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양c May 03. 2024

Ep20. 소낙별




저 멀리 딸이 없는 딸이 다니는 학교 교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거친 숨을 움켜쥔 채 더욱더 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학교 정문.

평소 이 시간이라면 등교가 끝나 고요만이 남았을 교문이건만, 그녀의 눈에 방송국 카메라와 마이크를 손에 든 수많은 기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기자들의 틈을 비집고 학교로 들어가려는 자신과 같은 학부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얼굴엔 눈물이 범벅되어 있고, 목이 터져라 살려내라고 들여보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자신의 얼굴도 분명 그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학부모들과 기자들 앞에 경찰들이 겹겹이 줄지어 서서 교문을 막아서고 있다. 그리고 왜인지 당연하다는 듯 교문은 굳게 잠겨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 한복판에 서,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이 살갗 하나하나에 유리조각처럼 박혀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그녀가 다른 학부모들처럼 기자들의 틈을 밀며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니 건장한 경찰이 눈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게 보인다.


"밀지 마세요. 진정하세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밀지 마시고 잠시 진정 좀 하시라고요!"

경찰들이 안전을 위해 진정하라고, 잠시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친다. 그 사슬 같은 차가운 목소리에 왜인지 아까 봤던 딸의 카톡 한 줄이 날카롭게 머릿속을 스쳐간다. 딸의 노란 카톡에도 가만히 기다리라는 그들과 똑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유리조각처럼 박혔던 현실감이 그녀의 살을 더욱 깊게 파고든다. 그 깊은 날카로움 속에서 소름이 피어오른다.


‘기다리면? 기다리면 내 딸 살려줄 거야? 니들 말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 딸 사는 거지? 그래! 기다릴게. 백번 천 번 만 번도 기다릴게. 빨리 내 딸 살려내!’

그녀의 마음속 울분이 이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내 딸 살려내!!!!!!!!!!!!!!”

자고로 마음에 차고 넘치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녀의 울분에 찬 육성이 터져 나온다.

피눈물에 깊게 침잠되어 버린 그녀의 분노의 목소리가 교문 위로 울려 퍼진다. 그들의 부탁과 달리 당장이라도 딸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는 그녀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다.

계속해서 소리치고, 소리친다.

그리고 목소리가 다 쉬어버린 그때, 부서질 듯 손에 꽉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딸?’

그녀는 서둘러 휴대폰을 켜 확인한다.

남편이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초록 통화 버튼을 끌어당겨 그녀의 귀에 가져다 댄다.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 때문인지 방금 전까지도 분노로 온몸을 떨었던 그녀의 몸이 교문 앞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고꾸라져 내려앉는다. 그녀가 앉든 말든, 밟히든 말든, 그녀의 주변 수많은 인파가 그녀를 밀어낸다.

가녀린 그녀는 휴대폰에 의지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어서 빨리 남편이, 아니 딸이 자신에게 와주길 바라며 간절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릴 뿐이다.


“학교에서 안내드립니다. 지금 교내 체육관에 안전시설을 마련해 두었사오니 학부모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학교 건물 위 공중에서 큰 소리의 방송이 흘러나온다.

그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남은 기운을 쥐어짜 내 체육관으로 향한다.


그녀가 간신히 체육관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대형 스크린 화면이 보인다. 새까만 화면이었던 것이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 회색빛으로 켜지고 이내 화면에 <뉴스 속보>의 빨간 글자가 나타난다. 그 글자 아래로 스크린 화면엔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속으로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거대한 배의 옆면이 보인다.

그녀는 멍한 눈만 꿈뻑이며 자신도 모르는 새 대형 스크린 화면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화면을 마주한 그녀가 오른팔을 들어 스크린 화면 속 배의 옆면으로 보이는 수많은 창문에 떨리는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그 작은 창문 안에서 더 작은 사람들이 철제 의자로 창문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창 주변으로 더 작은 보트가 다가서 배의 옆면 바깥쪽에서 그 창을 부수기 위해 애쓰는 게 보인다. 화면에 닿은 그녀의 손도 왜인지 그 창이 보이는 화면을 두드리게 된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 창이 깨질 것이라 믿는 것처럼.


'제발...'

그 작은 창에 갇힌 더 작은 사람이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저 간절히 그 창이 깨지고 그 사람이 살아 나오길, 그렇게 내 딸도 그 사람처럼 살아 나올 수 있길 간절히 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열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제 딸을 살려주세요. 불쌍한 내 딸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의 귀에 배 안에 갇힌 채 제발 꺼내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야속한 창은 깨지지 않는다. 창에 다가서 창을 부수려 노력하던 작은 보트가 큰 배에서 멀어진다. 그 창 안쪽에서 보였던 작은 사람의 움직임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은 짐승같이 흐르고, 눈앞에 배가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칠흑 같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차가운 바다가 기어코 배의 뱃머리마저 집어삼킨다.

바다 위 부딪히는 파도의 물결이 소낙별처럼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불과 몇 분 사이 분명 배가 있었던 곳을 넘실대는 새까만 파도가 채우더니, 잠잠해져 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늘 바다가 하던 대로.  

그 광경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화면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는다.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안되는데... 내 딸... 내 딸 살려야 하는데’

그녀의 의식이 희미해진다.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그녀는 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고배처럼 삼킬 수 있다면 저 저주 섞인 바닷물을 다 마셔 없애서라도, 배를 꺼내 딸을 살리고 싶다.

신은 어딨는지 따지고 싶다. 망할 신은 왜 내 딸을 데려가려는지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붓고 싶다.

저 핏덩이 같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이러는지 따져 묻고 싶다.

신이 원망스럽다.

신은 감당할 시련만 준다더니, 절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이따위 일을 왜 자신에게 던져주는 건지 원망스럽다.

희미해진 의식 사이로 잠잠해진 새까만 바다가 떠오르자, 바다에 갇힌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이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못난 엄마인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뭐라도 부여잡고 원망이든, 저주든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다. 결국 아무것도 못한 채 정신을 놓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것이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출처: Pinterest
이전 20화 Ep19. <딸>의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