한 건가? 부럽다 부러워. 나처럼 새벽같이 오픈런해서 날아오면 뭐 하냐고. 근데 그 새벽에는 뚝딱에 접수 자체가 안되던데 재는 어떻게 한 거지? 미리 했나?'
예랑이 날개 안쪽에 넣어둔 <천사폰>을 꺼내 그 안에 설치된 뚝딱 앱을 열어본다. <천사폰>은 인간계로 치면 핸드폰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는 모든 천사들은 머리 위에 있는 빛의 고리 링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간이 보면 ‘와- 진짜 천사다-’ 환호성 치고 좋아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천사폰> 기능이다. 요즘 어린 천사들은 빛의 고리 그대로 내려오는 형태를 선호한다던데, 자신은 인간들이 그렇듯 핸드폰 형태로 사용하는 게 편해 변경해서 사용하고 있다.
예랑이 뚝딱 화면을 여니, 제일 먼저 <저세상 유일! 실시간 병원 접수/예약>이라는 선명한 글자가 보인다. 어휴, 한숨이 난다.
'툭하면 병원에서 예약 다 막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냔 말이지... 매달 빛도 꼬박꼬박 결제하듯이 가져가면서 말야. 천국에서 정기 결제가 다 웬 말이야?'
이곳 천국은 ‘빛’이 시작이자 끝이다. 빛이 전부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이런 결제 같은 것도 모두 빛으로 한다. 결국 그 빛은 천사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물론 요즘 그 빛을 구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계만큼은 아니지만 천국도 예전 같지 않다.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들지만 빛의 고리는 예랑과 같은 흔한 천사에겐 이런 정보에 대해선 아무런 답을 내주지 않는다.
예랑이 화면을 넘긴다. 뚝딱 앱이 메인 화면으로 넘어가자 예랑을 놀리듯 37이라는 숫자가 반짝이고 있다. 그래도 그 사이 한 명이 줄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급할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데 빛을 가져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예랑이 한숨을 쉬며 뚝딱 앱을 닫아버린다.
화면 우측 한편에 <천국뉴스>가 깜빡인다. 그 깜빡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왜인지 눌러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든다. 자신은 저 망할 지옥 악마도 아닌데 왜 쓸데없는 거에 욕망이 드는지 모르겠다. 분명 자신도 천사긴 찬사인데.
<뚝딱- 예약해도 끝없는 대기줄, 천사폰 약자 고령층 소외, 빛으로 결제 유도 논란, 무인 소아과 등장, "대책은 없다?">
예랑은 자신이 검색한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뚝딱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는 천사폰 화면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천사인 자신보다 이 천사폰이 더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인 자신은 인간이 빌고 또 빌어야,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지, 거기서 더 빌고 빌어 인간의 무릎이 바닥에 꿇려지고, 그렇게 바닥에 인간의 이마가 닿고서야, 그리고 진심의 눈물이 그 바닥의 땅을 적셔야지만 겨우 그 인간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이 천사폰은 자신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어 이렇게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소식을 척척 보여주니 말이다.
'이래서 인간들이 핸드폰을 신 모시듯이 그렇게 손에 쥐고 놓질 않는 건가?'
왠지 마음이 씁쓸해진 예랑은 <천국뉴스>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해 내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