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태현 May 09. 2024

Ep22. 아홉이라는 숫자




그녀가 바람 한점 불지 못하는 체육관에서 지낸지도 두 달이 흘렀다.

곁에 같이 있는 남편의 얼굴은 흰 수염으로 뒤덮였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체육관에 갇힌 다른 학부모들의 행색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대형 화면 속 뉴스 앵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의 원인이니, 책임이니 하는 말은 잘도 내뱉으면서 끝내 생존자에 대한 결론을 말해주진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그녀도 배 안에 갇힌 딸의 생존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딸의 엄마인 그녀는, 그녀의 엄마에게 자신의 딸의 사고를 전했다. 평소에도 엄마의 심장이 좋지 않아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감추려 애썼지만, 긴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게 자신의 딸의 사고 소식을 말했다.

그녀의 엄마는 놀랐고, 그녀가 했던 염려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다. 그녀는 딸의 생존은커녕, 딸의 시신도 못 건졌는데, 쓰러진 자신의 엄마도 간호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다. 그것도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 같다는 죄책감이 시간의 무게에 더해져 그녀를 짓눌러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둘이 같이 체육관에 있어봤자 딱히 달라질 게 없다며,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주겠다며 그녀의 엄마에게 가라고 한다. 병간호를 위해 짐을 챙기러 집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그런 그가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딸도, 엄마도 이모양인데, 그래도 남편이라도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런 안도감이 든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도 엄마도 이모양인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니.


체육관에서 생활하느라 한참을 비워둔 집 현관문을 오랜만에 연다. 왠지 집 공기가 낯설다. 옷가지를 챙기러 주방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낯설다.

아니 이상하다.

방이 엉망이 되어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어떻게 이래? 어떻게 이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우리한테 왜 이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배가 침몰돼서 그 안에 갇혀 바다에 빠져 생사도 모르는 딸과 함께 살던 집을, 도둑이 다 털어갔다.

소식을 들어보니 우리 집만 털린 게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의 생사를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기 위해 체육관에서 지내고 있는 집들이 거의 다 털렸다고 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래? 어떻게 불쌍한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어디까지 끌어내려가야 하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신이 어떻게 이래? 신이 있다면 제발 답해. 무슨 말이라도 좀 해. 제발!!!’


서러운 울음의 비명 속에 파묻힌 채 그녀가 묻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잿빛 절규에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공기만이 엉망이 되어버린 방 한가운데 그녀 곁에 남았다.

     


야속한 세월은 더욱 빠르게 흐른다.

신을 원망하며 생존을 간절히 기도하던 그녀와 남편의 바람은 어느덧 딸의 시신이라도 찾게 해 달라는 기도로 바뀌어 있었다.

왜인지 화면 속 뉴스 앵커는 배를 바로 인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매일같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대체 왜. 왜 인양 안 해? 못하는 거야? 돈이 없는 거야? 책임자가 없는 거야? 도대체 왜!’

그녀가 묻고 물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질문에 앵커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건 신도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일어난 지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변한 건 없었다. 그녀는 체육관에 고꾸라져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하얀 수염에 더해 백발이 되어 그녀 곁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요양 병원에 모셨다. 그녀가 보살피려 했으나, 그녀의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자신보다 딸의 딸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가라고 했다. 그녀는 엄마에게 미안했지만, 엄마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딸을 찾고 싶었다.

엄마는 왜인지 그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야 하는 건 자신인데, 왜 엄마는 늘 딸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체육관에 같이 지내던 그 많던 학부모들 대부분이 떠났다.

누군가는 기적적으로 생존한 아이를 맞이하러 떠났지만, 그곳에 있던 대부분은 아이의 시신을 확인하러 떠났다. 생존한 아이의 부모도, 시신을 껴안는 부모도 모두 슬픔의 눈물만 남았다.

그리고 그녀처럼 그 둘에 속하지 못한 채 여전히 체육관에 내버려진 부모 역시 핏빛 눈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그녀의 눈에 대형 화면 왼쪽 상단에 어이없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망자 295명, 미수습자 9명>


어제도, 그제도, 그전에도 떠있던 숫자들이다.

미수습자 아홉이라는 숫자에 눈길이 머문다.

그 숫자 안에 우리 딸이 갇혀있다.


처음엔 생존을 바랐고, 그다음에는 불쌍한 딸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길 바라게 됐다. 그렇게 세월이 무참하게 더 흐르자 그게 자신의 욕심이라면 부디 딸의 신발 한 짝이라도, 교복 쪼가리라도 이 품에 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욕심부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만 해주면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그마저도 감사하겠노라고, 죽을 때까지 신께 감사드리겠다고 간절히 빌고 빌었다.

하지만 끝내 신은 그녀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뉴스 앵커가 오늘부로 공식적으로 수색을 종료한다는 개소리를 무표정의 얼굴로 내뱉는다.


‘아홉... 저 숫자에 갇힌 내 딸은 그럼 어떡해? 내 딸은 그럼 어떻게 해?

왜 나는 이래야 돼,

왜 나만,

왜 나만...

뭘 해야 돼? 뭘 할 수 있지? 뭘 해야 돼. 도대체...’


그녀가 다시 의식을 잃고 무너진다.

그녀의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출처: Pinterest



이전 22화 Ep21. 천 개의 바람이 되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