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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Apr 18. 2024

Ep19. <딸>의 엄마




“운전 조심하고! 중2병 애들 조심하고! 오늘도 이 나라의 새싹들을 잘 가르치고 무사복귀 하소서!”


차에서 내린 그녀가 창문을 통해 차 안 운전석의 남편을 향해 힘차게 소리친다. 중학교 선생님인 남편이 올해 초 공포의 중2 학생 담임을 맡게 되었다고 장난반 진담반 걱정하던 모습이 떠올라 일부러 큰 소리로 놀리듯 말해주었다.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끄러운 듯 남편의 차가 강렬한 부릉 소리와 함께 서둘러 그녀에게서 도망친다.


“흥. 부끄러워하기는.”

그녀가 멀리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걸음을 옮겨 자신의 근무지인 어린이집으로 들어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봄날의 햇살 같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보기만 해도 반짝 거리는 귀여운 아가들이 어린이집에 하나 둘 도착하고, 그녀가 반갑게 맞이한다.


하루 일과에 따라 점심 식사 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3세 새싹반 아기들과 어린이집 주변 산책을 나선다. 한 아이가 신발을 잘 못 신어 그녀가 몸을 굽혀 신발을 신겨준다.


“신발이 부츠라서 잘 안되네. 어디 보자. 이렇게 한번 신어볼까?”

자신의 딸도 훌륭하게 직접 키운, 어린이집 프로 교사답게 그녀는 아기를 품에 안아 자신의 무릎에 걸터앉힌 채 차분히 신발을 끌어당겨 신긴다.


<뉴스 속보입니다. 금일 오전 출항한 대형 여객선이 해상에서 전복되어 침몰 중이라고 합니다. 이에 긴급히 관련 정부부처 및 해경이 현장으로 출동하였고, 다행히 탑승객 전원구조로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귀에 원장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엥? 배가 침몰했다고? 어쩐대.. 그래도 전원구조라니 다행이긴 하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런 사고가 다 나네...’

그녀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무릎 위 앉아있던 아이가 문 밖으로 나선 친구들을 따라가겠다며 품에서 아등바등 대기 시작한다.


“요 녀석~ 이것만 하면 돼. 잠깐만. 자 다됐다! 이제 친구들 따라 나가보자! 오늘 같은 날씨엔 바깥바람 좀 쐬야지 우리 아가들!”

그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손에 손을 맞잡은 아가들과 함께 봄날의 햇살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30분 정도 어린이집 뒤편 작은 공원에서 벚꽃을 아기들 머리 위로 뿌려주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전화 왜 안 받아요!!!!! 큰일 났어 큰일!!!!”

그녀의 눈에 저 멀리서 어린이집 원장님이 소리치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인다.


아기들 앞에서 웬만하면 핸드폰 보이지 말라고 어제 회의에서 말이 나와 안 갖고 나왔는데, 웬 전화 타령인지 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 때문인지 원장님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들린다.


“큰일이요?”

그녀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코앞에서 숨을 헉헉대고 있는 원장님을 향해 말한다. 그 숨소리가 유독 그녀의 직감을 때리며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얼른 와봐. 선생님 딸네 애들 탄 배가… 그 배가… 가라앉았대!!!”     


철렁.


누가 그랬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철렁이라고.


그건 틀렸다.


쿵.

아니, 이것도 약해.

콰쾅, 정도면 될까.     

그래..


콰쾅.

원장님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내려앉는 심장의 속도보다 머릿속에 아침 교복 재킷을 손에 들고 달려 나가던 딸의 웃는 얼굴이 먼저 스쳐간다.


봄날 분홍빛 벚꽃처럼 아주 선명한 웃는 얼굴이.      


‘가야 돼. 얼른.’

내려앉은 심장이 정신 차리라며 그녀의 안에서 소리친다.

그런데 달릴 수가 없다.

자신의 손을 따라 길게 줄지어 손잡고 있는 3세 아가들이 여전히 밝게 웃고 있어서.

이 아이들은 달릴 수가 없으니까.


심장은 저만큼 가있는데 자신의 몸은 3세 아가들의 손을 놓지 못하고 꼭 잡은 채 종종걸음을 시작해 본다. 아가들이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변화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손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온다. 그때 원장님이 아이들은 자신이 데려가겠다며 얼른 뛰어가라고, 얼른 가라고 소리치는 게 들린다. 아까부터 소리친 모양인데 왜인지 그녀는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내달리기 시작한다. 하늘 위 붉은 벚꽃 잎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기도 전에 얼굴을 날카롭게 스쳐간다. 왜인지 그 잎이 닿은 부위가 시리도록 아프게 느껴진다.


‘별일 없을 거야. 아까 분명 전원 구조라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진정하자. 진정해.‘


숨을 헐떡이며 어린이집 입구에 다시 도착한 그녀가 마음을 다스려본다. 어린이집 원장실 안 티브이가 켜져 있고 그 앞에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한 명도 빼지 않고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선생님들 옆에 서 티브이 화면을 응시한다.

