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위원회에 들어갔다. 아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딸의 부모인 그들은, 딸의 무엇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위원회에 들어갔고, 그녀의 남편은 절박한 심정으로 무려 그 위원회의 임원까지 도맡았다. 그러자 왜인지 남편은 수시로 그녀의 옆을 비웠다. 체육관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날이 많아진 그녀는 무섭고 슬펐지만, 남편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딸이 수장되어 갇혀버린 바닷가로, 화면 속 뉴스 앵커의 맞은편에, 노란 띠를 머리에 두른 채 뙤약볕 길거리로, 그렇게 사방팔방 온갖 군데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딸을 살려달라고. 불쌍한 아이들 좀 꺼내달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슬픔과 안타까운 눈길로 응원을 건네던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언젠가부터 그만 좀 하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식의 죽음으로 돈이나 벌려고 한다는, 정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자식이 있다면 저런 생각을, 저따위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말을 잘도 내뱉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또 한참의 세월이 흘렀고, 그런 사람들마저 이제는 이 일에 관심이 없다는 듯 세상은 점점 무관심해하기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또 흘렀을까.
그날도 체육관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 두 명이 쭈뼛대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자신들을 경찰이라 소개하고는 남편의 이름을 말하더니 부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금일 오후 사망하셨습니다. 확인을 위해 지금 잠깐 같이 좀..”
남편이 자살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 남편은 그녀에게 잠시 들러 다 갈라진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한번 꼬옥 잡았다. 그리고는 딸이 보고 싶다며 딸이 잠긴 바닷가를 좀 보고 오겠노라고 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형사가 재킷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남편이 남겼다는 유서였다. 그 유서에는 종이가 아닌 남편의 고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편은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딸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야속한 배라도 어떻게든 건져 인양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수사권도 기소권도 아무런 권한도 없는 허울뿐인 위원회였다.
열심히 할수록, 그저 자신의 딸을 찾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제발 그만 좀 하라며, 그만큼 돈 챙겼으면 된 거 아니냐며 남편을 절망 속으로 밀어냈다. 남의 애 가르치다 자기 딸 죽어가는 것도 몰랐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고, 딸의 곁으로 가서 딸을 지켜주겠다며,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로 남편의 유서는 끝이 나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녀가 곱씹었다. 종이 끝자락 간신히 매달려 있는 네 글자를 속으로 곱씹으며 자신에게 그만 좀 미안해하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딸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고, 이제는 남편까지. 왜 다들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도대체 왜 미안할 짓들을 자신에게 해대는지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씨...발.”
평소 욕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입밖으로 처음으로 욕이 새어 나왔다. 공허한 그녀의 음성을 끝으로 그녀는 텅 빈 체육관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날 밤 그녀는 체육관에 자신의 짐을 그대로 둔 채 집으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도 없었다. 왜인지 그녀의 발걸음이 터벅터벅 딸의 방으로 향한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던 방 문이었건만, 웬일인지 오늘은 활짝 열어젖힌다. 침대, 이불, 책상, 의자, 옷가지까지. 그날 그렇게 웃으며 인사했던 그대로다. 달라진 건 그곳에 딸만 없다는 것뿐. 가만히 한숨이 새어 나온다. 간신히 한걸음 옮겨 방 안으로 들어가 멀뚱히 서서 방 안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방문을 닫고 뒤돌아 나온다.
그녀의 걸음이 이번에는 남편과 지내던 안방으로 향한다. 손을 뻗어 장롱 구석 한쪽 문을 연다. 남편의 케케묵은 정장들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남편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하지만 이번에도 텅 빈 정적만이 그녀의 곁에 남을 뿐이다.
‘나도 죽어야겠어.’
정적을 깬 그녀의 마음의 소리가 그녀에게 속삭인다.
‘어떻게 죽어야 쉽게 죽지? 아니, 바로 죽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 낯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익숙한 느낌이 들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내가 쉽게 죽어도 되는 건가? 딸도 못 지키고, 남편도 못 지킨 내가... 아무것도 못한 내가.’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리며 벨소리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쏟아져내린다.
<엄마>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두 글자가 눈에 박힌다. 무심한 손길로 통화 연결을 누른다.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엄마는 남편의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뭐가 다행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머물며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었다고 말하시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 잘 닿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그저 묵묵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다.
‘나까지 죽으면... 우리 엄마는 어떡해.’
자신의 심장에 박힌 미안하다는 네 글자가 자신이 죽고 나면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옮겨갈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죽은 사람만 편한 거야... 남은 사람은 그때부터 지옥인 거야...’
그녀가 눈을 깜빡인다. 감기는 눈 사이로 잿빛의 흐릿한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 입가에 닿는다. 그런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녀 안에 계속 울려 퍼진다. 쏟아지는 눈물을 막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녀가 질끈 눈을 감아본다.
그날 그때 그 순간부터 끝도 없이 찾고, 원망하고, 묻고, 따지고, 저주했던 신을 향해 다시 기도를 올려본다. 뭘 비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의 귀에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