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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Jun 25. 2024

Ep24. 저만 살아서 죄송해요




그럼에도 매일같이 죽고 싶었다.

시간에 갇혀버린 듯 그녀는 매일같이 죽어야겠다는 생각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쉽게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 고통없이.


하지만 분명 원치 않았음에도 남편의 소식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체육관에 덩그러니 굳어가고 있는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어떤 위로도 그녀의 안으로 닿지 못했다.

그중 특별 조사 위원회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넌지시 기존 남편이 하던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를 보냈다. 그것 역시 그녀의 숨결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저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하는 원망의 까만 한 방울만이 그녀의 안에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그녀는 매일, 매 순간을 주변의 소란스러운 위로를 간신히 흘려보내며, 어떻게 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지 않고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속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야속한 세월은 잘만 흘러갔다.

      

“저기... 안녕... 하세요...”

그날은 평소의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그것과 다른 앳된 여학생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닿았다. 안녕하냐고 묻는 것조차 얼마나 죄스러운지 아는 짙은 슬픔에 침몰되어 있는 목소리에 그녀의 텅 빈 눈동자에 작은 빛 한줄기가 강렬히 스쳐 지나간다. 그 빛을 거두고 앞을 보니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듯한 여린 얼굴의 여학생이 비친다.   

 

“오늘... 걔 생일이라... 이거라도 꼭 돌려 드리고 싶었어요...”

빛 속의 여학생이 그녀의 앞에서 띄엄띄엄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

      

“이제야 드려서 죄송해요... 저도 너무... 너무...”

금방이라도 짙은 파도에 침몰할 것만 같은 목소리의 여학생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바다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가 그 여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에는 그녀의 딸이 살아 돌아왔나 했다. 아니면, 드디어 자신도 딸이 있는 그곳에 가 닿았거나.

딸도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딱 이 여학생만큼 자라 대학생이 되어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지워져 버렸다. 너무도 당연히 그 시절이 올 것이라 믿었던 딸의 모습을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희망은 진즉 사라졌으므로.

     

눈앞의 여학생이 조그마한 주먹을 쥔 손으로 그녀의 얼굴 앞에 들어 올린다. 왜인지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녀의 눈앞에서 주먹을 살그머니 펼친다. 주먹보다 작은 손바닥에 네모 각진 주황색 명찰이 그녀를 바라본다. 왜인지 그녀를 향해 너무 늦어 미안하다는 듯.

그녀가 그런 명찰을 미동도 없이 가만히 내려다본다.


명찰 위에 딸의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글자에도 상처 하나 없이 선명하게 딸이 담겨있는데, 정작 그 세 글자의 주인공은 새까만 바닷속에 갇혀 있다는 게 그녀의 안에 날카롭게 와닿는다.

결국 그녀의 텅 비어있던 눈동자에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그때... 배 안에서 얘한테 교복 재킷을 덮어줬다더라고... 그때 워낙 정신이 없었어서 재킷은 어디로 없어지고, 나중에 보니 얘 교복 주머니에서 이 명찰이 나와서... 어떻게 할까 애가 고민을 하기에...”

여학생의 옆에서 내내 불편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아이의 엄마가 그녀에게 말한다. 가만 들어보니 그 여학생은 그 사고의 생존자 중 하나라고 한다. 배 안에 갇혀, 아니 정확하게는 물이 가득 들어찬 배 안에 갇히던 그때 딸의 마지막 순간에 그 옆에 같이 있었던 아이였고, 그 아이가 딸의 명찰을 그녀에게 전해주러 온 것이었다. 생사는커녕, 바닷속에 갇힌 시체도 찾지 못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딸의 명찰. 그 조각이 그녀에게 닿았다.

      

“저만 살아서... 죄송해요... 아줌마... 정말 정말... 너무... 죄송해요...”

여학생의 눈물에 침몰된 한마디가 그녀의 안에 밀려든다. 그 거친 물살이 그녀를 안에서부터 무참하게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자기만 살아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조그마한 여학생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건지, 자신이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지, 위로를 해줘야 하는 건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새까만 혼란만이 무너지는 그녀의 안을 뒤덮는다.


그렇게 여학생의 그 작은 목소리가 매일을 죽음만 그렸던 그녀의 안을 잿빛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출처: Pinterest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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