제일 먼저 화면 아래 자막에 떠있는 선명한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476명 탑승. 구조 진행 중. 생존자 확인 중.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 325명 탑승 명단 확인.>


“아까... 분명 전원구조 했다고...”

그녀의 목이 눈물에 잠긴 채 간신히 말을 뱉어낸다. 그 말을 들었는지 옆에 있던 선생님들이 그녀의 곁에 달려들어 그녀를 와락 껴안는다.


“그거 오보래.. 선생님! 저기 선생님 딸 있는 거 맞지? 그때 배 타고 수학여행 간다고 했던 게 오늘인거지?”


제일 가까이서 세게 그녀를 끌어안은 선생님 한 명이 그녀와 똑같은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한다. 그 비참한 물음 앞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멍하니 화면에 아직 ‘0’이라고 떠있는 생존자 숫자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는 그제야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옷장으로 달려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든다.


<딸>

그녀의 눈에 선명한 한 글자가 왜 이렇게 늦었냐는 듯 날카롭게 날아와 박힌다.

그 아래로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 떠있다. 그리고 그 부재중 전화를 알리는 글자 아래로 흐릿해진 한 글자가 가득 차있다.


<딸>

손이 떨린다.

떨리는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여 그 한 글자 아래 초록색에 잠겨버린 통화연결 버튼을 눌러본다. 눈물이 자꾸만 화면을 흐릿하게 해서 속상하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다른 쪽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훔친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통화 시도 연결음만 속절없이 반복될 뿐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까 내려앉았던 심장이 이제는 찢어지는 것만 같다.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가 어떤 건지 난생처음 알겠다.

그 소리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죽음과 같은 아무것도 없는 소리가 바로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핸드폰이 닿은 귀가 축축이 젖은 게 느껴진다. 간신히 화면을 다시 눈앞에 가져다 대고 카톡창을 연다.


하얀색 말풍선에 갇힌 글자들이 노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엄마 배가 이상해>


<엄마 아까 쿵 소리가 났어>


<엄마 전화 좀 받아>


<스리지라 그런지 잘 안터지네>


<별일 아닌가봐.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가만있으래>


<엄마 할말이 있어>


<엄마 사ㅏ랑해>


<그동안 못해줘ㅓㅓ서 미안해ㅐ>


<사랑해 엄마>


<아빠한테도 전해줘>


<엄마>     


그녀가 하얀 화면 속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자 옆에 무심하게 떠있던 숫자 1이 사라진다.

딸이 엄마가 없애주길 원했을 간절한 1들이 너무 늦게, 이제야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그 자리에 눈물만이 가득 맺힌다.

그녀가 다시 통화연결을 시도한다. 여전히 수화음만 계속될 뿐 딸의 목소리에 닿지 못한다.

그녀가 다시 노란 카톡창을 연다.

손가락이 미친 듯이 떨린다. 힘을 꽉 줘본다. 자판 키를 간신히 눌러 노란 말풍선 창을 딸에게 보낸다.      

<딸 지금 전화줘>

<사랑한다 내딸>

<제발... 무사히 살아만 있어줘...>

<엄마가 지금 갈게 딸>

<미안해>

<제발 전화해줘.>

<내딸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

<미안해>     


노란 풍선과 함께 읽지 않음 표시인 숫자 1이 끝도 없이 카톡창 위로 올라간다.


눈물에 침몰해 버린 숫자 1이 끝도 없이 노란 풍선과 함께 올라간다.


그녀가 눈물에 침몰해 버린 눈으로 간절히 숫자 1이 사라지길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야 돼. 딸을 살려야 돼. 내 딸 살려야 돼. 난 엄마니까 내가 정신 차려야 돼.‘

분명 그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녀가 다시 통화연결 버튼을 누른다. 이번엔 그 상대가 아까와 달리 한 글자가 아닌 두 글자다.


<남편>

하지만 아까와 같이 통화 연결음만 계속될 뿐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미친 듯이 통화연결 버튼을 반복해서 누른다.


‘수업 중이겠지. 남에 애 가르치느라 바빠? 지금 그럴 때야? 우리 딸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화 좀 받아. 난 대체 어떡해야 돼. 나더러 어떡하란 거야 대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손가락은 부서질 듯 아까보다 더 떨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저 멀리 내려앉아 쪼개져버린 심장 조각들이 자기들 멋대로 쿵쾅쿵쾅 뛰어대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 소리에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고 기절할 것만 같다. 아니 기절이라도 해서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그때,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자신의 안에서 울려 퍼진다.


‘기절하면 안 돼. 내 딸 살려야지!! 난 엄마잖아.’

엄마라는 두 글자가 온몸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와 함께 그녀가 어린이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달리는 그녀에게 날아드는 벚꽃 잎이 자신의 박살 난 심장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날은 심장이 뜯겨져나간 봄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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