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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May 08. 2024

Ep21.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엄마 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녀의 딸이 유치원에 다니던 어릴 적 그녀에게 물었다.


“응? 갑자기? 음... 천국에 가지. 우리 딸은 착한 어린이니까?”

그녀가 따뜻한 웃음으로 천사 같은 딸에게 말한다.


“피! 엄마도 아까 선생님이랑 똑같이 말하네. 선생님도 유치원 친구들 다 천국 간다고 그러던데.

근데 엄마, 내 생각에는 그거 아닌 거 같아. 왜냐면 세상에 착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다 천국에 가? 천국이 그렇게 큰가?”

딸이 못 믿겠다는 듯 토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천국이 얼마나 큰데! 엄마가 가봤는데 엄청 크더라!”

그녀가 딸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작은 미소와 함께 말한다.      


“음... 엄마, 나는 이다음에 백 살 할머니 돼서 죽으면 천국도 좋긴 하지만... 바람이 되고 싶어.

바람 한 개. 아니 아니, 백 개, 아니다! 바람 천 개 돼서 이 세상이랑 천국이랑 막 왔다 갔다 하고 싶어. 슝슝 부는 바람처럼 말야! 그렇게 온 세상 돌아다니면서 엄마도 보고, 아빠도 보고, 유치원 친구들도 볼 거야~ 히힛!”     


딸의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의식을 잃었던 그녀가 눈을 뜬다.

언제 그런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데 활짝 웃으며 바람이 되고 싶다는 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해 간신히 들어 올린 눈두덩이 사이를 비집고 눈물이 새어 나온다. 눈물을 걷어낸 눈동자에 거대한 체육관 천장에 볼품없이 매달려있는 불편한 조명이 들어온다. 선명한 불빛이 눈에 날아와 박혀 괴롭다.


깨어난 그녀를 알아챈 그녀의 남편이 조심히 다가와 그녀가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도록 부축한다. 천장의 조명이 불편하다는 듯 그녀가 자신의 양 무릎 사이로 고개를 푹 숙여 포갠다. 가만히 눈을 감고 꿈속에서 나눴던 딸의 대화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를 현실 사이에 갇힌 정신을 정리한다. 그런 그녀의 귀에 체육관을 울리는 학부모들의 술렁거리는 소리와 대형 화면 속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 운전 미숙...>

뉴스 앵커가 침몰한 배의 원인이라며 대단한 걸 알아낸 것마냥 건조한 목소리로 나열해 댄다. 그러더니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구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둥 사고의 책임에 대해 논한다.

그녀는 그런 사실보다 생존자 소식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왜인지 앵커는 생존자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대로 가만히 기다려봤자 아무것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가 옆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달라는 손짓을 한다. 얼핏 그녀의 눈에 스친 남편의 얼굴이 어둡다. 건네받은 휴대폰 화면은 더 어둡다.


딸에게 보냈던 카톡창 야속한 숫자 ‘1’은 여전히 갈 길을 잃고 사라지지 않고 떠있다.

부재중 전화 목록 속 걸려온 전화를 열어봐도 <딸> 한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다. 자신의 무릎 사이에 낀 그녀의 세상이 암흑 속으로 짙게 물들어 버린다. 체육관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의미를 주지 못하는 뉴스 앵커의 이야기도, 저 위 아프게도 찔러만 오는 천장 조명까지도 그녀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만 같다.


“엄마! 있잖아...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될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바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엄마가 어디에 있든 내가 꼭 엄마 곁에 있을게. 약속해! 진짜라니까 히히."


어둠에게 끌려가 갇혀버린 그녀의 귀에 딸의 빛나는 웃음과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체육관 실내에 있어 그럴 리가 없음에도 왜인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불고 불어온 바람이 자신의 떨궈진 고개를 따라 속절없이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주려고 애쓰는 것만 같다.

그렇게 울지 말라고,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고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속에 천 개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출처: Pinterest


https://youtu.be/kwI3JS6Mu_o?si=18vUkYWV9Z1g5W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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